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오기의 변법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明法審令 捐不急之官 명법심령 연불급지관
법령을 분명히 바로 세우고 불필요한 관직을 없애다 <孫子吳起列傳>
오기가 초나라 도왕의 재상이 되어 정치를 개혁하면서 한 일 

서하 태수 오기(吳起)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오기는 재물을 탐낸 사람 같지는 않다. 반면 명예에 관한 야망만큼은 누구보다 컸던 것 같다. 어려서는 적지 않던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벼슬자리를 구하려 애썼고, 자신을 비웃는 마을사람들을 30명이나 죽였으며, 노나라에서는 장수로 출세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제나라 출신의 아내를 죽였다.

왜 그대가 재상인가

위(魏)나라에 와서 비로소 무용을 떨치고 관리로서도 고위직에 올랐으니 그의 꿈은 크게 이루어진 듯했다. 위로 군주로부터 아래로 사졸들과 고을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크게 신망도 얻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에 한계가 있으랴.

위 무후가 재상을 임명했는데, 전문(田文)이란 사람이 재상이 됐다. 전문 역시 백성의 신망이 높은데다 연륜이 높고 지혜롭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기는 자신이 공이 많으면서도 재상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데 대해 질투심을 참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전문과 마주치자 단도직입적으로 시비를 걸었다.

“내가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보고자 하는데 어떻소?” 그러자 전문은 “좋소!”라며 쾌히 받아들였다. 오기가 말했다. “삼군의 장군이 되어 사졸들이 기꺼이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하여 다른 나라가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한 점에서 당신과 나 가운데 누가 더 낫소?” 전문은 “그야 당신이 낫지요.”라고 답했다. 오기가 또 “백관을 다스리고 만민을 가까이 하며 국고를 충실히 한 점에서 나와 당신 중 누가 더 낫소?”라고 묻자 오기는 또 “그 또한 내가 당신만 못하오.”라고 답했다.

오기는 점점 의기양양해졌다. 또 질문했다. “서하를 수비하여 진(秦)나라 군사들이 감히 동쪽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한과 조나라를 복종시킨 점에서 나와 당신 중 누구의 공이 더 크오?” 전문은 이번에도 “당신이 나보다 낫소.”라고 순순히 인정했다. 오기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하는 말이오. 이 세 가지 점에서 당신이 모두 나보다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소. 이게 타당한 일인가요?”

전문이 차분히 말했다. “지금 임금께서는 나이가 어려 나라가 불안하고 대신들은 복종하지 않으려 하며 백성들도 신뢰하지 않고 있소. 이런 때에 재상의 자리가 당신에게 적합하겠소, 나에게 적합하겠소.” 오기는 즉시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당신이 적합하겠소.” 아무래도 임금이 바뀌는 전환기에는 대신들이 의지하고 백성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인품을 가진 자가 더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오기는 비로소 자기가 전문보다 못함을 깨달았다.

나이 많은 전문은 일찍 죽었다. 뒤를 이어 공숙이 재상에 올랐다. 공숙은 군주의 척족인데, 오기를 시기하고 경계하였다. 공숙의 측근이 이를 알고 오기를 쫓아낼 모략을 꾸몄다.

공숙은 모사꾼의 조언에 따라 무후에게 가서 오기가 위나라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중상한 뒤, 그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공주를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해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오기 보는 앞에서 공주를 모독하여 화를 내게 하자 오기는 공주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다음날 아무 것도 모르는 무후가 오기에게 공주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오기가 제안을 사양하자 무후는 공숙의 말을 되새겨 오기를 의심하게 되었다. 무후가 자신을 의심하게 된 것을 깨달은 오기는 신변의 불안을 느끼고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다.

오기의 변법

국가개혁의 의지를 갖고 있던 초 도왕은 오기의 능력과 청렴강직한 명성을 익히 듣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그를 받아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오기는 곧 법령을 정비하고 군비와 재정확충을 위한 강경한 개혁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불필요한 관직을 없애고 국록만 축내던 왕실 친족들의 직급과 봉록을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군사를 양성했다. 말로만 합종이니 연횡이니 하며 계략에 의존하는 유세객들의 정치를 배격하고 실질적인 강병책으로 국력을 키웠다. 이를 오기의 변법이라 한다. 그 결과 초나라는 남으로 월(越)나라 여러 부족들을 평정하고 북으로는 진(陳) 채(蔡)를 병합했으며, 서쪽으로 진(秦)을 토벌하여 강성한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만일 초나라가 이대로 새로워졌다면, 후일 중원의 최후 정복자는 진시황이 아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초나라는 그런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누리던 무상의 지위와 특혜를 빼앗긴 기득권 세력들이 오기를 미워하여 그를 죽이고자 했다. 도왕이 죽자 때를 기다리던 왕족과 대신들이 어수선한 국장 기간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켰다. 무장한 귀족들이 떼로 몰려들자 오기는 궐 안으로 달아나다가 왕의 시신 위에 엎드렸다. 반란군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오기에게 화살을 무수히 퍼부어 죽여 버렸다. 불가피한 일이지만, 화살은 죽은 왕의 시신에도 꽂혔다. 국장이 끝나고 태자가 즉위한 뒤, 오기를 사살하느라 왕의 시신에 화살을 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주살했다. 불경죄로 처형당한 가문이 70여 세대에 이르렀다. 명장 오기는 죽임을 당하면서도 반란자들에게 톡톡한 보복을 돌려준 셈이다.

세 나라를 섬기면서 무공을 세운 오기는 76차례 전쟁에 나가 64번을 이겼다고 한다. 나머지는 무승부다. 그러나 영웅을 감당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그 나라의 운명이다. 그를 죽이거나 제거할 수 있는 자는 언제나 자기 편 내부에 있었다.

오랫동안 누리던 무상의 지위와 특혜를 빼앗긴 기득권 세력들은 오기를 죽이려고 별렀다. 도왕이 죽자 어수선한 틈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켰다. 오기를 죽이려고 쏜 화살들이 왕의 시신에도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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