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폭력이 우리사회의 화두로 대두된 적이 처음은 아니다. 군에 입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빠따(방망이)를 안 맞으면 잠이 안 온다.’는 말은 경험자에겐 불문가지일 정도로 정설로 되어있을 정도이다. 그런 당연지사가 요즘 우리사회를 휘젓고 있는 화두가 되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우리사회가 진일보하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진정 선진사회로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현상이라는 그럴듯한 진단을 내놓는다. 과연 그럴까? 폭력이 단순하게 타인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행위라면 군대식 폭력은 동물들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병아리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집단에서의 왕따현상에 대해 수긍을 할 것이다. 덩치가 작고 행동이 굼뜬 병아리를 많은 녀석들이 몰려들어 모이통 접근을 막거나 구석으로 몰아붙여 부리로 쪼아댄다. 결국 왕따를 당한 병아리는 폐사가 되고 만다.

그런 것이 동물행동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물적이기에 인간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런 상황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한 사람들 사이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최근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는 폭력의 진상이다.

더 심각한 폭력양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사회의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이 기회에 분석하고 치유를 위한 처방을 강구해야한다. 이른바 집단이기주의도 패거리가 저지르는 폭력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민주화를 운동으로 포장해서 집단이 들고 일어나 폭력을 휘두르는 방법도 폭력과 다름 아니다.

물론 독재에 항거, 민중을 대신해서 자유와 민주화를 이끌어 낸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 40여 년간을 관통하면서 우리사회가 겪었던 소위 데모지상주의가 오늘날 집단이기주의 현상과 법 무시행태를 잉태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데모로 많은 것을 이끌어 낸 것은 맞다. 군부독재를 잠재웠고, 민주화를 이끌어 냈다. 민중의 목소리가 엄청 커졌다. 집단의 요구사항이 거의 무한대로 늘어났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각계각층의 욕심이 집단이라는 포장으로 분출되고 있다.

폭력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이 온통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전쟁터가 되기 일쑤이다. 조그마한 꼬투리를 빌미로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기관, 기관 대 기관 심지어는 개인 대 정부의 몸부림이 허다한 지경이다.

심각하기는 근저에 깔린 불신이 투쟁으로 표출되는 양상이 나라의 앞길을 암울하게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하는 일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생사를 걸고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밥을 굶고, 고함을 치고, 자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진일보하는 대한민국을 느끼고 눈으로 확인한 것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지금 이 나라는 주저앉아 있다. 그래서 답답하고 위기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세월호는 결국 민주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마저 침몰시켰다.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 법을 만들겠고 여야가 두 번씩이나 협상을 해서 입법안을 마련했지만, 세월호 가족들은 한마디로 거부하고 나섰다.

국회 그것도 여당의 제안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야당의 동조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식’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국회도 정부도 따라오면 된다는 식이다. 무정부상태에서 가해자를 조사하고 벌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를 지경이다.

더 심각하기는 야당의 행태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성사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않겠다면서 산적해있는 민생관련 법안에 대한 통과를 가로 막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는 정부에 대고 이해할 수 없는 불평과 불만만을 토해내고 있다. 폭력이 고도화 내지 습관화되면 이런 경지에 이르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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