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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읽는 고전 사기(史記)] 안주하며 썩어가는 나라 체질을 바꾸다138. 영웅시대(9)-범수 中
정해용  |  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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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9  09: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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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大其都者危其國 尊其臣者卑其主
대기도자위기국 존기신자비기주
도시가 크면 나라가 약해지고, 신하가 높으면 임금이 낮아진다 <범수채택열전>

마침내 진 소왕과 독대할 기회를 얻었으나 범수는 말을 아꼈다. 사방에 엿듣는 귀가 많았으며 그 중에 실세인 양후의 수하 아닌 사람이 없었다. 때문에 범수는 내부의 모순에 대해서는 감히 말하지 않고, 외교국방에 관한 일만 언급했다.

고립된 왕을 위한 조심스런 조언

“대왕의 나라는 사방이 천연요새로 둘러싸여 견고합니다. 중원으로 통하는 서쪽에는 함곡관과 판(阪)이 있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합니다. 왕에게 용맹스러운 100만 대군과 전차 1천승이 있으니, 기회가 유리하면 나아가 공격하고 불리하면 후퇴하여 지키면 됩니다. 지리적 조건과 인적 자원을 다 갖추고 계시니 이에 의지해서 제후들을 평정하기란 용맹스러운 사냥개가 절뚝거리는 토끼를 잡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15년 동안이나 함곡관을 닫고 은거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는 곧 양후가 진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지 않고 대왕의 계획 중에도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왕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으며 말했다.

“과인의 계획 중 잘못된 것에 대해 듣고 싶소.”

“우선 양후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넘어가서 제나라 강읍을 공격하려 한다는데 이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소규모의 군대로는 멀리 가기 어렵고, 그렇다고 대규모의 군대를 출동시키면 진나라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또 인접한 나라를 방치하고 멀리 원정을 간다면, 설사 그들에게서 큰 땅을 빼앗는다 하더라도 너무 멀어 지킬 수가 없을 터이니 실속이 없습니다. 오히려 멀리 떨어진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인접한 국가를 공격(遠交近攻)하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중원지역에 위치하여 천하의 중추지대를 장악하고 있으니, 대왕께서 패왕이 되시려면 반드시 중원의 국가와 가까워져서 천하의 중추를 먼저 장악하고 그 후에 초나라와 조나라를 제압하셔야 합니다. 초나라가 강대해지면 조나라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조나라가 강대해진다면 초나라를 내 편으로 만드십시오. 초나라 조나라가 모두 내 편이 된다면 제나라는 반드시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섬기게 될 것이고, 제나라까지 내 편이 된다면 한나라와 위나라는 자연히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왕이 더욱 공감하면서 말했다.

“과인은 오래 전부터 위나라와 친하게 지내려 했으나 위나라는 변화가 많은 나라여서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겠습니까.”

범수가 대답했다.

“먼저 겸손한 말과 풍부한 예물로 그들의 마음을 얻도록 하십시오. 그것으로 안 되면 땅을 떼어 뇌물로 주어도 좋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 때는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공격해도 명분이 있게 됩니다.”

진왕이 이를 받아들여 범수를 객경에 임명하고 군사에 관한 일을 그와 상의했다. 이 계획에 따라 진나라는 마침내 위나라를 공격하여 형구를 함락시켰다. 또한 중원 진출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한나라를 정벌하였으며, 고립된 한나라 땅 상당군이 조나라에 귀순하자 조나라와 일전을 겨루었다. 진나라 대장 백기가 투항해온 조나라 군사 40만을 생매장한 장평전투가 바로 이때 벌어진 전쟁이다.

입조 5년 만에 외척을 몰아내다

범수가 왕을 보좌한지 5년 만에 진나라가 중원을 주름잡게 되자 왕의 신임은 두터워졌고, 범수 자신도 상당한 권한을 갖게 되었다. 그제야 범수는 왕에게 핵심을 찔러 말했다.

“신이 산동에 있을 때 ‘제나라에는 왕 대신 전문(田文)이 있고, 진나라에는 왕 대신 태후와 양후 화양군 고릉군 경양군이 있을 뿐이다’라고 들었습니다. 대체로 나라의 정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왕이고, 백성에게 이익과 해를 줄 수 있는 권력을 쥔 사람이 왕이며, 백성을 죽이고 살릴 위력을 지닌 사람을 왕이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태후는 왕을 돌보지 않고 아무 거리낌 없이 행사하며, 양후는 대왕께 승낙이나 보고도 없이 마음대로 외국에 사신으로 드나듭니다. 화양군과 경양군도 자기들 마음대로 백성을 벌주거나 죽이고 있으며, 고릉군은 정책과 관리임용을 대왕께 여쭙지도 않고 마음대로 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네 종류의 귀족을 두고 어찌 국가가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 이들 네 사람의 아랫자리에 서시면 실제로는 왕이 아닙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들 네 사람이 왕을 제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지방 수령이나 조정 대신, 심지어 왕의 좌우 시종에 이르기까지 양후의 측근 아닌 자가 없습니다. 왕께서는 조정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소왕이 “과연 그렇소”하고는 곧 태후를 폐출시키고 양후 고릉군 화양군 경양군을 각자의 직위에서 해임하여 함곡관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양후가 자신의 봉지로 가기 위해 짐을 실어갈 때 소가 끄는 수레가 1천대를 넘었고, 보물과 진귀한 물건들이 왕실보다 많았다.

소왕이 범수를 재상에 앉히고 응읍을 봉지로 주어 이후 범수는 ‘응후’라 불리게 되었다. 소왕 41년째 되던 해였다.

진나라가 동쪽으로 진출하여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려 하니, 위나라가 화친을 청하려고 사신을 보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사신은 하필이면 그 옛날 범수를 밀고하여 고문 받게 한 수고(須賈)였다. 그동안 진나라에서 범수가 장록이란 이름을 썼기 때문에 위나라에서는 진나라 재상이 범수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수고가 진나라에 도착하여 객관에 짐을 풀고 있을 때 범수가 허름한 옷을 입고 수고를 찾아갔다. “아니, 범숙 아닌가. 그동안 무사하였던가.” 수고는 옛날 수하였던 범수가 자신들의 목숨을 쥔 진나라 재상이라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진나라에는 왕이 없고 태후와 양후, 화양군 고릉군 경양군이 있을 뿐이다’라고들 합니다. 왕께서는 고립되어 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이들 네 사람이 왕을 제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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