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합니다."

TV에 출연한 전문가라는 사람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엔간해서는 비속어나 막말을 삼가는 사람들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나라 망한다는 말은 비속어나 막말은 아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중차대하게 들리는 게 보통이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국회의 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지난 5월 12일 열린 국회에서 60여건의 법안 가운데 달랑 3건만 통과한 것을 일컫는 해설을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것도 법사위원장의 사인만 남겨둔 57개의 법안이 또 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묶이게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여야가 어렵사리 합의한 법안이 막강한 국회권력을 행사하는 단 한명의 헌법기관에 의해 가로막힌 것이다.

묶인 법안 가운데에는 민생과 밀접한 경제관련 법이 적지 않다. 정부도 이런 법안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당연히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이나 개인들도 국회의 처사에 불만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국회, 국회의원 모르고 있을 리 만무한데도 말이다.

화면의 주인공은 이어서 특히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회선진화법을 입안하고 통과에 앞장선 당시 국회의원들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면서 하루속히 이 법을 폐기하거나 대폭 수정하는 일이 선행돼야한다고 했다.

그는 "정권을 잡은들 무슨 소용이냐"고도했다. 법안 하나라도 야당의 승인을 받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형편에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나가겠느냐는 것이다. 겨우 3건의 법안만 통과시키고 전자사인만 하면 되는 나머지 법안을 붙들고 있는 까닭은 무엇이며, 언제까지 이런 국회의 행태를 두고 봐야 하는지 국민의 가슴에 불길이 치솟는다는 것이 그의 분노였다.

대통령도 막강한 국회권력 앞에서는 힘을 못 쓰는 것이 현실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고 비아냥의 대상이 되는 대통령의 힘도 별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도 결국 국무회의 석상에서 한숨을 토해내고 말았다. 여야가 합의했다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관련 법안이 무산된 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현실을 보고 대통령은 무기력에 빠진 모습을 보여줬다. 나라형편에 대한 심각한 현실을 절실하게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죽했으면 한숨을 내쉬었겠는가.

대통령이 한숨을 토해내는 순간에도 막강한 3백여 명에 이르는 헌법기관들은 권력누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법안통과를 둘러싸고 여야가 편을 갈라 국회를 싸움판으로 만들었다.

방청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성과 야유가 난무한 가운데 느닷없이 눈물바람을 일으키는 모습도 연출했다. 난장판이 이보다 못하지 않을 터다. 대한민국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나라경제에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다. 잘된다던 수출도 전만 못하다. 경제성장률을 몇 차례씩 낮출 정도로 미래가 어둡다. 청년실업도 나날이 깊어 가고만 있다. 그래서 구조개혁을 해서라도 새 길을 모색해야한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새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나라의 틀을 짜는 일에 골몰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권력싸움에만 한눈을 팔고 있다. 무엇을 어쩌겠다는 대안은 고사하고 이렇게 해보겠다는 정부의 의견을 거들떠보는 것조차 마다하고 있다.

대통령의 한숨을 보고 듣는 국민들의 심정은 깊은 실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나라의 미래에 더 이상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이 커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가로막지는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뭐 큰 것을 양보하라는 것도 아니다. 민생의 절박함에 대한 기본적인 걱정만이라도 해보라는 것이다. 표를 준 유권자에 대한 아주 작은 예의나마 표하라는 말이다. 더 이상 국들은 대통령의 한숨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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