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패션업종에 종사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대뜸 건네 오는 대답이 재미있으면서도 심오했다. 뭔들 잘되겠느냐면서 ‘꿀벅지가 돈이 안 된다’는 대답이었다.

그쪽(패션업종)사정에 워낙 벽창호인 까닭에 뭔 말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찬찬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사정을 알 듯도 했다. 게다가 필자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홍대입구’인근이어서 도움이 되기도 했다.

요즘 젊은 여성이든 중년여성이든 옷 입는 걸 보라는 게 그의 첫 대답이었다. 하나 같이 벗고 다닌다는 거였다. 예전에 유행했던 미니스커트는 그래도 허벅지는 가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의 유행은 팬티수준을 능가하는 초미니 바지가 거리를 누빈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에 100% 동감했다. 아니,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조석으로 홍대입구역을 이용하면서 겪는 고초(?)가운데 하나가 젊거나 3, 40대 여성들의 ‘노출 쇼’에 식상을 하고 있는 터여서이다.

이미 일상화된 탓인지 이제는 무심지경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걸 막기 어렵다. 이건 팬티도 저렇게 짧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속에서 은근히 불화가 치미는 적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말끔하게 손질한 바지도 아니다. 대게 잘 들지 않는 가위 따위로 성기게  자른 청바지나 면바지 따위를 옷이라고 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끔찍하게 굵은 허벅지를 그대로 방치하는 게 요즘 유행하는 패션인 셈이다.

그것도 패션이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렇다는 거다. 그게 패션이란다. 원래 패션아란 것이 그런 거란다. 그러면서 그가 풀어내는 초미니 팬티의상의 연유가 흥미로웠다. 이런 의상이 탄생한 까닭이 스포츠 스타의 스타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스케이팅 강국으로 부상되었다. 그것도 여자선수들이 세계강호로 부상되었다. 물론 숏 트랙에서의 남자선수들도 못지않은 실력을 보이고 있긴 하다. 그 가운데 스피드스케이트 종목의 이상화선수의 실력은 두드러졌다. 금메달을 석권했다.

문제는 그녀의 다리 힘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얼마나 다리  힘이 좋았으면 세계를 제패했게냐는 거였다. 정말 그녀의 다리 힘은 절륜했다. 그리고 그 굵기를 일컬어 ‘꿀벅지’라고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여자의 다리 굵기는 미적기준의 하나였단다. 우선 여자가 다리(하체)를 드러내놓는 것 자체가 금기의 대상이었다. 치마는 그래서 여성의 하제를 효율적으로 가려주는 패션방식의 하나이기도 했다는 해석이다.

그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예화이긴 해도 패션의 역사 중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다리에 대한 미적해석은 굵기와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요체는 적당한 굵기와 길이로 집약된다. 따라서 짧고 지나치게 굵은 하체는 자연스레 치마로 가리는 게 미덕처럼 여겨졌다는 거였다.

그런데 요즘에 이르러 이상화 선수의 꿀벅지가 하나의 미덕으로 자리매김 되면서부터 온갖 허벅지들이 꿀벅지화(化)되는 사태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맞는 주장인지 아닌지는 문외한으로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이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바지가 돈으로 환산되기는 어렵다는 소리에 수긍이 갔다.

새 경제수장의 등장으로 우리경제의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고 뻥 뚫린다는 소리는 아니다. 워낙 바닥을 들어냈던 터여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나아질 것 같다는 해석만 해도 어딘가.

돈이 가계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게 새 경제수장의 일성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가 이처럼 새롭게 들리는 것 자체가 이상할 지경이다. 이전까지의 경제논리가 지극히 성장이니 복지이니 하면서 민생경제와는 괴리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는 증거가 부각된 셈이다.

바라기는 돈이 안 되는 꿀벅지 패션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비록 작아도 가계를 살찌우는 실용경제정책을 펼쳐 나가기를 기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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