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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읽는 고전 사기(史記)] 하수의 잔꾀, 고수의 매서운 복수120. 배신자 방연의 최후
정해용  |  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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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4  0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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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夫解雜亂 紛糾者不控捲 부해잡란 분규자불공권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면 주먹을 쥐고 쳐서는 안 된다. (<사기>손자오기열전)
전기가 전쟁이 벌어진 조나라로 가려하자 손빈이 위나라 도성을 치는 것이 낫다며  

손빈(孫臏)은 <손자병법>의 주인공 오나라 손무의 후손으로 제나라 땅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위(魏)나라 방연과 함께 귀곡자(鬼谷子) 문하에서 배웠다.

방연은 승부욕이 강하고 재능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손빈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하늘 아래 손빈이 존재하는 한 평생 2등을 면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공부를 마친 방연이 먼저 위나라로 가서 벼슬을 얻었다. 위 혜왕에게서 장군이 되어 명성을 떨쳤으나, 동문수학한 손빈이 늘 마음에 걸렸다. 행여 손빈이 다른 나라에서 장수가 될까 무서워서 방연은 손빈을 위나라로 불러들였다.

방연이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란 걸 깜박 잊은 것은 손빈의 실수였다. 방연은 빈을 자기 식객으로 머물게 할 뿐, 혜왕에게 소개하거나 중요한 직책을 맡기지 않았다. 막상 불러놓고 보니 넘을 수 없는 벽이 더 크게 느껴져서, 방연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침 손빈이 무료한 나날을 한탄하며 고향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방연이 이를 가로채 적당히 위조한 다음 위 혜왕에게로 가져가 손빈을 무고했다. 제나라에 있는 친구와 연통하며 위나라의 정보를 넘기는 첩자노릇을 했다는 혐의였다. 혜왕이 손빈을 처형하라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방연은 손빈을 변호하는 척하며 목숨을 구해주었다. 손빈은 사형 대신 이마에 글자를 문신으로 새기는 경형(黥刑)과 함께 정강이 힘줄을 자르는 빈형(臏刑)을 받았다. 빈이라는 이름은 이때 얻은 별명이다.

무인으로서 두 다리를 못 쓰게 되고 그 얼굴로 사람들 앞에 나설 수도 없게 되었으니 더 이상 방연의 경쟁자가 될 수 없을 것이었다. 이것이 방연의 노림수였다. 방연은 그를 죽여 없애기보다는 곁에 두고 병법을 연구하게 하여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손빈은 이때만 해도 방연이 자신을 억울한 죽음으로부터 구해준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결국 손빈도 진실을 알게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사마천 연구가 김영수의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의 내용이 큰 참조가 됨을 밝힌다).

시간이 흐른 뒤, 제나라로부터 사신이 왔다. 제 위왕(威王)의 현신 순우곤이다. 손빈은 은밀히 사람을 보내 순우곤 일행과 접촉했다. 사신들이 귀국할 때, 빈은 사신 일행의 짐수레 속에 몸을 숨겨 위나라를 떠났다. 손빈은 제나라 장수 전기의 빈객이 되었다.

전기가 제나라 공자들과 어울려 경마 도박을 즐길 때 손빈이 제시한 필승의 전략은 지금까지도 잘 알려져 있다. 손빈은 되도록 많은 돈을 걸게 한 뒤에 말했다.

“각자 세 마리 말의 등급을 상중하로 나누어 세 번 겨루는 경기이니, 간단히 이길 수 있습니다. 상대가 상등마를 내세울 때 장군은 하등마를 내보내십시오. 한 판을 내주는 겁니다. 그 다음 상대가 중등마를 내보낼 때 장군은 상등마를, 상대가 하등마를 내보낼 때 장군은 중등마를 내보내면 한 판을 지고 두 판을 이기니 2승1패로 이기게 됩니다.”

과연 전기는 큰돈을 땄다. 전기가 빈을 위왕에게 소개하니 왕이 만나보고 스승으로 삼았다.
빈이 말없이 기다리던 기회는 머지않아 다가왔다.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에서 구원을 요청해왔다. 전기가 장군이 되고 빈은 군사(軍師)가 되어 휘장을 친 수레를 타고 출동했다.

본래 전기는 곧바로 한나라를 구원하러 가려 했는데 손빈이 말했다. “어지럽게 엉킨 실타레는 주먹으로 친다고 풀리지 않으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면 그 사이에 끼어들어 그저 때려서는 안 됩니다. 강한 부분을 피하고 약한 부분을 공격하면 자연히 풀리게 됩니다. 지금 위나라는 정예병을 이끌고 갔을 것이니 본국의 방비는 허술할 것입니다. 속히 위나라의 도성 대량(大梁)으로 진격하여 그 허술한 곳을 치는 것이 낫습니다.”

제나라 군이 대량을 유린하자 위군은 황급히 돌아왔다. 그러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제군이 계릉에서 위군을 크게 무찔렀다.

13년 후 이번에는 위나라가 조나라와 함께 한(韓)을 공격했다. 한이 구원을 요청하자 제나라군은 이번에도 곧장 대량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위군의 방연이 소식을 듣고 급히 군사를 돌려 돌아왔다. 제군은 이미 국경을 넘어 대량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돌아온 위군이 그 뒤를 쫓았다. 제군의 야영 흔적을 살펴보던 위나라 대장 방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군이 첫날 야영하던 곳에는 10만개의 아궁이가 있었는데, 둘째날 야영지에는 아궁이가 5만 개였고, 다음에는 3만개로 줄어있었다.

“제나라 놈들은 역시 겁쟁이들이다. 우리 땅을 침범한지 사흘 만에 도망친 병사가 절반도 넘는구나.” 방연은 자신감에 넘쳐서 아예 소수 정예군만으로 급히 뒤를 쫓았다. 그날 저녁 닿은 곳은 마릉이란 협곡이었다. 협곡은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통과할 수 없으므로 매복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러나 방연의 자신감은 그런 위험 정도에 위축되지 않았다. 이미 어두워진 협곡을 달려 조금 평탄한 곳에 이르렀을 때, 큰 나무 한 그루가 허옇게 껍질이 벗겨진 몸을 달빛에 드러내고 있었다. 병사들이 가서 보고 무슨 글자가 있다고 외쳤다. “횃불을 밝혀보아라.” 방연의 명령에 병사들이 횃불을 밝혀 나무를 비추자 큰 글자가 드러났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을 것이다.”

그 순간 횃불이 밝혀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사방으로부터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제야 방연은 사라졌던 손빈이 제나라에 살아있음 깨달았다. 천연의 지형지세와 달빛, 군대의 진군속도는 물론 방연의 오만과 조급함 같은 심리적 요인까지 꼼꼼히 계산에 넣은 손빈의 계략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방연은 손빈을 저주하며 스스로 목을 베고 죽었다.

병사들이 가서 보고 무슨 글자가 있다고 외쳤다. “횃불을 밝혀보아라.” 방연의 명령에 병사들이 횃불을 밝혀 나무를 비추자 큰 글자가 드러났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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