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학창시절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수필로 기억되는 글 가운데 한국인의 품성을 일러 '은근과 끈기'있는 민족이라는 표현이 있다. 또 순수한 인품에 걸맞게 '백의민족'이라는 표현도 떠오른다.

은근하고 끈기 있는 사람들이 흰 옷을 즐겨 입을 만큼 한민족은 순수하고 소박한 민족이라는 예찬이었다. 어린 마음에 이런 우리나라 사람들의 품성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비록 가난하기 이를 데 없이 찌든 살림살이지만 그래도 마음하나만은 청량한 자세로 꿋꿋하게 버텨온 것도 이런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을 일컬어 이런 글을 쓴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일본 사람들은 우리를 지칭해 '냄비근성'이라고 했다. 빨리 끓어 넘치고 쉽게 식는다는 의미이다. 은근과 끈기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인은 노예근성이 있어 매로 다스리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뻑 하면 매질을 해댔다. 60대 이상 노년층은 이런 일제잔재의 교육을 체험했으리라.

외진 대포 집. 나이 지긋한 서너 명의 어르신들이 술잔을 나누는 옆자리에 앉은 탓에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이야기를 해야겠다.

"당최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암담하구만…" 
"누가 아니래 캄캄해…. 이대로 가다가는 통일도 전에 또 변란이 오는  게 아닌가 싶어…"
"나라가 어쩌면 늘 조변석개야, 전혀 중심이 없는 나라가 돼버렸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어"
"어걸 어떻게 바로 잡아야 되는 지 누구 하나 나서서 말하는 사람도 없으니 참 한심하기 짝이 없어. 어쩌자는 것인지… "

어르신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이 나라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었다. 나라걱정을 하기위해 만나 나누는 술자리인성 싶었다. 어쩌다 이 나라가 저런 노인들께 걱정을 안겨주는 지경이 되었는지 안타깝다는 심정이었다.

서양인들은 코리아를 두고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트린 나라'라고 비웃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빠졌을 때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경제발전으로 떼 부자가 되었다면서 흥청망청 하더니 갑자기 몰락했다는 소식에 그들은 우리를 향해 그렇게 비아냥댔다. 그런 지적과 무시를 당했던 나라와 사람들이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오늘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병(메르스)이 도는가 싶다는 풍문이 나기 무섭게 나라가 온통 뒤집어 졌다. 당장 넘쳐나던 외국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시작되었다. 나라 안에서는 온통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을 향한 온갖 욕설이 경쟁적으로 번졌다. 흡사 대통령이 역병을 전파한 냥 몰아댔다. 아주 자연스럽게.

세월호 침몰 때 늑장대응으로 홍역을 치룬 정부였던지라 또 허둥대는 동안 대한민국은 역병왕국으로 세계적으로 희화화 되었다. 누군들 대한민국을 구경하고 싶었겠는가.

역병은 그렇게 심각한 돌림병도 아니었다. 해마다 모기가 옮기는 뇌염정도에 지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걸 두고 나라 탓을 해대면서 정치적 술수를 동원하는 선량들의 작태가 눈에 선하다.

그 바람에 연 이태동안 피폐해진 민생의 골이 깊디깊다. 그래서 내놓은 정부의 대책이 올 여름휴가는 국내 농어촌으로 가자는 것이다. 언제 우리나라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휴가를 보냈다는 것인지…. 하긴 돈 있는 부류들은 외국에 나가 흥청망청 했겠지만, 서민들은 올 여름은 아예 휴가를 포기하고 있는 중이다. 가을이라도 서둘러 오길 빌어마지않은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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