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飛將沖天 鳴將驚人 비장충천 명장경인
한번 날아오르면 하늘에 가득차고 울면 세상을 놀라게 한다. <楚世家>
3년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은 초 장왕이 대부 오거로부터 수수께끼를 듣고 답하며

초나라에서는 아버지 성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목왕이 12년 동안 여러 나라들을 토벌하고 죽었다. 아들 웅려가 뒤를 이었다. 장왕(莊王)이다.

장왕은 왕위에 오르자 밤낮으로 향락에 빠져들었다. 정치 얘기라면 듣고 싶지 않았던지 궁중 사람들에게는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 “감히 간하는 자가 있다면 용서치 않고 죽이리라.”

자연히 정치는 중단되었다. 아무리 대신들이 국사를 알아서 처리한다 해도, 최고 권력자가 주색에 빠져 있으니 정사(政事)에는 한계가 있었다. 점차 산업은 피폐해지고, 안 그래도 변방인 초나라인지라 주변 이민족들의 침입도 잦았다. 3년이 흘렀다. 공교롭게 가뭄까지 찾아들었다. 먹을 것이 궁해진 이민족들은 이제 마음 놓고 초나라 변경을 드나들며 얼마 남지 않은 식량마저 약탈해갔다. 누군가는 게으름에 빠진 왕을 일깨워야만 했다.

말 잘하는 오거라는 대부가 입궐하여 왕이 놀고 있는 정원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여러 나라로부터 미녀들을 선물로 받았던가 보다. 왕은 왼쪽 무릎에 정나라 여자를 앉히고 오른팔로는 월나라 미녀를 껴안고 앉아 술을 받아 마시다가 오거를 맞았다.

“웬일이오? 설마 국사를 의논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요. 대왕의 분부가 지엄하신데 감히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있겠습니까. 신이 졸렬하나마, 왕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수수께끼나 하나 들려드릴까 합니다.”

“하하. 좋소, 좋은 생각이오. 우선 한 잔 받으시고, 재미있는 얘기나 꺼내 보시구려.”

여자들이 왕을 대신하여 건네주는 술잔을 오거가 공손히 받아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기이한 새가 언덕 위에 앉아있다고 합니다. 큰 날개와 매서운 눈, 아름다운 깃털을 갖고 있지요. 사람들은 그 새가 나는 모습 한 번 보기를 소원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3년 동안 한 번도 날지 않고 지저귄 적도 없답니다(有鳥在於阜 三年不蜚不鳴 是何鳥也). 왕께서는 이 새를 아시는지요.”

장왕은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나 한 번 날개를 펴면 하늘로 치솟아오를 것이고, 3년 동안 지저귀지 않았으나 한 번 소리를 내면 세상 사람들을 다 놀라게 할 것이다(三年不蜚 蜚將沖天 三年不鳴 鳴將驚人).” 그리고는 말했다.

“오거, 그대는 돌아가도 좋다. 과인이 그대의 뜻을 알겠노라.”

오거가 돌아간 뒤에도 장왕의 생활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황음에 빠져드는 듯했다.

이번에는 소종이라는 대부가 찾아갔다. 장왕이 눈을 매섭게 하고 호통쳤다.

“그대는 금지령을 듣지 못했는가?”

소종은 고개를 조아린 채 조금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대답했다.

“죽음으로써 주군을 깨닫게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장왕이 비로소 황음을 거두고 집무실로 나아가 정사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찾아왔던 오거와 소종에게 국사를 맡기고, 지난 3년 동안 정무에 종사하는 자들이 한 일과 하지 않은 일들을 일일이 평가하여, 게으르거나 백성에게 해를 끼친 자들과 묵묵히 임무를 수행한 자들을 골라냈다. 그 결과에 따라 처벌, 처형을 당한 자가 수백명이고, 새로이 등용된 자가 수백명이었다. 초나라가 드디어 3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위가(蔿賈)와 사숙(師叔)을 자월, 자패 등 무장과 함께 파견하여 변방의 이민족들을 몰아냈다. 초나라의 변방을 괴롭히던 용(庸)나라를 이 때 멸망시켰다. 국가에 속한 창고들을 열어 위아래 구분 없이 같은 음식을 먹게 하니 민심이 모두 왕에게로 돌아왔다.

춘추오패 가운데 마지막 한 사람, 초장왕의 시대는 이렇게 막을 열었다.   


이야기 PLUS

<장자(莊子)> ‘소요유’편은 붕(鵬)이라는 새의 전설로 시작된다.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있는데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를 정도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붕이 되었다. 등의 넓이만도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구름같이 하늘을 가린다. … 붕이 날아가면 파도는 삼천리나 솟구치고, 붕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위로 구만리나 올라가 여섯 달을 날고서야 비로소 쉰다.”

여기서 나오는 말이 붕정만리(鵬程萬里)다.

물속에 있다가 때가 되면 날아오른다는 설명은 용(龍)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마도 숨어서 때를 기다리는 고대의 은자(隱者)들은 이런 꿈을 꾸었을 지도 모른다. 또 현실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이런 영웅의 등장을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3년을 울지 않는 새’ 이야기는 제나라 위왕(250년쯤 후대의 군주)과 관련하여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어느 기록이 본래의 이야기고 어느 기록이 복제되어 전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초 장왕이나 제 위왕이 모두 극적인 전설에 어울리는 걸출한 군주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려서부터 권력자인 태자 주변에는 좋은 말 하는 사람들뿐일 것이다. 그래서 인의 장막에 갇혀 인재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장왕은 3년 동안 정사에 관심 없는 척 음주가무에 빠져 지내면서 장차 시대를 같이 경영할 수 있는 사람과 절대로 같이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을 추렸을 것이라는 (결과론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만) 해석도 있다.

“설마 정치 얘길 하러 찾아온 건 아니겠지?”
“감히 그럴 리가요. 수수께끼나 하나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새가 언덕 위에 앉아있는데 3년 동안 한 번도 날지 않고 지저귄 적도 없답니다. 왕께서는 이 새를 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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