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자영업의 한숨…경기 5년 만에 최악’ ‘삶의 질 47위…중국보다 낮아’ ‘가계부채 1300조 터지면 절망’ 등등,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 형편을 일컫는 말이다. 경제가 거의 막바지 숨을 헐떡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난맥상인 것이다.

정국이 혼란하다. 그것도 극도로 혼란하다. 그냥 혼란한 것도 아니다. 혼탁이라는 단어가 함께하는 말 그대로 아비귀환과 다르지 않다는 표현이 들어맞는다. 사회심리학적으로도 그런 표현이 적확하다고 한다.

그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그의 소신가운데 가장 경원시하는 단어가 있다. 배신이 그것이다. 믿음을 등지는 것을 배신이라고 한다. 서로 믿고 거래하다가 등 돌린 사람을 배신자라고 한다. 일찍이 배신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특히 정치를 한다는 위정자들 사이에서 배신은 금기사항이다. 파당을 지어 정권을 잡겠다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마당에 무리의 뜻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따라서 배신자에 대한 문책은 추상같을 터다. 

박 대통령에게 있어 배신은 증오와 직결된다고 일컬어진다. 그래서 믿음을 갖고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보상을 해주고 가까이해 온 것도 사실인성 싶다. 그것도 무한정하게 말이다. 또 비상식적으로…. 그것이 원인이 되어 오늘의 아비귀환을 초래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문제는 배신을 뱀보다 더 싫어한다는 그가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국민을 향해서 말이다. 그래서 분노한 국민이 저녁 무렵 촛불을 치켜들고 어두운 나라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가 국민을,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을 배신한 것에 대한 대가(代價)를 지금 혹독하게 받고 있다. 촛불이 바로 어두운 그의 심사를 환하게 밝히고자하는 국민적 저항이기도 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촛불은 그 뜨거운 열기로 이 나라의 엄청난 부정과 부패를 모조리 불태울 태세이다. 배신을 그렇게 싫어했다던 그의 심사보다 몇 백배 아니, 몇 천배  더 큰 응징을 국민은 가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갈 수 있는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또한 지나갈 것’ 이라지만, 국민의 준엄한 심판은 하나의 역사적 결실로 기록될 것이라는 말도 새롭다. 민주화의 진정한 결실이 바로 국민이 치켜든 촛불이라는 의미이다.

산업화를 일군 영웅의 딸이 타오르는 촛불과 함께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 영웅의 역사마저 흔들리는 촛불 그늘처럼 어지럽게 보인다. 그의 딸이 저질러놓은 배신의 결과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배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현역 대통령이 과연 국민에게 어떤 배신을 했다는 것인가. 국민적 믿음을 그녀는 배신했다. 믿었기에 지지한 국민에게 지속적인 보답을 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녀는 그간의 대통령들이 저지른 축재부정만큼은 하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혼맥도 없다. 그래서 자식도 없다. 일가친척과도 돈독치 않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돈 쓸 일이 그리 많아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욕심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었다.

당초 이 사건은 최순실국정농단으로 출발했다. 그랬던 것이 박근혜 게이트로 비화돼 헌정위기로 까지 커졌다. 온갖 권력을 이용한 인사전횡, 재벌 돈 뜯어내기, 각종 이권 챙기기 등등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이다.

국민은 그것이 배신의 실체라고 여기고 있다. 그 믿음에 대한 배신감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노여워하고 있다. 불황의 그늘은 짙어 가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제 곳간만 채우고 있었다니…. 어느 나라 국민인들 촛불을 밝히지 않겠는가. 가난에 겁내하는 민생의 고민을 대통령은 외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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