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혁 경제부 차장
차종혁 경제부 차장

지난 25일, 미래창조과학부는 SK텔레콤(SKT)의 CJ헬로비전(CJHV) 인수합병과 관련해 국민의견을 수렴해 심사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달 15일까지 22일간 우편, 팩스, 전자우편(E-mail) 등의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한다.

미래부는 지난해 12월 1일 SKT이 CJHV 인수합병에 관한 인허가 신청서를 접수한데 따라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사절차를 진행 중이다. SKT는 CJ오쇼핑이 보유한 CJHV의 지분 53.92% 중 30%를 인수한 후 CJHV과 SK브로드밴드(SKB)의 합병을 추진할 계획이다.

SKT가 CJHV를 합병하려면 관계당국인 미래부의 인허가 승인이 필요하다.

우선 방송분야에서는 방송법(제15조, 제15조의2)과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IPTV법, 제11조)에 따라 SKT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 CJHV·SKB 합병 변경허가, SKB 합병 변경승인이 필요하다.

또 통신분야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제10조, 제18조)에 따라 SKT 주식인수(최대주주 변경) 인가, SKT 주식인수(최대주주 변경) 공익성 심사, CJHV 합병 인가를 거쳐야 한다.

심사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KT, LG유플러스 등 타 이동통신업체와 시민단체는 합병을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SKT가 CJHV을 인수합병하게 되면 방송·통신시장이 왜곡되고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게 반대의 이유다.

타 이통사에 이어 시민단체까지 반발하고 나서자 합병과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던 미래부는 ‘국민의견 수렴’을 나름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관련법과 시장 상황을 고려해 전문성을 갖고 명확하게 심사를 해야 할 관계당국이 심사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국민의견을 수렴해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심사 결과에 대한 잡음이 두려운 나머지 결과 발표 후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국민의견’으로 돌리려는 얄팍한 수로 보인다.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명칭에 걸맞는 창조적 발상이다.

방송·통신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을 담당부처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국민의견을 수렴해 반영하겠다는 미래부는 장관부터 실무자까지 왜 자리에 앉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국민의견 수렴은 심사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 되서는 안된다. 미래부는 국민의견을 수렴하기 전에 왜 관계당국이 자체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채 국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만약 미래부가 이미 인허가의 가닥을 어느 정도 잡은 상황에서 의견수렴을 거치기로 밝힌 상황이라면 이 또한 문제다. 국민의견 수렴이 ‘쇼’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당나귀를 팔러 시장에 가던 아버지와 아들이 주위 사람들의 말에 줏대없이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 당나귀만 잃어버린 채 집으로 되돌아갔다는 우화가 떠오른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