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초패왕 항우②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猛如虎 很如羊 맹여호 흔여양
호랑이처럼 사납고 양처럼 멋대로 하다 <항우본기> 
초군(楚軍)을 지휘하게 된 송의가 항우의 사나움을 경계하여 경고하면서 

항량의 군대는, 진승의 민병대가 처음 반란을 일으켜 그랬듯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고 파죽지세로 중원을 향해 나아갔다. 갈수록 병력도 늘어나 항량이 회수(淮水)를 건너 중원에 이르렀을 때는 병력의 수가 6-7만에 이르렀다. 

항량보다 먼저 거병하여 초왕(楚王)을 세운 이가 있었는데, 팽성 밖에 진을 친 진가라는 사람이다. 항량이 진격해오자 길을 막으려 하였으므로 항량이 진가를 공격하여 그 군대를 합병했다. 이번에는 진(秦)나라 토벌군인 장함의 군대가 길을 막았다. 일부 부대는 장함에게 패했으나, 다른 길로 진격해간 항우는 저항하는 성 하나(양성)를 함락시키고는 저항군을 모두 산채로 땅에 묻어버리고 돌아왔다. 

패공(沛公) 유방과 제휴하다

일찍이 패주했다고 알려진 진왕 진승의 죽음은 그 즈음 사실로 확인되었다. 본래 진승은 진에 대항하는 제후들의 군대를 모두 통솔할 만한 위인도 아니었지만, 가장 먼저 거사를 일으키고 왕으로 추대된 사람으로서 반란세력의 구심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진나라 토벌군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반군들은 구심을 잃고 지리멸렬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만일 진나라 황제가 조금만 제정신을 가지고 나라를 통솔했더라도 그리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항량은 함께 싸우던 반군의 장수들을 모아 다음 일을 의논했다. 

반군들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진격해온 터이므로, 진(秦)을 무너뜨리겠다는 같은 목적을 갖고 연합하긴 하였으나 하나의 지휘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독립된 지휘체계를 가진 여러 부대들이 주력부대인 항량군을 도와 진과 싸우는 형태였다. 이때 반란군이 나아갈 방도를 제시한 사람은 거소 사람 범증(范增)이다. 나이는 70세나 되었지만, 그 동안 출사하지 않고 은거하며 많은 학식과 경륜을 쌓은 현인이었다. 그는 초나라 왕의 후손으로 왕을 세우라고 권고했다. 항량이 찾아낸 초나라 마지막 군주 회왕의 손자 웅심은 민간에서 양치기 목동으로 살고 있었다. 웅심을 왕으로 세우고 항량은 스스로 무신군이라 칭하였다. 

연합군의 회의에는 패현에서 군사를 일으킨 유방(劉邦)도 참여하고 있었다. 출신지를 따라 패공이라 불렸는데, 아직 세력이 작았다. 어디까지나 항량이 좌장이었다. 

그런데 항량은 회계군에서 출정한 이래 진군을 두 차례나 무찌르고 삼천군수 이유의 목을 베어 기세가 당당하였다. 그 자신감이 지나쳐 진나라를 가볍게 보고 교만한 기색까지 드러내기 시작했다. 같은 초나라 대신이었던 송의가 항량에게 충고해다. 

“싸움에서 이겼다고 장수가 교만해지고 병졸들이 나태해지면 결국 패하고 말 겁니다. 지금 병졸들은 나태해지고 진나라군은 숫자가 늘고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항량은 그 말을 무시한 채 진나라 토벌군과 일전을 준비했다. 송의가 제나라와 협력하기 위해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도중에 제나라에서 오는 사신과 조우했다. 송의가 말했다. “지금 무신군은 진군과 일전을 벌이고 있소. 생각건대 반드시 패할 것이니, 천천히 가신다면 죽음을 면할 것이고 급히 가신다면 화를 당하게 될 겁니다.” 

제나라 사신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갔다. 과연 그 사이에 진나라 토벌군과 항량의 군대 사이에 일전이 벌어졌는데, 항량은 이 싸움에서 전사했다. 초군을 물리친 진나라의 장함은 방향을 바꾸어 황하 건너 조(趙)나라 반군을 공격했다. 조나라 반군들은 후퇴하여 거록이라는 곳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진나라 대장 장함이 수만명의 군사로 거록을 에워쌌다. 이 군대를 하북군(河北軍)이라 한다. 

항량의 죽음, 항우의 발기(發起)

대장군 항량을 잃은 초나라의 회왕은 곧 편제를 크게 개편했는데, 송의를 만난 덕에 목숨을 건져던 제나라 사신이 “송의가 군의 승패를 미리 알아본 사람이었으니 병법에 능할 것입니다”라고 칭찬하는 말을 듣고는 송의를 불러 상장군에 임명했다.

항우와 패공은 진군에게 둘러싸인 조나라를 즉시 가서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송의는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우는 진나라가 조군을 제압하면 힘이 더 커질 것이니 지금 공격하여 조나라와 함께 진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송의는 진이 조군을 진압하느라 힘이 빠졌을 때 공격해야 쉽게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실전을 하는 일에는 내가 그대만 못하지만, 앉아서 책략을 부리는 데는 그대가 나보다 못할 것이오.” 어쨌든 상장군은 송의였다. 초군은 그렇게 46일 동안을 꼼짝 않고 앉아 기다리며 진 장함의 군대가 조나라군과 일전을 벌여 지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부글부글 속이 끓는 참에 항우는 분통터지는 소식을 들었다. 송의가 제나라 왕을 돕기 위해 자기 아들을 제나라에 보냈는데, 이를 구실로 아들을 먼 거리까지 배웅하고 또 그곳에서 하룻밤 성대한 주연을 베풀어 먹고 마셨다는 소식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진나라를 공격해도 모자랄 판에 오랫동안 머물며 진격을 미루더니, 백성들은 궁핍하고 사졸들은 토란과 콩으로 겨우 연명하며 군영의 창고는 비어있는데 성대한 연회라니. 조나라가 함락되고 진나라가 강해진 뒤에 무슨 지친 틈을 이용하겠다는 것인가. 우리 군이 막 패전하여 사기는 저하되고 왕께서는 좌불안석하시거늘, 사졸을 돌보지 않고 사사로운 정만 따르니 이는 사직을 보존하려는 신하가 아니다.” 

항우는 발분하여 상장군 송의의 막사로 달려가 그 자리에서 송의의 머리를 베었다. 장수들이 모두 두려워 떨며 “본시 초나라를 다시 일으킨 것은 항 장군의 집안이니, 이제 난신을 주살하신 것은 당연합니다”하고, 항우를 상장군으로 추대했다. 진 제국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전투는 이로써 시작되었다.

“죽을힘을 다해 진나라를 공격해도 모자랄 판에 오랫동안 진격을 미루더니, 백성들은 궁핍하고 사졸들은 토란과 콩으로 겨우 연명하는데 성대한 연회라니.” 
분노한 항우는 상장군의 막사로 달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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