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제 경공의 오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可則立之 不可則已 가즉립지 불가즉이
가하다면 세워주시고 불가하다면 그만두시오. <史記>田敬仲完世家)
전기가 양생을 군주로 세우려 할 때 대부 포목이 망설이자 양생이 나서며     

춘추시대 주요 제후국의 하나인 제나라에서 주인이 바뀐 것도 그 무렵이다. 제나라는 주나라 건국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강태공 여상(呂尙)에게 분봉된 나라였다. 최초의 패자인 제 환공과 관중의 나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건국 6백년이 지나 전국시대로 접어들 무렵 제나라는 이미 여(呂)씨의 나라가 아니었다.

여씨가 나라를 잃게 된 화근은 경공(景公)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공은 58년이나 제나라 군주로 군림하면서 최저와 경봉의 내홍을 겪었고, 노(魯)나라에 등장한 공자(孔子)를 등용하려다 안영의 반대로 실패한 후 노 정공과 회담을 빙자해 공자를 제거하려다 오히려 공자의 기지로 세 개의 성을 넘겨주었던 사람이다.

졸지에 모반 주모자가 된 대부

경공이 오래 집권하다 보니, 권력을 물려주기도 전에 태자가 먼저 죽었다. 그때 경공의 마음은 젊은 애첩의 아들 도(筡)에게 가 있었다. 죽을 때가 되자 경공은 대부들의 눈치를 보아가며 국혜자와 고소자에게 부탁하여 어린 도를 후계자로 세우게 했다. 태자 도가 즉위하니 그가 안유자다. 다른 공자들은 위나라 노나라 내나라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망명했다.

대부들 가운데 전기(田乞)는 일찍부터 모반의 뜻을 품고 있다. 전기는 곧 고소자와 대부들 사이를 이간하여 서로 믿지 못하게 한 뒤에 대부들과 함께 고소자와 국혜자를 공격하여 몰아내고 노나라에 망명 중이던 공자 양생을 불러들여 군주로 삼았다. 고소자와 국혜자를 몰아낸 직후 전기는 대부들을 집으로 초청해 연회를 열었다. 연회석 중앙에 자루로 덮어 가려놓은 것이 있었는데, 아무도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주흥이 무르익었을 때 전기가 자루를 벗겨 보이자 대부들은 모두 놀랐다. 그 안에는 노나라에 망명했던 공자 양생이 앉아있었다. 전기가 제후를 바꾸려고 은밀히 양생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이 분이 바로 제나라의 임금이오.” 전기가 외치자 모두들 놀라서 엎드렸다.

공궁에는 아직 안유자가 앉아있으니, 전기의 선언은 일종의 모반이었다. 전기의 집에 모인 대신들은 그 자리에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자의든 타의든 모반에 동조자가 된 셈이다. 영향력 있는 재상으로는 대부 포목이 있었다. 포목은 술에 취해 있었는데, 전기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이미 포목과 상의하여 양생을 옹립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자 포목이 놀라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그대는 경공의 명령을 잊었는가?”
전기가 포목과 미리 상의했다는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포목의 반응으로 보면, 전기의 말은 과장이거나 허위였음이 분명하다. 아닌 밤중 홍두깨 격으로 졸지에 모반의 주모자가 된 포목의 기분은 무척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포목의 호통에 장내는 순간 써늘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 긴장을 잠재운 건 공자 양생이었다.

양생이 성큼성큼 포목에게로 다가오더니 손을 모으고 읍하며 말했다. “될 만하면 세워주시고, 아니라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可則立之, 不可則已).” 부드러운 대꾸는 저주나 협박보다 무섭다. 포목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두 경공의 아드님들인데, 안될 거야 없지요.” 얼버무리는 말로 위기는 지나갔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들이 모두 충성을 맹약하여 양생을 군주로 옹립했다. 그가 도공이다. 도공은 궁으로 들어간 즉시 안유자를 시골로 유배보냈다. 안유자는 시골로 가는 도중 야영하던 장막 안에서 죽었다. 늙은 경공이 애첩을 아끼는 마음에 승계원칙을 무시하고 아직 어린 서자를 후계로 세우는 바람에 빚어진 비극이다.

두 실세의 갈등 위기가 되다 

도공이 즉위한 직후 제나라는 노나라를 침공했다. 도공이 노나라에 망명했을 때 계강자가 동생 계희를 양생에게 주었는데, 그가 즉위하여 부르려 하자 계희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양생이 귀국한 사이에 계희는 숙부 계방과 사통하고 있었다. 제나라는 노나라를 공격하여 땅 일부를 빼앗고 계희를 돌려받은 뒤 화해했다. 시간이 지나 양생이 다시 계희와 사이가 좋아지자 제나라는 노나라에 빼앗은 땅을 되돌려주었다.

대부 전기가 죽은 후 대부 포목은 도공을 시해했다. 포목과 도공의 사이는 계속 불편했던 모양이다. 오나라 부차가 이를 구실삼아 뱃길로 쳐들어왔으나 제나라군이 물리쳤다. 이번에는 도공의 처가인 노나라가 진(晉)의 조앙과 함께 쳐들어왔다. 노-진 연합군은 포목의 군대를 쳐부수고 도공의 아들 임(壬)을 군주로 세우고 돌아갔다. 그가 간공이다.

간공은 전상(田常)과 자아(子我)를 좌우 재상으로 삼았다. 자아는 간공이 아버지 도공과 함께 노나라에 망명했을 때부터 총애하던 측근이며 전상은 도공을 군주로 옹립하고 보좌했던 측근 전기의 아들이다. 전상은 제나라에서 큰 세력을 구축한 전(田)씨들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큰 야망을 품고 있었으며 자아는 오로지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었다. 자아가 간공의 신임을 바탕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전상은 그를 경계하며 두려워하였다.

간공이 신임하는 대부 전앙은 충직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간공에게 간하기를 “전상과 자아를 함께 재상으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을 선택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간공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충고를 무시했다. 두 마리 맹수를 같이 기른 댓가는 혹독하다. 그 위기의 시간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양생이 제나라 군주가 되어 계희를 부르자 사양했다. 양생이 귀국한 사이에 숙부 계방과 사통했기 때문이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여 계희를 잡아갔다. 양생이 다시 계희를 총애하게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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