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신문 강준호 기자] 은행권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은행들이 차별화된 전략으로 사업다각화에 나서는 대신, 손쉬운 담보대출 위주의 '이자 장사'만 벌인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금리로 이자 마진이 줄어들게 되면서 기존의 영업전략만으로는 성장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됐지만, 지금껏 기본 역량을 기르는데 소홀하다 보니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새로운 성장 먹거리를 찾아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 금융이 고객에게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은행, 보험사에 순익 역전…'뉴노멀' 도래
    지난 3일 예금보험공사 대강당에서는 전 금융권 최고경영자와 금융공기업 대표, 금융당국 수장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한국 금융이 고쳐야 할 낡은 틀로 ▲담보 위주의 여신 관행 ▲이자수익에 대한 과도한 의존 ▲국내시장 내에서의 우물 안 영업 ▲새로운 금융수요 및 사이버 환경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금융규제 등을 지목했다.

    하 회장은 현실에 맞지 않는 잘못된 규제를 비판하면서 "금융회사들이 과거의 규제 틀에 안주하면 금융이 천천히 고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은행권에서는 냉혹해진 금융 환경을 이미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 전 은행권의 순이익이 보험업계 순이익에 역전당하는 이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보험사의 순이익은 은행권 순이익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뒤떨어진 수준이었다.

    은행권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금융환경은 은행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으로 은행에 대한 자본규제와 업무규제가 강화되고 저성장·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수익률 하락이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올해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하된다면 순이자마진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며 "가계대출 증가율도 둔화할 가능성이 높아 올해 수익은 지난해보다도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담보 위주 대출관행 여전…"은행에 전문가가 없다"
    뉴노멀 시대에 접어든 은행들이 생존을 꾀하려면 낡은 관행을 철저히 깨뜨리는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타파해야 할 낡은 관행으로는 담보 위주의 대출 행태가 꼽힌다.

    담보 대출 관행은 경제 전체적으로는 자금이 효율적으로 순환하지 못하게 하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성 하락을 가져오는 주요 요인이 됐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에 낸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내수 개선의 지연과 높아진 신용 경계감으로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금리 수준이 낮은 우량·담보대출 취급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대출금리 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은행들이 차별화된 영업전략을 펴지 않고 안전하고 손쉬운 담보대출에만 경쟁적으로 집중하다 보니 이자 마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기업 대출에서의 이런 대출 관행은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담보 가치만 따지다 보니 기업의 현금창출 능력이나 산업별 특성을 분석할 능력과 전문인력을 자체적으로 기르는 데 실패한 것이다. STX, 동양, 쌍용건설, 동부그룹 등 잇따른 기업 대출 부실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지동현 전 KB금융지주 부사장(현 삼화모터스 대표이사)은 "2001년 하이닉스가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에 제대로 된 분석 보고서를 낸 국내 은행은 전무했다"며 "국내 기업인데도 모두 외국계 투자은행의 보고서에 기반해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십수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여전히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은행에 개별 업종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전문 심사역이 거의 없다 보니 기업대출에서 계속 부실이 발생하고, 이 부실을 가계대출 수익에서 메우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자수익 비중 90% 넘어…"다양한 수익원 개발해야"
    이자수익에 대한 과도한 의존 역시 은행권이 가진 한계로 지목된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국내은행 영업실적 잠정치를 보면 2014년 전 은행권 이자이익은 34조9천억원으로 총이익(38조5천억원)의 90.6%를 차지했다. 수수료 수입 등 비이자이익은 3조6천억원(9.4%)에 불과했다.

    과도한 이자수익 의존은 선진국 은행과 비교해 볼 때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수익성이 꾸준히 좋아진 미국의 뱅코프(US Bancorp)를 사례로 들며 "2013년 비이자이익 비중이 45.3%로 이자이익에 뒤떨어지지 않는 뱅코프처럼, 국내 은행도 다양한 전략을 통해 비이자이익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에서는 과도한 이자수익 의존에 대해 은행 서비스는 '공짜'로 여기는 사회 인식과 당국의 수수료 규제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먼저 수수료 인상 얘기를 꺼냈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 때문에 다들 분위기만 보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저금리가 지속하는 한 수수료 현실화는 불가피하다"고 털어놨다.

    고객들이 은행 수수료에 고객이 불만을 느끼고 은행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동현 전 부사장은 "은행이 고객에게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고객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며 "국내 은행들이 외국 우량 은행들과 비교해 체감할 수 있는 가치를 제대로 못 만들고 있다는 것이 수수료에 반감을 갖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지적했다.'

    ◇해외수익 '신한 8.3% vs 日 미쓰비시 53%'…"글로벌진출 꾀해야"
    글로벌 시장 진출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풀어야 할 숙제다.

    국내 은행들의 경우 순이익에서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신한은행조차 지난해 수익 비중이 8.3%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은행들은 비중이 더 미진한 상황이다.

    반면, 일본 은행권의 총대출에서 해외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기준으로 40%에 달한다. 특히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는 2013년 전체 수익 중 해외 수익의 비중이 무려 53.5%에 이른다.

    국내 은행들은 해외진출조차 서로 엇비슷한 전략을 세워 추진하다 보니 성과가 지지부진하고, 현지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섣부른 인수합병을 추진했다가 실패를 겪기 일쑤다.

    지난해에는 미얀마가 외국계 은행 지점의 설립을 인가하면서 한국의 은행을 모두 떨어뜨려 국내 은행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정희수 개인금융팀장은 "금융에서는 왜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못 나오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은행 덩치만 키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이미 1960∼1970년대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에 정부가 먼저 나가 인프라를 구축해 좋은 이미지를 심고 이어 기업이 현지에 진출하고 마지막으로 은행이 들어가는 체계적인 전략을 구사했다"며 "우리 은행들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글로벌 진출 전략을 세워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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