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위록지마(謂鹿之馬)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有功亦誅 無功亦誅 유공역주 무공역주
공을 세워도 죽임을 당하고 공이 없어도 죽임을 당한다. <진시황본기> 
반란군을 진압하러 나간 장함(章邯)에게 참모 사마흔이 조고를 믿지 말라며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죽고 그의 가족들도 거의 멸절되었으며, 진(秦)나라에서 아직 위세를 가지고 있던 승상 이사(李斯)도 죽었다. 이사를 체포할 때에 또 다른 중신이던 풍거질 풍겁을 함께 체포하려 하였으나, 그들은 “장상은 모욕을 당하지 않는다(將相不辱)”라며 먼저 자살한 터였다. 조고는 죽은 이사를 대신하여 스스로 승상이 되었다. 이제 환관 조고가 섬겨야 할 사람은 오직 2세 황제 한 사람 뿐이었다. 물론 조고가 조종하여 된 일이겠지만, 2세 황제는 모든 국사를 조고에게 맡겨버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가이자 권력의 배후까지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실질적 주인이 되었다. 

“사슴이냐 말이냐” 생존과 죽음의 선택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되어 이 자리까지 올랐는데 더 이상 주저할 일이 있겠는가. 조고는 자연스럽게 황제의 자리에 탐이 났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자신이 환관이기 때문에 속으로 무시하는 자는 없을까, 그동안 자신이 꾸며온 일에 대하여 의혹을 품은 자는 없을까. 이제 자기가 2세 황제를 제거하고 스스로 황제자리에 오를 경우 반대할 자는 누구일까. 영리한 조고는 ‘반역’의 가능성을 가진 인물을 먼저 가려내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조고는 대소 신료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선물로 바치며 “말(馬)이옵니다”하고 말했다. 이세는 빙그레 웃으며 “이젠 농담도 잘 하시오. 이건 사슴이 아닙니까?”하고 대꾸했다. 그러나 조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 맞다고 우기면서, 이 동물이 말인지 사슴인지 여기 모여 있는 대신들에게 물어보자고 말했다. 

“승상은 이 동물을 말이라고 우기는데 아무리 보아도 내 눈엔 사슴일 뿐이오. 그대들이 보기엔 무엇으로 보이시오? 내 말이 맞소, 승상의 말이 맞소?” 

사소한 농담이 아니었다. 동물이 말인지 사슴인지 진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대신들은 누구에게 줄을 설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많은 대신들이 조고의 눈치를 보아 승상의 주장이 맞다고 끄덕였다. 황제의 주장을 택하거나 진실의 편을 택하여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환관 조고는 황제의 주장이나 진실의 편을 택한 사람들은 장차 자신의 권력에 동조하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그날부터 ‘사슴’이라는 진실을 택한 대신들은 이런저런 일로 트집잡혀 하나씩 사라져갔다. 조고의 뒤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편 선물 받은 동물이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분 못한(?) 이세 황제는 스스로 어지럼증을 느꼈다. “많은 신료들이 말이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사슴으로만 보이다니, 내 눈이 어찌 된 것이오? 아니면 내가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것이오?”

조고가 태복(太卜)을 불러 점을 쳐보자고 했다. 불려온 태복은 말했다. “폐하께서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종묘에서 귀신을 모시면서 재계를 분명히 해야 하는 의무를 분명히 하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른 것이옵니다. 제사를 모시고 많은 덕을 쌓아 재계를 하옵소서.”

황제는 곧 상림원(上林園)에 거처를 마련했다. 매일 사냥이나 하면서 노닐었는데, 어느 날 황제가 쏜 화살이 지나가던 사람을 맞춰 죽게 하였다. 조고는 황제를 대신해 시신을 감춰주고는 말했다. “천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 귀신도 제사를 받지 않을 것이며 하늘이 재앙을 내릴 것입니다. 마땅히 궁궐을 떠나 재앙이 없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잔뜩 겁을 먹은 황제는 망이궁이라는 별궁으로 나가 살게 되었다.

2세 황제, 목숨을 구걸하며 죽다 

이때 반란군의 세력은 이미 진나라 전역을 휩쓸고 있었으며, 중국 전역은 다시 춘추전국시대의 영역으로 갈라져 연 조 제 초 한 위가 모두 국권회복과 독립을 선언하여 왕이 자칭했고, 각기 자신들의 군사를 이끌고 연합하여 함양으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황제가 망이궁으로 옮겨간 지 사흘째 날이었다. 함양의 함락이 임박했다는 급보를 듣고는 황제가 조고에게 전령을 보내 도적의 일에 대해 문책하자 조고는 일이 급하게 된 것을 알고는 측근들을 모아놓고 황제를 성토했다. 적반하장이었다. 

“황제는 그동안 간언을 무시하고 향락만 즐기더니 이제 사태가 급박해지자 모든 책임을 우리 가문에 돌리려 한다. 나는 천자를 폐위시키고 공자 영을 다시 세우겠다. 공자 영은 인자하고 겸손하여 백성들이 모두 그의 말을 따르고 있다.”

조고의 사위 염락은 모친을 조고의 집에 모셔두고 있었는데, 사실상 배신을 막기 위한 인질이나 다름없었다. 염락이 조고를 대신하여 망이궁으로 들이닥쳤다. 어지러이 활을 쏘아 호위군과 낭관 환관들을 살해하니 황제는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 하면서 시신들을 불렀으나 모두 죽거나 달아났고 미처 달아나지 못한 환관 한 사람만 곁에 있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진작 내게 고하지 않았는가. 결국 이런 지경에 이르다니.” 황제가 원망하여 꾸짖자 환관이 대답했다. “만약 진작 아뢰었더라면 신은 벌써 주살 당했을 것입니다.” 

염락이 칼을 들고 나타나 황제의 죄상을 따졌다. “족하(足下)는 교만하고 방자하며, 사람을 잔학무도하게 살육하여 천하의 백성들이 족하를 배반하였으니, 스스로 어찌해야 마땅한 지를 생각해보시오.” 

황제가 떨면서 “승상을 만나게 해주시오.”했으나 염락은 “안 됩니다”하고 잘라 말했다. 

황제가 다시 “나는 일개 군(郡)을 얻어 그곳에서 왕이 되어 살겠소”하였으나 역시 허락되지 않았다. “지위가 없이 만호후가 되어 살면 안 되겠소?”했다가 또한 거절당하자 “처자를 거느리고 백성이 되어 여느 공자들처럼 살고 싶소”라고 목숨을 구걸하였다.  

염락은 “신은 승상의 명을 받아 천하를 위하여 그대를 주벌하려는 것이오. 그대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나는 보고를 올릴 수 없소” 하고는 곁에 있던 병졸들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2세 황제는 염락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살을 했다. 정말 자살이라고 믿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분 못한(?) 황제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모두 말이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사슴으로만 보이다니, 내 눈이 어찌 된 것이오? 내가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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