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영웅시대(2)-甘茂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此非臣之功也 主君之力也 차비신지공야 주군지력야
“(승전은) 신의 공이 아니라 임금님의 힘이었습니다.” (<史記>樗里子甘茂列傳)
3년간의 원정으로 중산국을 함락시킨 위(魏)장수 악양이 자기 임금에게,
그동안 많은 모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믿어준 것이 승전의 힘이었다며 

진 혜왕(秦惠王)이 죽고 무왕이 뒤를 잇자 혜왕의 총신이었던 장의(張儀)는 위(魏)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다. 그동안 장의를 못마땅히 여기던 대부들로부터 참소와 비방이 잇따르자 장의 스스로 꾀를 내어 위나라로 간 것이지만 사실상 축출이었다.

장의가 떠난 후 감무(甘茂)와 저리자가 함께 좌우 승상이 되었다. 감무는 한(韓)을 쳐서 함락시켰고 저리자는 자기 왕을 대신하여 주나라에 가 천자를 알현했다. 두 사람은 무왕의 두 팔이면서 동시에 경쟁관계이기도 했다.

기려지신(羈旅之臣): 굴러온 돌에는 시비도 많아

감무는 본래 이웃나라의 시골사람인데 시골의 은둔자에게서 제자백가의 이론을 배운 뒤 장의와 저리자를 통해 벼슬길에 올랐다. 혜왕 때 왕의 명령을 받고 저리자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해 공을 세우기도 했다.

무왕이 한(韓)나라 땅 의양을 탐내서 감무에게 명을 내리자 감무는 잠시 연구한 뒤에 말했다. “한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나라와 힘을 합치는 게 좋겠습니다.”

무왕이 그러라고 하자 감무는 또 말했다. “그러면 먼저 위나라로 가겠습니다. 가는 길에 상수(向壽)를 데려갈까 하오니 그에게 명하여 저를 보좌해서 함께 가도록 해주십시오.”

위나라에 가서 한나라를 협공할 계책을 짠 뒤에 감무는 상수를 본국으로 보내 소식을 전하게 했다. “위나라는 신의 제의를 수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공격을 시작하지는 말고 기다려주십시오.” 감무는 출정하기 전에 돌아와 식양이란 고을에서 무왕을 면담했다.

“왜 기다리라 했는가.”

감무가 말했다.

“의양은 큰 고을이라 천리 먼 길을 가서 공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먼저 드릴 말씀이 있어 뵙고자 했습니다.

옛날 효자로 소문난 증삼이 비읍에 살 적에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사람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증삼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잘못 들었겠지’하면서 태연하게 앉아서 베를 짰습니다. 조금 있다가 또 한 사람이 달려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겠지’하면서 베짜기를 계속했습니다. 조금 뒤에 또 한 사람이 달려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니까’라고 하자 어머니는 북을 내려놓고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달아났습니다. 증삼의 효성과 현능함을 믿는 어머니도 세 사람이 그를 의심하게 하자 덜컥 겁이 났던 것입니다.

지금 신의 현능함은 증삼에 미치지 못하고 임금님의 신에 대한 믿음은 증삼의 어머니가 아들을 믿음에 미치지 못합니다. 또 신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지 세 사람뿐이 아닌지라, 신은 언제 대왕께서 북을 내려놓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지난날 장의는 서쪽으로 파와 촉 땅을 병탄하고 북쪽으로 서하 밖의 땅을 개척했으며, 남으로는 상용을 빼앗아 나라를 넓혔습니다. 그러나 천하 사람들은 장의의 공이 크다 하지 않고 선왕의 공덕으로 돌렸습니다.

위나라 문후가 악양으로 하여금 중산을 공격하게 하자 악양은 3년에 걸쳐 중산을 함락시키고 돌아왔습니다. 악양이 보고할 적에 위 문후는 그동안 악양을 비방하는 내용의 투서가 한 상자나 되는 것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악양이 업드려 절하고 ‘중산을 정복한 것은 신의 공이 아니고 대왕의 힘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신은 기려지신(羈旅之臣; 다른 나라에서 온 나그네로서 벼슬을 얻은 신하)이온데, 제가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대왕의 오랜 충신들이 이 전쟁에 대하여 시비를 말한다면 대왕께서는 필시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전쟁이 중단된다면 왕께서는 위나라 왕을 속이고 신은 한나라에게도 면목을 잃게 될 것입니다.”

진 무왕이 다짐했다. “과인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겠소.”

“식양의 약속을 잊지 마소서.”

전쟁터에 있는 동안 장수는 왕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조정에서 장수를 모함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왕은 장수를 오해하는 일도 생긴다. 임진왜란이라는 난리의 와중에서도 조선 임금 선조가 곁에 있는 간신들의 말만 듣고 천리 밖 전쟁터의 이순신 장군을 끌어다 국문하던 일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본래 진나라 사람도 아닌 기려지신 감무. 그는 이 싸움이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님을 예측하고 그 사이에 왕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먼저 약조를 받은 뒤에 전쟁터에 나갔다. 위나라에 협상을 하러 갈 때 상수를 데려간 데에도 의도가 있었다. 상수는 왕과 가까운 인척으로 그를 통해 연락함으로써 왕이 의심할 바 없게 한 것이다.

감무가 출정하여 전쟁이 시작됐다. 5개월의 시간이 흐르도록 의양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과연 무왕 곁에 있던 저리자와 공손석 등 중신들이 감무의 능력을 의심하며 성토하기 시작했다. 무왕이 그 말에 흔들려 감무를 소환해 싸움을 중단시키려 했다. 이를 알고 감무가 전쟁터에서 보고를 올렸다. “저는 아직 식양에 있습니다(息壤在彼).” 왕이 그 말을 듣고 식양에서 감무에게 한 약속을 떠올렸다. 무왕은 ‘옳도다’하면서 많은 군사를 더 보내주었다. 감무가 마지막 공격을 가해 마침내 지쳐있던 의양성을 함락시켰다.

무왕은 힘이 세서 장사인 임비 오획 맹열 등과 힘 겨루기를 좋아했다. 재위한지 5년째 주나라에 갔다가 맹열과 무거운 솥을 들다가 정강이뼈가 부러졌는데, 그 상처로 인해 죽었다.

아직 후계자가 없었으므로 무왕의 아우가 즉위하니 그가 진 소왕이다.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는 실권자가 됐다. 선태후는 초나라 출신인데, 감무가 전령으로 썼던 상수는 바로 선태후의 친척이었다.

“신은 기려지신(羈旅之臣)이온데, 제가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대왕의 오랜 충신들이 전쟁에 대하여 시비를 말한다면 대왕께서는 필시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