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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읽는 고전 사기(史記)] “장사가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리라”145. 천하통일(5) - 자객 형가②
정해용  |  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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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27  09: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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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壯士一去兮 不復還 장사일거혜 불복환
장사가 한 번 떠나니 돌아오지 못하리라 <刺客列傳>  
연나라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떠나면서 비장하게 부른 노래가사 

전광은 태자에게서 물러나와 곧바로 형가에게로 갔다. 

“지금 태자가 내 한창시절 일만을 들으시고 나라의 운명을 논의했다오. 진나라와 연나라가 양립할 수 없으니 계책을 달라 하셨소. 감히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잡아떼지 못하고 당신을 태자에게 추천했으니, 왕궁으로 가서 태자를 배알하기 바라오.” 

급작스런 얘기였으나 사내끼리의 얘기였다. 형가는 대답했다. “삼가 받들겠습니다.”

전광은 “오늘 나는 태자를 뵙고 나올 때 태자로부터 ‘오늘 나눈 얘기를 누설하지 마시오’라는 당부를 들었소. 내가 의심을 받은 것이오. 절개 있는 협객으로서 남에게 의심받는 수치를 당했으니 나는 자결할 것이오. 태자를 만나시거든 ‘전광은 죽었으니 비밀이 누설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전해주시오.”라고 하고는 그 자리에서 목을 찔러 죽었다.

의심받는 건 협객의 수치 

형가가 전광의 말을 전하니 태자는 두 번 절하며 무릎을 꿇고 울었다. 

형가가 자리에 앉은 뒤 태자가 말했다. 

“진의 대군이 중원을 유린하고 있으니 그 욕망은 끝이 없소. 조나라가 위험에 처했으니 결국은 진의 신하가 될 것이며, 그 후에는 화가 연나라에 미치게 돼 있소. 내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만약 천하의 용사(勇士)를 얻을 수 있다면 그를 사신으로 파견하여 커다란 이익을 미끼로 내걸고 진왕에게 접근하게 하겠소. 만일 진나라 왕을 위협하여 그로 하여금 제후들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게 한다면 최상의 수확이 될 것이오. 위협이 통하지 않는다면 진왕을 찔러 죽여도 길이 생기오. 지금 진나라의 장수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져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데, 본국에서 난리가 난다면 임금과 신하들이 서로 의심하게 되어 전열이 흐트러질 것이오. 그 틈을 노려 여러 제후들이 함께 대항한다면 반드시 진나라를 쳐부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이 일을 맡길만한 용사를 모르고 있으니, 형경께서 유념해주시기를 바라오.”  

요컨대 그 옛날 노나라 조말이 제 환공을 칼로 위협하여 빼앗긴 성을 되돌려 받은 일을 본받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진시황을 위협한들 그런 꾀가 통할 수 있었을까. 이미 수십만 수백만을 죽이고 주 천자의 명맥까지 끊은 진을 상대로 너무 순진한 생각일 테지만, 아무튼 이 단순한 태자는 자기 꾀에 간절히 고무되어 있었다. 

형가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답하자 태자는 거듭 절하며 결단을 요청했다. 백이면 백,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졸견이다. 하지만 더 거절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거절하고 궁을 벗어난들 산목숨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형가가 태자의 청을 받아들이자 태자는 그날부터 형가를 상경으로 모시고 상등 관사에 머물게 하였다. 매일 형가를 찾아가 문안하며 고기를 곁들인 최고의 음식으로 접대하고 수레와 말을 내주었고, 아름다운 여인을 붙여주었다. 그의 욕망을 충족할 모든 것을 제공하여 환심을 사려고 한 것이다.  

번오기 복수를 위해 자결하다 

형가는 생애 마지막 호사를 누리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진나라 장군 왕전은 조나라 왕을 사로잡고 그 영토를 점령한 뒤 북으로 더 진격하여 연나라 경계에 이르렀다. 태자 단이 마침내 형가를 독촉했다. “진나라 군대가 역수를 건너오면, 내 비록 선생을 더 모시려 해도 모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형가가 말했다. “안 그래도 찾아뵙고 말씀드리려던 참입니다. 이제 진나라로 갈 터인데, 진왕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선물을 지참하지 않는다면 진왕의 근처에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진왕은 지금 번오기의 목에 황금 1천근과 1만호의 식읍을 내걸고 찾고 있습니다. 신이 번오기의 머리와 우리 연나라의 비옥한 땅인 독항지역의 지도를 가지고 찾아간다면 진왕은 반드시 기뻐하며 신을 만나줄 것입니다.” 

단은 또 고민했다. 애당초 번오기에 대한 의리 때문에 일이 복잡해진 일 아니던가. 태자는 또 다시 “다른 방도를 구해보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물러갔다. 

형가는 단독으로 번오기를 찾아갔다. “장군께서는 진나라에서 잔혹한 일을 당하셨습니다. 부모와 온 집안이 몰살되었고, 진왕은 장군의 목에 많은 현상금을 걸어둔 상태입니다. 지금 단 한마디로 연나라의 근심을 없애고 장군의 원수를 갚을 방도가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번오기가 솔깃하여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 방도가 무엇입니까.”

형가가 말했다. “원컨대 장군의 목을 얻어 진나라 왕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진왕이 기뻐하며 반드시 저를 만나줄 것인즉, 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겠습니다. 장군의 원수도 갚고 연나라가 당한 모욕도 씻는 길이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번오기가 듣고 한쪽 어깨를 드러내며 말했다. “내가 밤낮으로 이를 갈며 애태우던 일인데, 이제 비로소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태자가 소식을 듣고 달려가 통곡하였으나, 이미 끝난 일이었다.  

형가는 번오기의 머리를 상자에 넣어 봉하고, 독항지역의 지리를 세밀히 그린 지도와 태자가 준비해둔 비수를 함께 챙긴 뒤 길 떠날 채비를 했다. 비수는 태자가 조나라의 명인에게 황금 100근을 주고 특별히 사들인 것으로, 칼날에 독을 묻혀 사람을 찔러보니 단 한 방울의 피만 흘러도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형가가 떠날 때 태자와 최측근 빈객들이 강변까지 따라와 제사지내고 배웅했다.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가 화답의 노래를 불렀다.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는 한 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리.’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비분을 느껴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은 관 옆으로 치솟았다. 형가는 수레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나라를 향해 떠나갔다.  

“그 방도가 무엇입니까?”
“원컨대 장군의 목을 얻어 진나라 왕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장군의 원수도 갚고 연나라가 당한 모욕도 씻는 길이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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