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소진의 죽음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富貴則親戚畏懼之 貧賤則輕易之
부귀한즉 친척이라도 두려워하는데, 가난할 때는 함부로 대했구나. <蘇秦列傳>
소진이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된 후 고향에 들러 옛일을 생각하며 한탄한 말

정상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칼날 위에 서듯 긴장하여 걸어간다. 그런 다음 정상에 이르렀을 때, 긴장을 풀면 곧 기다렸던 액운이 다가오고 죽음이 자객처럼 달려와 심장을 겨눈다. 성공을 위해 힘들게 노력하지만, 그 성공을 거머쥐고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끝까지 긴장을 풀 수가 없다. 과연 무엇을 위한 성공인가. 인생의 아이러니다.

자기 시신을 미끼삼아 암살자에 복수하다 

세치 혀로 전국을 움직이고 여섯 나라의 재상을 동시에 겸한 소진(蘇秦)은 선비로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합종책에 의해 전국 칠웅이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15년간의 평화가 찾아왔지만, 그의 성공을 무너뜨릴 요인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소진의 근거지는 연나라다. 소진의 계책을 받아들여 합종을 성사시킨 연 문공이 죽고 아들 이왕(易王)이 즉위한 뒤에 소진은 죽은 문공의 부인과 친해져 사통했다. 이왕은 그 사실을 알았지만 워낙 소진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까닭에 이를 문제 삼지 않고 더욱 우대하였다. 그러나 소진은 언젠가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염려했다. 그는 왕에게 제나라에 가서 반간계(反間計)를 쓰겠다고 자청했다. 왕이 “원하는대로 하시오”라며 허락했다.

소진은 연나라를 떠날 때 나라에 죄를 얻은 것으로 꾸며 제나라에 망명하였으므로 제 선왕은 그를 의심없이 받아들여 객경으로 삼았다. 선왕이 죽고 아들 민왕이 즉위하자 소진은 선왕의 장례를 후히 지내도록 설득하고 궁실을 높이 짓고 정원을 넓히도록 조언하였다. 제나라로 하여금 재정을 낭비하여 국력이 피폐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민왕은 아무 의도를 모른 채 소진을 신임했다.

왕의 총애를 다투는 대부들이 소진을 시기하여 암살하려고 하였다. 기회를 노리다가 소진을 습격했는데, 소진은 죽지 않고 달아났다. 제나라 왕이 범인을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소진은 그 상처로 인해 죽어가면서 왕에게 색다른 부탁을 했다.

“제가 죽으면 신을 거열형(몸을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사형방법)에 처하고 시장 사람들이 보게 하십시오.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혼란하게 했다’고 선포하시면 신을 살해하려 한 자들을 반드시 체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암살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기 몸을 미끼로 던진 것이다. 과연 왕이 그 말대로 하자 소진을 습격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제나라 왕이 소진을 위하여 그들을 사형시켰다.

귀 얇은 왕, 농락당하다 

연나라에서는 이왕이 12년만에 죽고 그 아들 쾌가 왕이 되었다. 연나라 재상은 자지(子之)였는데, 예전에 소진과 사돈을 맺은 사람이다. 자지는 소진의 아우 소대(蘇代)와도 교분이 있었고, 소대는 형이 죽은 후에 제나라 민왕을 찾아가 등용되었다.

소대가 제나라 사신 자격으로 연나라에 찾아갔을 때 연왕이 소대에게 “제 선왕은 어떠한가”하고 물었다. 소대는 “패주가 되기는 틀렸습니다”라고 깎아서 말했다. 이유를 묻자 소대는 “자기 신하를 신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하면서 군주가 신하를 신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했다.

사실 소대는 재상 자지와 친분이 두터웠으므로, 연왕을 설득하여 자지의 권한을 강화시켜주려 한 것이다. 귀가 얇은 연왕은 그 말에 설득되어 자지에게 더욱 많은 권한을 주며 신임했다. 자지는 소대에게 1백금을 마음대로 쓰도록 하여 보답했다.

재상 자지의 물밑작업이 있었던지 여러 사람들이 왕에게 같은 말을 했다.

녹모수라는 사람이 연왕에게 또 말했다. “나라를 재상에게 모두 맡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옛날의 요임금을 성군이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요임금은 성인 허유를 찾아가 왕위를 넘겨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했어도 허유가 받아들인 건 아니었고 요임금도 왕위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임금의 지위를 넘기려고 했다는 말만으로 명성을 얻은 것입니다. 왕께서도 재상 자지에게 양위하겠다고 말씀해 보십시오. 자지는 감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임금께서는 왕위를 유지한 채 성군이란 명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신하로서 할 말이 아니었지만 연왕은 솔깃했다. 뭐가 잘하는 일인지는 몰라도 요임금처럼 성군이란 명성을 듣고 싶긴 했다. 연왕은 그 말에 따라 왕의 자리를 자지에게 맡겼다. 자지는 사양하는 척하면서 그 권한만은 받아들였다.
 
또 어떤 사람이 이를 비꼬는 척 말했다.

“옛날 하나라의 우 임금은 재상 익을 자기 후계자로 천거하여 왕위를 물려주었으나 실제 권세는 그 아들에게 있었다. 우 임금이 겉으로는 익에게 물려준 것처럼 했지만 아들 계의 권세가 막강하기 때문에 결국은 왕권이 자기 아들에게로 돌아올 것을 계산했던 게 아니겠나. 지금 임금이 국권을 정사를 자지에게 맡겨주었지만 이것은 명목일 뿐, 실제로는 태자에게 권리가 돌아가게 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연왕이 그 말을 듣고는 더욱 자기 마음이 진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자지에게 많은 봉록을 받는 고관들의 임용권까지 넘겨주었다. 자지는 마침내 임금 자리에 앉아 왕권을 행사하였다. 늙어 힘이 없는 연왕은 정사에 관여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자지의 신하처럼 되었다.

요임금을 성군이라 합니다. 허유에게 왕위를 넘겨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왕께서도 재상 자지에게 양위하겠다고 해보십시오.” 성군이란 명성을 듣고 싶던 왕은 정말로 왕위를 자지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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