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연기생활을 시작한지 60여년이 가까웠다는 늙은 배우가 앵커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축하합니다.”
“어이구! 이거 쑥스럽군요. 그래도 외국 배우들과 경쟁해서 받은 상입니다. 허 허….”
“그것도 예전에 자주하시던 로맨스영화가 아니라 액션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나오셨다면서요?”
“그래요. 젊어서도 해보지 않던 액션영화 주인공으로 출연했죠. 게다가 이번에 주연상을 받았지요. 허 허….”
“대개 그 연세쯤에는 공로상을 받으실 때 인데 선생님은 당당히 주연상을 받으신 소감을 말씀하시면?”

“공로상은 공짜 상 받고 빨리 사라지라는 상이죠. 아직은 그런 상 받고 싶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계속 어떤 역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그동안 일 년 이상 쉬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행운이 따랐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죠.”

“그렇게 오랫동안 연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뭐 비결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하면 주어진 역할을 관중들이 공감하게 할 것인지를 궁리하는 것이 배우의 몫이라고 여기면서 연기를 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죠.”

인터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문득 며칠 전 필자와 같은 동네근처 골목에서 점포를 세내어 음식점과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서너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떠올랐다.

오가며 들러 단골처럼 된 점포의 주인들이어서 스스럼없이 수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된지 수삼 년이 되었다. 그들이 동네 골목상권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만큼 어렵사리 한 점포의 경영주로 버티고 있다는 의미이다. 

널리 알다시피 우리나라사람들은 작은 가게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선호하는 업종이 바로 음식점이다. 주부들의 손재주를 밑천삼아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골목마다 음식점이 많다.

그날도 네 사람 중 셋이 음식점 주인이었다. 중국집, 순대국 집, 백반 집 그리고 24시 체인점 주인 등이었다. 그들의 대화 가운데 가장 우려하고 있는 주제가 있었다. ‘언제 점포를 청산하나?’가 늘 중심주제인 동시에 마지막 공동주제였다.

벌써 다섯 번째 가게를 옮긴이도 있었다. 평균 한두 번씩 점포와 업종을 달리한 사람들이었다. 이곳으로 옮겨와 용케 5년 이상 버티고 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터줏대감이라는 말도 들어본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영광(?)도 그리 머지않아 막을 내릴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음식점 주인의 경우는 주방장과 새 메뉴개발에 정말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다. 또 체인점도 같은 골목에 있는 슈퍼마켓과 경쟁관계에 있어 1+1로 판매하는 물건 따위를 준비하는 등 눈에 띄는 행사를 자주하느라 주인의 맘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였다.

‘부단한 노력’이 그들의 경쟁력이라는 점에서, 장장 60여년을 개성 있는 연기로 버텨온 늙은 배우의 경우가 노력한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의 삶은 그럼 점에서 비슷한 과정의 연속인 셈이다. 주어진, 혹은 선택한 생업이라는 틀 속에서 늘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이 개인의 성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골목상권 터줏대감들과 이야기 끝에 중국집 주인이 제안을 했다. 일동은 귀를 기울였다. 

“우리 집이 여기서 개업한지 10년이 됩니다. 이 동네에서는 제일 오래되기도 해서 날을 잡아 개업10주년 행사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힘을 모아 동네 어른들께 점심대접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 자리에서 네 명의 사장들은 의견을 모았다. 공동개최하기로….

그날은 우리 동네잔치 날이 될 공산이 커졌다. 그날이후, 동네상권이 번창해졌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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