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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읽는 고전 사기(史記)] 게으른 자를 잡아들여 노비로 삼다122. 상앙의 법치(2)
정해용  |  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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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7  16: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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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得人者興 失人者崩 득인자흥 실인자붕
인심을 얻는 자는 일어나고 인심을 잃는 자는 무너진다 <商君列傳>
상앙의 법치가 가혹하여 원성이 높아지자 은자 조량이 상앙에게 충고하면서

상앙(商鞅), 즉 공손앙의 정치를 흔히 법치(法治)라고 이른다. 상앙은 한비자와 더불어 법가(法家)의 리더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한비자가 이론가로 이름을 날린 데 비해 상앙은 실권을 장악하고 강력한 법치를 실험했다.

공정한 법치로 부강해지다

법치의 핵심은 공정한 법 집행에 있다. 강력한 법을 만들어놓고 왕족이나 권력자들에게 많은 예외를 허용하면 법은 백성에게만 가혹하게 되므로 나라는 안으로 부패하며 민심이 떠나게 된다.

진나라는 상앙의 법치를 시행한 후 날로 부강해졌는데, 무엇보다 법이 왕족부터 농민들에게까지 공평하게 집행되었기 때문이다. 왕족이나 귀족이라 하더라도 병역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 벼슬을 잇거나 영예를 누릴 수 없게 했으며,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벼슬을 주었고, 밭갈이나 베짜기와 같은 본업에 충실한 사람은 부역과 부세를 면제해준 반면 게을러서 가난한 자들은 모두 잡아들여 관청의 노비로 삼았다. 세금이나 부역을 면제받기 위하여 성년의 부자나 형제가 분가하지 않고 한 집에 사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금지하고 성년 남자가 분가하지 않는 경우 부세를 두 배로 매겼다.

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을 때 진나라의 백성들은 법에 만족하고 있었다. 남의 물건을 취하거나 빼앗는 자에게 형벌을 엄하게 하자 길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줍는 자가 없으며 산에는 도적이 없었고, 국가를 위한 전쟁에는 용감하면서도 사사로운 시비로 개인끼리 싸우는 일에는 겁을 먹었다. 그래서 도시나 시골이나 잘 다스려졌다. 전국 행정조직을 정비하여 31개 현을 두고, 농지를 정리하여 경작지 사이에 둑이나 경계를 터서 경작을 용이하게 하고 부세를 공평하게 하니 농민들도 불평이 사라졌다.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들마다 살림이 넉넉했으며 국가 재정도 풍족해졌다. 그래서 진나라는 함양에 새 궁궐과 궁정을 짓고 수도를 옮길 수 있었다. 나라의 중심이 변방에서 중원으로 이동한 것이다.

전국시대 일곱 나라 가운데 진나라가 가장 강력하여 다른 여섯 나라가 진나라를 중심에 두고 이합집산을 하게 되었으니, 천하통일의 기틀이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태자에게 내린 처벌

그러나 강력한 법치에는 몇 가지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첫째는 법에 대한 저항이고, 둘째는 필연적으로 가혹함이 따른다는 문제다.

상앙의 법도 그랬다. 처음에 법을 만들었을 때 효공을 비롯하여 진나라 사람들은 과연 이 법이 지켜질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러자 상앙은 길이가 3장이나 되는 나무를 서울의 남문에 세워놓고 포상금을 걸었다. “이것을 북문에 옮겨놓을 수 있는 자에게는 10금을 주겠다.” 나무 하나 옮기는 것으로 상을 준다 하니 백성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아무도 나무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다시 새로운 방이 붙었다.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50금을 주겠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북문으로 옮겼다. 그에게 즉시 황금 50근을 주고는 ‘국가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을 선전했다. 그리고 나서 법령을 공포했다.

법이 공포된 뒤에도 법이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 1년 동안 전국 각지로부터 도성까지 찾아와 법이 부당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의 수는 천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이때 태자가 법을 위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상앙은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위반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군주의 후사에게 차마 벌을 내릴 수 없으므로 그의 태부인 공자 건을 처벌하고 태사 공손고에게는 경형(黥刑; 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벌)을 내렸다. 이후 왕족 귀족부터 민초들까지 법을 함부로 어기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강력하고도 공정한 법은 백성들에게는 환영을 받았으며, 이로써 국가는 부강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법이 원성을 낳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특권을 누릴 수 없게 된 왕족이나 귀족들의 불만은 안으로 누적되었다.

상군이 조량(趙良)이라는 사람이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만나 교제하기를 원했는데, 조량은 거절하면서 말했다. “반성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 속에 있는 눈으로 보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자신을 스스로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합니다. 순임금께서도 ‘스스로 낮추면 더욱 높아진다’ 했으니 당신은 순임금의 도를 행하시면 됩니다. 저의 의견을 물을 것도 없습니다.”

또 말했다. “당신은 외출할 때마다 수십량의 수레가 따르며 수레마다 무사들이 타고 있는데, <시경>에 ‘덕을 믿는 자는 번창하고 힘을 믿는 자는 망한다‘했으니 당신은 마치 아침이슬과 같이 위태롭습니다. 어찌 전원으로 물러나 화초에 물이나 주면서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상앙은 충고를 듣지 않았다.

얼마 뒤 진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이 되었다. 벌 받은 적이 있는 공자 건이 밀고하여 상앙은 반역죄로 수배되었다. 상앙이 도망하여 국경 함곡관에 이르렀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여관 주인은 “상앙의 법에 의해 여권이 없는 분은 머무를 수 없습니다”하고 거절하였다.

겨우 달아나 위(魏)나라로 갔는데, 위나라는 예전에 상앙에게 당한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위나라 사람들은 “진나라와 원수질 수 없다”며 그를 진나라로 돌려보냈다. 상앙은 수하들을 불러 모아 저항했으나 곧 체포되어 몸이 찢겨(거열형) 죽었다.

“당신은 외출할 때마다 수십량의 수레에 무사들이 타고 뒤따릅니다. ‘덕을 믿는 자는 번창하고 힘을 믿는 자는 망한다‘했으니 당신은 마치 아침이슬과 같이 위태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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