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시인과 함께읽는 고전 사기(史記)] 향수병에 걸린 항우, 천하를 잃다163. 항우와 유방③
정해용  |  peacepres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9.29  11:28:5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富貴不歸故 如衣繡夜行 부귀불귀고 여의수야행
부귀를 얻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밤에 비단옷을 입은 것과 같다. <항우본기> 
항우가 천하를 장악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느냐며

며칠 후 항우의 군대가 함양성으로 들어갔다. 일전에 패공은 진나라 군주 자영을 살려두고 패악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건만, 항우는 함양에 들이닥치자마자 자영을 끌어내 목을 베었다. 군사들은 창고를 열고 궁실을 뒤져 재화와 보물을 약탈했다. 진시황의 무덤에 묻히지 않고 남아있던 궁녀들과 부녀자들도 모두 차지했다. 그리고는 화려한 진나라 궁성에 불을 질렀다. 

오랜 세월 부역민들의 피땀으로 세워진 거창한 전각들, 아방궁에 불이 붙었다. 불은 구름다리를 타고 전각에서 전각으로 옮겨 붙으며 꺼질 줄 모르고 타올랐다. 불길이 석 달 동안이나 꺼지지 않고 이어졌다고 한다. 

“성공하면 무엇해, 고향이 그리울 뿐” 

애초에 초나라 부흥을 내세운 항우군이다. 신하들은 항우에게 함양에서 새 나라를 다스릴 것을 권했다.

그러나 단 3년 만에 천하를 제패한 천하장사에게도 차마 이길 수 없는 나약함이 있었다. 

적을 물리치고 천하의 장사들과 겨루면서 함양을 향해 진격해올 때는 아무런 망설임이나 회의도 없었다. 가로막는 자는 물리치고 항복하는 자는 땅에 묻어죽이면서 오로지 앞을 향해 나아갔다. 마침내 이제는 모든 적이 사라지고 함께 싸웠던 제후들마저 떨면서 무릎을 꿇는 정상의 자리에 이르렀다. 부귀영화와 권력이 한 손에 들어왔다. 하늘이나 땅의 귀신인들 감히 그에게 대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허무감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얻고 천하의 숭배를 받는다 한들 고향에 돌아가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돌아다니는 것(錦衣夜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누가 이 영화를 알아주겠는가.” 

항왕은 그동안 민심을 얻기 위하여 임시로 세워두었던 초나라 왕손 회왕을 황제로 받들어 의제(義帝)라 하고, 그동안 자신을 도운 여러 장상들에게 땅을 분할하여 각각 왕과 제후로 세운 뒤에 자신은 고향 팽성을 도읍으로 돌아가 서초패왕(西楚覇王)이 되었다. 

민심의 초점이 된 패공 유방이란 존재가 꺼림칙하기는 하였으나 차마 그를 죽이지는 못했다. 천하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유방에게는 파와 촉(巴蜀)을 분봉지로 주고 한(漢)왕으로 삼았다. 명색이 관중의 땅이기는 하나, 외지고 험난하여 진나라 시절 죄수들의 유형지였던 곳이다. 한(漢)나라가 빨리 크지 못하도록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초 황제(의제)가 있었지만 천하의 실질적 지배자는 서초패왕 항우였다. 오히려 의제는 그를 따르는 신하들의 배반으로 살해되고 말았다. 

변방으로 돌아간 항우가 중원을 장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항우는 24살에 숙부 항량을 따라 군사를 일으킨 지 단 3년 만에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모든 제후들을 장악하였지만,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렸거나 성품이 너무 단순했다. 겨우 3년이 더 지나 의제가 피살된 후 곳곳의 제후들이 다시 패권을 노리고 반란을 일으켰다. 본래 진나라 멸망 직후 제후들 사이의 논공행상에서 소외된 제나라 전영이 반란의 주모자였지만 그는 항우의 대적이 되지 못했다. 항우가 다시 북진하여 전영을 죽이고 군사들을 생매장한 뒤에 성곽과 집들까지 불살라 폐허로 만들자 남은 제나라 사람들이 성양이란 곳으로 피하여 저항했다.

영악한 유방, 항우를 농락하다

이 기회를 틈타 파촉의 한나라도 군사를 일으켜 초패왕에 대항했다. 항우가 제나라를 치러 간 사이 한나라 군사들이 제나라 땅으로 향하는 척하면서 정작 유방은 친히 정예군 3만을 이끌고 초나라 팽성으로 쳐들어가 성을 차지하고는 그곳에서 날마다 주연을 베풀었다. 급보를 받은 항우는 제나라 잔군을 놓아두고 군사를 돌려야 했다. 급히 달려온 항우의 군사들이 팽성을 수복하고 이곳에서 한나라 군사들을 물리쳤다. 10만의 한나라 군사들이 죽었다. 

한왕 유방은 패현이란 곳까지 달아나 군사를 수습하였고, 항우의 군대는 그를 추격했다.

유방에게는 후에 장자방이라 불린 장량과 소하가 있었고 번쾌 하후영 같은 맹장들이 활약했다. 항우는 그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한나라의 여러 장수들을 대적할 만한 힘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머리가 모자랐다. 유방은 몇 차례나 쫓기면서 위급하면 강화를 요청했고, 단순한 항우는 그때마다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다. 항우의 모신인 범증이 그때마다 유방의 계략을 꿰뚫어보고 동정을 베풀지 못하게 하였으나 혼자 힘으로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한나라가 항우와 범증 사이를 이간질하는 계책을 쓰자 마침내 범증은 항우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병을 얻어 죽었다. 항우는 이로써 혼자가 되었다.

단순한 항우에 비하여 유방은, 인간적으로 말하면 교활한 편이다. 농성하던 형양성이 위급해졌을 때 유방은 부하장수 기신을 자신처럼 꾸며 지키게 하고 자신은 수십 기의 근위병과 함께 성을 빠져나갔다. 기신을 비롯하여 주가 종공 위표 등이 유방을 대신해 죽었다.

항우는 유방의 부친(태공)을 볼모로 잡아두고 있었는데, 한 번은 태공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지금 빨리 투항하지 않으면 태공을 삶아죽이겠다’고 위협하자 한왕은 “나와 항우 그대는 모두 회왕을 모시고 형제가 되기로 약속한다고 서원한 적이 있으니 나의 아버지가 바로 그대의 아버지다. 그대가 아버지를 삶아 국을 끓인다면 내게도 한 그릇을 나누어주기 바란다”고 회답했다. 항우가 노하여 태공을 죽이려 하는 것을 항백이 막았다.

초나라(항우)와 한나라(유방) 사이의 경쟁 기록이 바로 오늘날까지 장기판의 말이 되어 전해오는 초한지(楚漢志)다. 항우는 제왕끼리의 일전을 바랐지만 누가 감히 항우와 맞장을 뜰 수 있겠는가. 유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얻고 천하의 숭배를 받은들 고향에 돌아가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돌아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누가 이 영화를 알아주겠는가.” 

정해용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헤드라인 뉴스

6월 시중은행 신용대출 급증…주택대출 규제 ‘풍선효과’

6월 시중은행 신용대출 급증…주택대출 규제 ‘풍선효과’
[현대경제신문 김성민 기자] 6월 주요 시중은행의 개인신용대출 잔액이 큰 폭...
포토뉴스
만평 조민성의 그림판
[만평]조민성의 그림판
가장 많이 본 기사
1
현대일렉트릭-한전, 차세대 전력시장 공략 MOU 체결
2
목동아파트 가격 급등...최고 3억 껑충
3
롯데시네마, ‘#살아있다’ 특별관 할인 이벤트
4
넷마블 차기작 ‘골든 브로스’... 제2의 브롤스타즈 노려
5
두산, ‘친환경 에너지 기업’ 변신 예고
6
삼성중공업, 美 손배송 현지 각하 결정
7
이뮨메드 “HzVSF-v13, 중증 코로나19에 효과”
8
7월에 ‘대구·부산’ 아파트 폭탄 분양
9
규제 피한 ‘김포·파주' 2기 신도시, 부동산 시장 '들썩'
10
[기획] 할인권·신작 개봉에 극장가 ‘활기’
'相生'에서 '希望'을 찾다!

삼성전기 ‘전국 장애인 배드민턴대회’ 개최

삼성전기 ‘전국 장애인 배드민턴대회’ 개최
[현대경제신문 차종혁 기자] 삼성전기가 전국 장애인 배드민턴대회를 28~29...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현대경제신문  |  제호:현대경제신문  |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4길 18, 3층  |  대표전화: 02)786-7993  |  팩스: 02)6919-1621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2356  |  등록일: 2012.11.23  |  발행일: 1996.7.1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조영환
Copyright © 2010 ㈜현대경제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