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幷會賦斂 倉庫少內 병회부렴 창고소내
세금은 가혹하고 창고는 비어있다 (<說苑> 政理편) 
안평중이 제 경공에게, 잘못된 정치를 좋은 정치로 오해하고 있다며    

안영(안평중)은 평생 제후들의 신임과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당대의 선비들인 연릉계자와 공자의 방문을 받고 담론하였으며, 진나라 숙향을 비롯한 명인들과도 교분을 가졌고, 후대에는 안자(晏子)로 불린다. 학자로서, 재상으로서, 정치가로서, 그에 관련한 일화와 고사는 전해오는 게 많다. 그의 저술과 행적은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집성돼 있다.

제 경공(景公)은 즉위한 직후 안영에게 동아(東阿)라는 고을을 다스리게 했다. 
안영은 이미 명성이 높은 현인인지라 경공이 기대를 가졌을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안영이 부임한 후 들려오는 소식은 그에 대한 비방뿐으로 기대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실망한 경공이 그를 소환하여 파직하려 하자 안영이 말했다. “저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청컨대 저에게 다시 3년을 주신다면 틀림없이 좋은 소문이 퍼지도록 하겠습니다.”

경공이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임기를 연장해주자 얼마 뒤부터 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경공이 기뻐하며 3년 뒤 상을 내리려고 하자 안영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경공이 의아해서 까닭을 묻자 안영이 대답했다.

“처음에 신은 간악하고 사악한 무리들이 지름길(편법)을 이용하지 못하게 막고 그들의 통로를 지키는 문지기들의 임무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러자 음란한 백성들이 나를 미워하여 모함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소하고 효도와 우애를 다하도록 권면하자 게으른 백성들이 저를 미워하여 비난하였으며, 법을 집행할 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정하게 법을 적용하자 귀족이거나 힘을 가진 자들이 저를 미워했던 것입니다. 부조리한 관리들을 가까이 하지 않으니 측근들조차 저를 싫어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저에 대한 비방과 참소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은 단속을 게을리 하고 죄지은 자를 처벌하지 않으며 아부하는 자들을 가까이 했더니 게으른 백성들이 즐거워하고 귀족이거나 힘을 가진 자들이 즐거워하여 저에 대한 칭송이 자자해졌습니다.”

같은 얘기를 <설원(說苑)>에서는 이렇게 옮겼다. 
“지난 번 제가 동아를 다스릴 때에는 청탁도 없고, 뇌물도 없었으며, 못의 물고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으며 백성 중에 굶주리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군께서는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지금은 청탁이 횡행하고, 뇌물이 돌아다니며, 세금은 가혹하면서도 창고는 비어있습니다(屬託行 貨賂至 幷會賦斂 倉庫少內). 못의 물고기는 모두 권문대가가 독점하여(陂池之魚 入於權家) 굶주린 자가 반이 넘습니다. 그런데 군께서는 도리어 저를 칭찬하시니 생각컨대 더 이상 동아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경공이 비로소 깨닫고 안영에게 국정을 맡기자 제나라는 크게 흥성하였다. 
세월이 지난 후 경공과 안영이 물가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옷이란 새 것이 좋고 사람은 예 사람이 좋다고 합니다(衣莫若新 人莫若故).”
그러자 경공은 “옷은 새것이면 정말 좋지요. 그러나 사람은 오래 지나면 사정을 너무 잘 알게 됩니다”라고 대꾸하였다. 말의 의도를 알아채고 안영은 다음날 사직했다. “저는 오래 되어서 늙어 무능합니다. 청컨대 젊은이들의 일을 수행할 수 없사옵니다.” 
안영은 평민이 되고 경공은 혼자서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자 실수가 늘어났고 백성들은 동요했다. 경공은 두려운 나머지 다시 안자를 불러들였다. 


이야기 PLUS

사마천은 안영의 행적 가운데 두 가지 일화를 골라 <사기> ‘관안열전’에 실었다. 
안영이 재상이 되었을 때 하루는 마차를 타고 길을 가던 중에 죄수 한 사람이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월석보라는 사람으로, 본래 현자였다. 안영은 마차에서 말 한 마리를 풀어 속죄금으로 대신 내주고 월석보를 석방시켜 마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안영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월석보는 안영에게 절교하기를 청하였다. 안영이 놀라서 의관을 단정히 하고 나와 물었다.

“저는 사람이 어질지는 못하지만 당신을 곤경에서 구해드렸는데 어찌 이리 빨리 절교하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석보는 말했다. “듣건대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자기 뜻을 나타낸다고 하였소. 방금 내가 죄수의 몸이었을 때 그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 자들이었지만 그대는 이미 느낀 바가 있어 나를 구해주었으니 이는 나를 알아준 것이오. 그런데 나를 알아주면서도 예의를 갖추어 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죄수의 몸으로 있는 것이 나을 것이오.” 안자는 즉시 월석보를 상객으로 대우하였다.

안자의 마부는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재상의 마부답게 큰 차양 아래 앉아 네 마리의 말에게 채찍질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어느 날 마부가 집에 들어가자 그의 아내가 갑자기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이 놀라 물으니 아내가 대답했다. “안자는 키가 여섯 자도 안 되는 사람인데 나라의 재상이 되어 제후들 사이에 명성을 날리고 있소. 오늘 제가 외출하는 모습을 보니 품은 뜻이 심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키가 여덟 자나 되건만 남의 마부노릇이나 하면서도 우쭐대고 있으니 그만 이혼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듣고 남편은 반성하여 이후 겸손하게 행동했다. 마부의 태도가 바뀐 것을 눈치 챈 안자가 이유를 물으니 마부가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안자는 그를 천거하여 대부로 삼았다.       

지금은 청탁과 뇌물이 횡행하며, 세금은 가혹하면서도 창고는 비어있습니다. 못의 물고기는 모두 권문대가가 독점하여 굶주린 자가 반이 넘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저를 칭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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