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뇌물의 법칙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久受尊名 不祥 구수존명 불상
(보통사람으로서) 존귀한 명성을 오래 유지하면 불길하다. <越王句踐世家>
제나라에서 다시 성공한 범려가 벼슬까지 얻자 재산과 직위를 버리고 떠나며

제나라를 떠나 도 땅에 정착한 범려, 도주공은 또 한 번의 성공을 이루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도에 정착한 뒤 아들도 하나 더 낳았다.

그런데 막내가 청년이 되었을 무렵, 둘째 아들이 무슨 일로 사람을 죽여 초나라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주공은 “살인했으면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듣자하니 재력이 있으면 살아날 길도 있다고 한다”면서 막내아들을 황금 1천 일(鎰)과 함께 초나라로 보내려 했다.

가난한 초나라 선비 장선생

그때 맏아들이 나서서 “저에게 맡기지 않고 막내에게 맡기시는 것은 제가 현명하지 못해서입니다. 저는 장남으로서 자격이 없군요.”라면서 자결하려 하였다.

도주공은 하는 수없이 맏아들에게 일을 맡겼는데, 편지를 한 장 써주며 말했다.

“초나라에 가거든 도성 밖에 사는 장(莊) 선생을 찾아가거라. 황금과 편지를 그대로 장 선생에게 맡기면 무슨 말이 있을 것이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절대로 따지거나 토론하지 말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

초나라에 도착한 맏아들은 곧장 장 선생을 찾아갔다. 외성 벽에 붙어있는 아주 빈한한 집이었다. 장 선생은 편지를 읽고 나서 말했다. “이 길로 바로 돌아가거라. 절대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동생이 나오더라도 절대 그 까닭을 묻지 말거라.”

맏아들은 황금을 맡겨두고 밖으로 나왔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처럼 빈한한 선비에게 무슨 능력이 있으랴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장 선생 눈에 띄지 않게 도성에 머물면서, 실력 있는 다른 고관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따로 가져온 황금 몇백 알을 바치고 동생의 일을 부탁했다.

장 선생은 빈민촌에 살고 있을망정 청렴결백한 사람이었고, 초나라 사람이라면 왕부터 서민까지 모두 믿고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옛 친구인 범려가 자기를 잊지 않고 어려운 일을 맡겨온 것을 보고 장 선생은 그 신뢰에 보답하고자 했다. 황금 1천 일은 2만 냥이나 되는 큰 재물이었으나, 그것은 그 만큼이나 되는 큰 신뢰를 보여주는 표시일 뿐 그들 사이에 재물을 거래하는 수단은 아니었다. 아내에게 “황금은 일이 끝난 뒤 돌려보낼 것이니 절대 손을 대지 말고 건넌방에 잘 놓아두시오”라며 맡겨두었다.

장 선생이 그날로 자기 왕을 찾아가서 말했다.
“제가 보니 어떤 별이 모처로 움직였는데, 나라에 불길한 조짐입니다.”

왕이 놀라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묻자 장 선생은 “덕을 베풀어 민심을 돌리는 것이 최선책입니다.”라고 말했다. 왕은 민심을 얻기 위해 대사면을 결심했다.

써야 할 때와 지켜야 할 때

맏아들에게 부탁받은 관리가 이 사실을 알고는 맏아들을 찾아가 “곧 대사면이 있을 것이오”라고 귀뜸했다. 단지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맏아들은 대사면이 관리 덕에 이루어지는 줄로 짐작하고는 곧바로 장 선생을 찾아갔다.

맏아들을 다시 맞이한 장 선생이 깜짝 놀라면서 “아직 돌아가지 않고 있었던가?”하니 맏아들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동생 일로 찾아뵈었는데, 이미 대사면이 논의되고 있다 하니 선생님께서는 수고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장 선생은 곧 황금을 돌려달라는 뜻인 줄 알아채고는 “건넌방에 자네가 두고 간 황금이 그대로 있으니 가져가게”하면서 헛기침을 하고 나가버렸다. 어차피 돌려보낼 생각이었으므로 되돌려주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친구의 아들로부터 의심받았다는 사실에 크게 상처를 받았다.

수치심을 느낀 장 선생은 그 길로 다시 왕궁에 들어갔다.
“신이 지난 번, 별의 움직임에 대하여 말씀드리자 왕께서는 덕을 베풀어 보답키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듣자 하니 오가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를, 도 땅의 부자 주공이 사형수인 아들을 살리려고 황금으로 왕의 측근을 매수하였고, 이번 대사면도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공의 아들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답니다.”

왕은 진노하여 “내가 아무리 부덕하다 한들 어찌 부자 한 사람의 아들을 위해서 은혜를 베푼다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하고는 즉시 판결을 내려 도주공의 아들을 처형했다.

이튿날 대사면이 이루어졌으나 도주공의 맏아들은 동생의 시신을 싣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와 온 동네사람들이 모두 슬픔에 빠졌다.

도주공만이 허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큰애가 성공하지 못할 줄을 알았다.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돈을 아까워해서 잘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큰애는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 고생했고, 살기 위해 고난을 겪었으므로 함부로 돈을 쓰지 못한다. 반면 막내는 태어날 때 이미 집이 부유했으므로 돈이 어떻게 생기는 줄 알기나 하겠느냐. 따라서 쉽게 쓰고 아까워하지 않는다.

내가 막내를 보내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큰애는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므로 동생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이치가 그러하거늘, 슬퍼할 것 없다. 나는 밤낮으로 둘째의 시신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느니라.“

“나는 큰애가 성공하지 못할 줄을 알았다.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돈을 아까워해서 잘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슬퍼할 것 없다. 나는 진즉 둘째의 시신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느니라.”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