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패왕 구천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狡兎死 走狗烹 교토사 주구팽 (토사구팽)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잡아먹힌다. <越王句踐世家>
월나라가 천하를 제패한 뒤 전장의 공신 범려가 월왕과 하직하고 나서 동료에게

오나라가 누리던 패자의 영예는 이제 월왕에게로 돌아갔다. 오나라를 합병한 월왕 구천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여 회하를 건넜고, 제나라 진나라 제후와 회맹을 주도한 뒤 주 왕실에 공물을 바쳤다. 주 천자 원왕(元王)은 구천에게 제사 고기를 내려 제후의 수령으로 삼았다.

떠나야 할 때를 알다

구천은 다시 회하를 건너 남하하면서 회하 유역의 땅을 초나라에게 주고, 오나라가 빼앗았던 송나라 영토를 송에게 돌려주었다. 노나라에게는 사수 동쪽의 땅을 주니 제후들이 모두 환영하며 월왕을 패왕으로 칭했다.

재상 범려는 상장군으로서 월왕을 시위했다. 그러나 중원을 돌고 고국으로 돌아온 뒤 문득 자신의 지위가 너무나 커진 것을 깨달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지 모르나, 지금이야말로 그 자리를 떠나야 할 때였다.

극복해야 할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동지들 사이에 의리도 굳건한 법. 이때에는 자질구레한 격식 따위에 얽매일 겨를도 없다. 다소 격식을 벗어난다 해도 얼마든지 너그럽게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목표가 달성되고 태평성대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사소한 예법과 사치에 목숨을 걸게 된다. 유흥이나 매끄러운 말이나 승진경쟁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백전노장에게는 오히려 전쟁보다 견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말만 번지르르한 간신들도 모여들 터이므로, 조만간 시기질투와 모함도 시작될 것이다.

영리했던 범려는 이제야말로 화를 당하기 전에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직서를 써서 왕에게 제출하자 구천왕이 펄쩍 뛰며 말했다.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고 마침내 반석위에 올려놓기 까지 우리는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을 함께 한 사이요. 이제 패왕의 권세를 함께 나누어야 하지 않겠소? 나는 월나라를 둘로 쪼개어 그대와 나눌 생각이었소. 만약 거절한다면 그대를 벌하겠소.”

그러나 범려의 결심은 확고했다.
“군주는 자신의 명령을 집행하고, 신하는 자기 희망을 실행할 뿐입니다.”

범려는 그날 밤, 가벼운 보물만 몇 가지 챙기고는 식솔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나버렸다.
구천왕이 섭섭해 하며 회계산에 기념비를 세우고 이 산을 범려의 봉읍지로 삼았다.

명성을 오래 누리는 것은 불길하다

월나라를 떠난 범려의 배가 도달한 곳은 제나라의 어느 바닷가였다. 한적한 곳에 정착하여 성과 이름을 ‘치이자피’라 바꾸고 농사를 지었다. 고생을 감수하며 아들들과 함께 노력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재산이 수십만금에 달하게 되었다. 제나라 사람들이 그가 현명함을 알고 상국(相國)으로 추대했다. 그것은 범려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집에는 천금을 쌓아놓고 벼슬은 상국에 이르렀으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정점까지 간 것이다. 존귀한 이름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은 불길한 일이다.”

그는 곧 자리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와 재산을 이웃들에게 모두 나누어준 뒤, 귀중한 물건 몇 가지만 챙겨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제와 송나라 국경사이 도(陶)라는 지역에 이르러 그는 스스로 도주공(陶朱公)이라 칭하고 아들들과 함께 다시 농사짓고 가축을 치며 살았다. 한편으로는 물건을 사서 비축했다가 팔아 1할의 이윤을 남겼는데, 다시 한 번 재산을 모으고 그러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범려는 세 번이나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그 때마다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마침내 도 땅에서 늙어 죽으니 세상에서는 그를 ‘도주공’이라 부른다.

“그대는 왜 떠나지 않는가”
한편 범려가 월나라를 떠난 뒤 혼란기의 공신으로는 대부 문종이 유일하게 남았다.

범려가 제나라에 들어갔을 때, 문종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새가 다 잡히면 활은 쓸 데가 없고, 교활한 토끼가 다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이오.(蜚鳥盡良弓藏 狡兔死走狗烹) 월왕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하니,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을 같이 할 수는 없소. 그대는 왜 월나라를 떠나지 않는가.”

문종은 편지를 읽은 뒤에 병을 핑계 삼아 궁에 입조하기를 멈췄다.

중흥을 맞은 군주에게는 이익을 다투는 간신배들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문종이 정사를 그만두자 이때다 하고 문종을 모함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왕께서 부르셔도 입조하지 않는 것은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문종이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습니다.”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앞을 다투어 헐뜯는 말을 듣고 월왕이 문종에게 칼을 내리며 전갈했다.
“그대는 오나라를 칠 수 있는 계책 일곱 가지를 내게 알려주었소. 나는 그 중 세 가지만 사용하여 오나라를 물리쳤으니 나머지 네 가지는 아직 그대에게 있소. 그대는 선왕(先王)을 뒤좇아가서 나를 위하여 그것을 시험해보기 바라오.”
오래 전 죽은 선왕을 뒤좇아 가라니 힘없는 신하가 따를 수밖에.
 
문종은 자결했다. 떠나야 할 때를 놓친 자의 쓸쓸한 종말이었다.

“새 사냥이 끝나면 활은 활집에 넣고,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먹는다오. 월왕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을 같이 할 수는 없는 사람이오. 그대는 왜 떠나지 않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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