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과 위헌논란을 빚었던 여신전문업법(여전법) 개정안이 당초 예상을 깨고 원안대로 국회 본회의를 전격 통과됨에 따라 카드업계가 강력반발하며 법 재개정 논의도 진행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달 27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여전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 영세 가맹점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 공포 후 9개월이 지난 후 시행가능한 개정안의 내용을 어기면 당국이 카드사에 영업정지, 등록취소 등 징계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직격탄을 피할 수 없게 된 카드업계는 금융당국과 협의해 차기 19대 국회에서 수정 입법발의를 추진하는 한편, 올해 연말쯤 헌법소원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나 당장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당혹감에 휩싸여 있다.

금융당국과 카드업계는 여전법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그간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등 여전법 개정에 많은 신경을 썼지만 그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카드업계도 관련 용역을 실시해 조만간 결과가 나오는대로 공청회를 열고 의견수렴 후 카드수수료를 조정할 방침이었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여전법이 실시될 경우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업계와 금융당국은 개정된 여전법에 대한 재개정을 추진할 전망이다. 금융당국과 업계가 반발하는 대목은 ‘신용카드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하의 영세 가맹점에 대해 금융위가 정하는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한 여전법 18조의3 제3항이다.

정부가 수수료율을 정하도록 한 것을 두고 시장 질서의 기본을 해칠 뿐 아니라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개정안 발의 때부터 제기됐으나 국회는 이를 무시했다. `적용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도 다른 입법례에서 찾아볼 수 없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여전법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동의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원안대로 통과돼 아쉽다”며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개정안은 내년 초에나 시행될 수 있다”며 “그때까지는 기존 법 체계가 유지되므로 시간적인 여유는 있다”고 설명했다.

카드업계는 “민간기업인 카드사가 자율 결정해야 할 일종의 가격인 수수료율을 정부가 정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며 “특히 정부가 민간기업의 가격을 규제할 경우 헌법 제15조에 담긴 ‘직업선택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카드업계는 카드 수수료율의 차별을 금지하는 개정안의 취지는 존중하되 금융당국이 우대 수수료율을 정해 업계에 적용을 강제하는 문구만 수정하는 내용으로 재개정이 추진할 전망이다.

아울러 업계는 차기 국회가 여전법 개정안 재개정에 소극적이면 헌법 소원도 불사할 방침이다.

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은 “금융당국이 수수료율을 정하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법률 조언을 받아놨기 때문에 헌법 소원 여부도 업계와 논의해 검토하겠다”면서 "당국이 수수료율을 정하면 카드산업 자체가 암담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신금융협회와 KB국민카드는 법무법인에 법률 검토를 의뢰해 “수수료율을 특정해 자율적인 가격 결정을 금지하는 것은 행복추구권, 재산권, 직업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답변을 얻었다.
이두형 여신금융협회장도 법안 개정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조차 이 법안이 시장 자율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했는데 여야가 논의조차 않고 통과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차기 국회에서 의원들을 설득해 법 개정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3월 말에 수수료 체계 개편에 대한 용역 결과가 나오고 4월에 가맹점 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청회를 통해 수수료율 체계를 자율적으로 개편하면 국회도 이번에 통과한 법안을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개정안이 선례가 돼 타 산업으로 확산될 경우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당국이 시장가격을 일률적으로 정하도록 한 것은 지나치게 경직적인데다 향후 다른 시장가격을 정하는데 있어서도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민생활과 밀접한 은행 금리나 기름값, 백화점 입주업체의 판매수수료율 등도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반(反)시장적 가치관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우대수수료율을 적용 받지 못하는 타 업종 종사자들의 불만이 고조될 가능성도 커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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