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초패왕 항우③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有功亦誅 無功亦誅 유공역주 무공역주
공을 세워도 죽임을 당하고 공이 없어도 죽임을 당한다 <진시황본기/ 항우본기>
秦의 장수 장함에게 부장 사마흔이 더 이상 진나라를 위해 싸울 필요가 없다며

항우는 상장군이 되자마자 곧 거록의 조(趙)나라 군을 구하기 위해 응원군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진(秦)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아무리 나라가 기울었다 해도 대 진제국의 정예군이다. 원정군의 패배가 전해지자 항우는 직접 선봉장이 되어 전군을 몰고 강(장하)을 건넜다.

속전속결… 토벌대장 장함이 항복하다

항우의 군대는 강을 건넌 뒤 타고 온 배를 모두 물속에 가라앉히고, 밥을 많이 지어 병사마다 사흘치 군량을 휴대하게 한 뒤에 솥과 시루를 모두 깨뜨리고 막사에 불을 질러 없애버렸다. 사흘 안에 적을 퇴치하지 않으면 살아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진 것이다.

과연 항우의 군대는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거록을 포위하고 있던 진군을 와해시켰다. 초나라 군사들은 한 사람이 열 명의 적을 무찌를 만큼 사기가 높았다. 적장들은 전사하거나 자살했고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초군(楚軍)에 응하여 10여개의 다른 독립부대들도 참가했으나, 감히 전투에 끼어들지 못하고 각자의 진영에서 초군의 활약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진군을 무찌르고 난 뒤 항우가 각 제후군의 장수들을 불러들이자 장수들은 모두 무릎걸음으로 나오며 감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때부터 항우는 제후 연합군을 통솔하게 되었다.

진나라 장수 장함이 마침내 저항을 포기하고 투항한 것은 이때였다.

2세 황제를 손에 넣고 정권을 주무르던 환관 조고는 장함의 군대가 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장함을 꾸짖었다. 장함이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마흔을 함양에 보냈는데, 조고는 사마흔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사마흔은 조고가 자신을 죽이려하는 것을 알고 추격자들을 피하여 영채로 피신해온 뒤 장함에게 이렇게 보고했던 것이다.

“조고가 궁 안에서 정권을 마음대로 하고 있는데, 그 아래에는 제대로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장군이 전쟁에서 이겨도 조고는 시기하여 죽이려 할 것이며 전쟁에서 져도 그 책임을 씌워 죽이려 할 것이니, 장군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침 조나라 장수 진여로부터도 장함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가 왔다.

“지금 장군께서는 안으로는 기대어 직간할 길이 없고, 밖으로는 망국의 장수로서 홀로 외로이 서서 오래 버텨야만 하니 애통한 일입니다. 장군께서는 어째서 병사들을 돌리어 제후들과 연합하고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기를 맹약하지 않으십니까.”

그 사이에도 항우의 군대는 연일 진나라군을 공격하여 하루하루 시신이 쌓여가고 있었다.

장함이 은밀히 사람을 보내 항복의 뜻을 전하자 항우는 장수들의 동의를 얻어 받아들였다. 진나라를 지키려는 군대와 진나라를 무너뜨리려 하는 군대가 접전을 반복하면서 수십만 이상의 장수와 병졸들이 죽어갔지만, 이 모든 참사가 실로 환관 조고 한 사람, 그리고 그에게 조종당하는 열 몇 살의 철부지 황제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진장 장함은 초나라 군중에 들어오고, 그의 부장 사마흔이 투항한 진나라군을 이끌고 반군의 선봉에 서서 함양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진군(秦軍) 포로 20만을 몰살시키다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함양을 향해 진군하는 도중에도 투항한 진나라 병졸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예전에 진나라가 전국을 정복한 이래 진나라 사람들은 다른 제후국 출신들을 얕잡아보았고, 특히 정복 당한 백성들은 진시황 치하에서 이런저런 부역에 끌려 다니느라 가족과 생이별한 채 갖은고생을 다했으므로 진나라에 대한 원망이 쌓여있었다. 그런데 이제 진나라 군대가 제후 연합군 앞에 투항했으니 처지가 서로 바뀐 셈이다. 제후국 병사들은 앙갚음이라도 하듯 진나라 병사들을 노예처럼 함부로 대하며 학대하고 모욕하는 일이 많았다. 진나라 병사들은 틈만 나면 모여서 불만을 나눴다. 불만과 불안은 더욱 확산되었다.

“장함 장군이 우리를 속여 투항하도록 했는데 과연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지금 관내로 들어가 진나라를 무찌른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그러지도 못한다면 우리는 제후국의 편도 아니고 진나라에도 배신자가 되니 부모와 처자식이 모두 죽임을 당하지 않겠는가.”

제후군 장수들에게도 그 소리가 들어가 항우까지 알게 되었다. “진의 장병들이 숫자도 많은데다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어서 내심 불안소지가 있었다. 만일 관중으로 들어가서 우리에게 등을 돌리기라도 하면 일은 위태롭게 될 것이다.” 그래서 초군은 밤에 진군의 숙영지를 기습하여 잠자고 있던 진나라 병졸 20여만을 산 채로 땅에 묻어버렸다.

항우군은 다시 진군하여 마침내 함곡관에 이르렀다. 그때 함곡관의 문을 닫아걸고 지키는 군대가 있었다. 항우가 노발대발하며 공격하려고 한 뒤에야 경비군이 문을 열었다.

함곡관은 함양으로 들어가는 천혜의 관문이다. 누가 함양을 먼저 정복하고 함곡관을 닫았을까. 바로 후일 한(漢)나라 시조가 된 패공 유방이다.

여러 제후군들이 함양을 점령하기 위해 앞 다투어 달려올 때 유방은 가장 먼저 함양에 입성하여 진왕(秦王)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그러나 진나라의 창고와 보물들을 손대지 않고 봉해둔 채 항우군의 입성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쨌든 자세한 사정을 알 길이 없는 항우는 유방이 먼저 입성해 관문을 닫았다는 데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유방의 좌사마 조무상이란 사람이 항우에게 사람을 보내 은밀히 그간의 전말을 고해왔다. ‘패공이 관중의 왕이 되고 자영을 재상으로 삼아 진귀한 보물을 다 차지하려고 합니다.’ 항우가 듣고 노하여 진중에 영을 내렸다. “내일 아침 병사들을 잘 먹이고 출동하자. 패공의 군대를 격파하겠다.” 그동안 연합군으로 행동을 같이 했던 항우와 유방 사이에 마침내 갈등이 불거졌다. 두 영웅의 첫 대결이 벌어질 것인가. 그 밤은 태풍전야와도 같이 긴박했다.

“진의 장병들이 숫자도 많은데다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관중으로 들어가서 등을 돌리기라도 하면 일은 위태롭게 될 것이다.” 초군은 밤에 진군의 숙영지를 기습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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