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혁 산업부 차장
차종혁 산업부 차장

기업들이 비난받고 있다. 삼성, 롯데, KT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주요 대상이다.

이들 기업은 정권을 농락한 ‘비선실세’와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비리를 감추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거나 관련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권력을 등에 업은 ‘비선실세’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검찰수사, 세무조사 등을 통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겁박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피해자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여론의 시선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기업도 ‘비선실세’의 피해자라는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부당한 이익을 얻기 위해 권력에 아첨하거나 굴복해 또 다른 억울한 피해자를 낳는데 동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특혜지원을 한 의혹으로 8일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삼성은 비선실세의 자금창구로 의심을 받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기업 중 가장 많은 액수인 200억여원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가 돌려받았다. 3개월간 기부액을 깎기 위해 재단 측과 협상을 벌였지만 압박을 견디지 못해 요구를 수용했던 것으로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KT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하는 과정에서 이사회 절차를 정상적으로 거치지 않고 미르재단에 기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비선실세’ 최측근인 차은택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마케팅총괄 담당 이동수 전무의 임원 임명 이후 차씨 소유 광고업체에 사업을 밀어줬다는 의혹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여타 IT·통신 기업과 달리 승마·경마 등 말 산업 관련 신규사업 추진에 남다른 의욕을 보인 점도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삼성, 롯데, KT 외 ‘비선실세’의 입맛을 맞추려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에 참여한 50여 기업도 여론의 차가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SK, CJ, 부영을 비롯한 다수의 기업이 재단에 기부금을 출연하라는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사실과 다른 의혹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억울한 기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피해자일 뿐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그간 다수의 기업이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를 위해 부당행위를 저질렀다. 일부 기업은 과도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부패하고 독성이 있는 원료를 제품에 사용해 국민의 건강을 해쳤다. 또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는 직원과 협력사를 겁박해 잘못을 감추고 부당이득을 취해왔다.

잘못을 감추고 법의 심판을 비켜 가기 위해 권력과 타협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결국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기에 ‘부당한 권력’에 쉽게 굴복 당했다.

이 참에 정경유착을 끊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권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제도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기업 스스로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경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권력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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