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조민성 화백>
<삽화=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5장 거울로 가득한 방(1)

 

방에 들어오자마자 불도 켜지 않고 우두커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모든 게 사라져 버린 어둠 속에서 빗소리만 존재를 드러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외부의 ‘소리’라는 것에 집중했다. 어떤 것에든 소리라는 것이 존재했고, 그 소리는 각자의 고유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의 기타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떻게 그토록 멀쩡할 수가 있을까. 17년 전 잃어버린 기타를 이런 엉뚱한 장소, 엉뚱한 시간에서 마주칠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과정들이 우연이 아닌 뭔가에 이끌리듯 벌어진 결과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 기타가 그때의 루시퍼가 맞다는 쪽으로 마음은 기울었다. 느낌이 그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는 게 맞겠다.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하게 얽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나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닐까.

기타 소리를 들은 뒤부터 내가 모르는 감정의 영역을 체험하고 있는 듯했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어둠에 묻힌 형태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창밖에서 비 내리는 소리가 차갑게 들려왔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니 온 우주가 빗소리에 묻힌 것처럼 아득했다. 소리만으로도 머릿속과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을 수 있다니. 음악도 마찬가지다. 무형의 소리만으로 온몸이 젖고 정신이 젖는다. 처음 만났던 기타 루시퍼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용주가 무대 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타를 연주할 때마다 환각에 젖은 듯 나른하게 풀어지던 용주의 눈동자. 약간 구부정하게 휜 어깨는 오히려 우울한 느낌이 들게 해서 용주를 둘러싼 아우라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용주는 그날 지미 핸드릭스의 ‘거울로 가득한 방’을 연주했다. 밴드의 효과나 보컬의 도움 없이 단독 연주만으로도 무대는 꽉 찼고, 아이들은 용주의 연주에 열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용주는 당시 어린 나이에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악 위주의 연주를 즐겼다. 그런 탓에 아이들에게 더욱 우상화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 역시 용주를 통해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으니까. 그날 용주의 연주는 다른 때보다 유난히 현란하고 환상적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까지 선명한 기억으로 담길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곡은 제목만큼이나 현란하고 복잡했지만 용주의 연주는 아름답다고 표현할 만큼 멋졌다. 침대에 누워 용주가 연주한 음악을 떠올렸다. 빗소리가 연주를 뒷받침해 주듯 쉬지 않고 리듬을 반주했다.

나는 거울로 된 방에 갇혔다. 내 모습이 수없이 나뉜 거울에 갇혀 수백 개로 쪼개어졌다. 어느 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천장과 바닥과 벽이 온통 거울이었고 나는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었다. 너무 많은 내가 어지럽게 움직였고 바닥이 어딘지 천장이 어딘지 서로 뒤섞여 구분조차 어려웠다. 진짜의 내가 사라지고 수없이 쪼개진 내가 허공을 밟으며 떠다녔다. 몹시 혼란스러웠다. 마치 빈 껍질만 남은 수많은 ‘나’가 ‘나’를 응시하다 어느 순간 모든 ‘나’가 파편처럼 와장창 깨져 버린 것 같았다.

엄청난 공포가 몰려들었다. 온몸이 쪼개지는 아픔이 느껴졌고 나는 절규하듯 비명을 질렀다. 꿈에서 지른 비명은 실제 현실에서도 목이 터져라 이어졌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 잠이 든 건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잠들기 전 ‘거울로 가득한 방’ 노래와 용주의 연주를 계속해서 떠올리다 잠든 탓에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속에서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말할 수 없이 컸다.

창문을 가린 커튼 틈새로 빛이 희미하게 묻어 있지만, 주변은 한밤중처럼 여전히 고요하고 어두웠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겨우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500ml 생수 한 병을 모두 마셨다. 목으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끔찍하다. 여전히 내 몸은 수천 개로 쪼개진 상태처럼 아팠다. 하나인 나보다 수없이 많은 내 모습은 너무도 나를 두렵게 했다. 흥분이 가시지 않은 탓에 호흡이 진정되지 않았다. 왼쪽 어깨와 갈비뼈 부근의 통증이 심해져 몸 전체가 다 아픈 것 같았다. 내 입에선 크고 작은 신음이 계속 터졌다. 냉장고에는 다행히 첫 날 사다 놓은 술이 아직 한 병 남아 있었다. 쌓아둔 빈 병들은 모두 치운 건지 보이지 않았다. 소주를 꺼내 병째 들이켰다.

술을 마시면 잠깐은 몸과 마음의 통증은 멎는 것 같았지만 술기운이 떨어지면 몇 배의 고통과 환멸이 찾아왔다. 그 고통과 환멸을 잊기 위해 다시 또 술을 마시고 깨는 일을 반복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어떻게 망가지든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죽기 전까지 견뎌야 하는 고통들이 더 큰 고통을 낳는 게 문제였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르내리며 외줄 위를 간신히 걷고 있었다. 천천히 숨을 골랐다. 뛰던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알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더욱 흥분이 됐다. 기타를 만나 엉뚱한 상상에 빠져 현실을 왜곡하려 하다니 한심했다. 믿고 있던 많은 사실들이 모두 거짓으로 밝혀진다 해도 내 인생이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될 게 뻔한데, 그런 현실을 견딘다는 건 미친 짓이다.

 

드디어 때가 왔다.

 

넥타이를 들고 화장대 의자를 끌어다 올라갔다. 보조조명 장치인 둥그런 쇠 붙박이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넥타이 끝을 연결하여 쇠 붙박이에 묶었다. 머리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넥타이 고리를 세게 잡아당겨 보았다. 내 몸무게는 지탱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목을 넥타이 고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발밑에 놓인 의자를 차고 나면 그것으로 나는 사라진다. 문득 지독한 허탈감이 찾아왔다. 넥타이와 의자. 이따위 사물들에 내 생명을 맡겨야 하다니. 갑자기 내 인생이 넥타이와 의자로 정리가 된 것 같아 허무했다.

루시퍼를 떠올렸다. 그날의 루시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은 기타를 주인에게 돌려줬다고 손 대표에게 답했던가. 예리한 칼끝으로 내 의지를 찌르는 당신의 한 마디가 귓가에 쨍! 하고 울렸다.

“넌 사람을 죽였어!”

나는 또다시 어두운 늪으로 가라앉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동안 계속해 오던 질문을 떠올렸고, 자책과 의문이 충돌하면서 숨이 가빠왔다. 나도 모르게 넥타이 고리에서 머리를 빼낸 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헉헉댔다. 그러다 우연히 맞은편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 속 내 눈동자를 마주 보다 흠칫 놀랐다. 좀 전의 꿈속의 꿈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누구일까. 너는 누구일까. 거울 속 내가 너무도 이물스러웠다. 퀭하니 패인 눈동자. 수척해진 얼굴과 그새 자란 수염. 가슴부터 배까지 둥글게 휜 모습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위축돼 보였다. 나는 눈이 터져라 거울 속 나를 노려보았다.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했던 내가 떠올랐다. 특히 이 세상의 수많은 시선 중 당신의 시선은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건방지다고 때렸고, 시선을 피하면 사내새끼가 자신감이 없어서 어디다 써먹겠냐고 때렸다. 당신이 원하는 내 모습은 어떤 형태일까. 깎고 또 깎다 오히려 뼈만 남은 괴상한 조각상이 되길 원했던 걸까.

“에잇 썅! 괴물을 원한단 말이지!”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점점 흥분이 고조되어 파괴본능이 올라왔다. 당신은 정말로 괴물을 원했던 건 아닐까. 하긴 괴물이 괴물을 낳아 키우는 건 당연한 결과지. 그래서 난 당신이 원했던 진짜 괴물이 되기 위해 여기 이렇게 숨어든 거고 흐흐흐. 거울 속 남자가 나를 비웃었다.

타인의 눈동자보다 자신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게 훨씬 무섭고 두려웠다. 응시하면 할수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였고, 나는 저 눈동자를 외면하고 싶었다. 평생 누군가의 눈동자를 당당하게 마주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순간 나 자신의 눈동자마저 피한다면 죽더라도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점점 오기가 생겼다. 나는 몸을 일으켜 거울 가까이 다가가 거울 속 남자의 눈을 미친 듯 노려보았다. 거울 속 남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를 비웃었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간신히 버티며 눈을 노려보았다. 급기야 거울 속 남자가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흥분이 되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카메라 앵글을 360도로 회전하며 촬영하듯 주변이 빙글빙글 돌았다. 끝까지 거울 속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금방이라도 거울을 뚫고 괴물이 저벅저벅 걸어 나올 것 같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이를 악물었다. 점점 더 주변이 빠른 속도로 돌았다.

거울 속 남자의 눈동자가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노려보는 눈동자, 비웃는 눈동자, 포효하는 눈동자, 깔보듯 조소하는 눈동자. 억울한 눈동자, 비열한 눈동자, 수치심 가득한 눈동자. 수많은 눈동자들이 쇠구슬처럼 굴러다녔다. 눈동자들은 대부분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당신의 분노한 눈동자가 굴러다녔고 조롱하는 눈동자가 굴러다녔고 한탄하는 눈동자가 굴러다녔고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는 눈동자가 굴러다녔다. 수많은 눈동자가 쇠구슬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떼굴떼굴 굴러다니며 나를 조롱했다. 나는 끝까지 피하지 않겠다고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점점 나를 압박해왔다.

수많은 당신이 나를 덮치며 목을 졸랐다. 어느 순간 물속 깊이 갇혀 고막이 터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나는 점점 옥죄어오는 눈동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옆에 있는 소주병을 집어 던졌다. 거울이 와장창 깨졌다. 눈동자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러나 다시 몇 배로 늘어난 눈동자가 굴러다녔다. 나는 손에 잡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컵과 재떨이 쟁반 등등 심지어 베개와 이불까지 던지고 신발과 가방을 던지고 고함을 질렀다. 모든 것이 깨지고 부서지고 뒹굴었다. 내 몸은 꿈속에서처럼 수천수만 개로 부서지고 쪼개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래, 차라리 이렇게 죽는 것도 편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함을 지르는데 누군가 방문을 거세게 두들겼다.

“문 열어요! 빨리 문 열라고!”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거울 속의 수많은 눈동자들이 일시에 물방울처럼 터졌다. 방안은 온통 거울 파편과 물건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엉망이었다. 나는 재빨리 의자 위로 올라가 넥타이 고리에 목을 밀어 넣었다. 의자를 힘차게 밀어냈다. 목이 턱 걸리며 순식간에 숨이 막혔다. 문고리가 심하게 달그락 거리더니 모텔 사내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곤 황급히 의자를 내 발밑에 세우고 의자 위로 뛰어올랐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그래 난 죽고 싶으니 방해하지 마, 새꺄!)

사내는 내 머리를 넥타이에서 끄집어내려고 했고 나는 머리를 빼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왜 하필 여기야!” (죽는 마당에 장소 정해놓고 죽는 사람도 있냐?)

“가만 좀 있어! 머리 꺼내라고! 너 혼자 죽어 새꺄!” (나 혼자 죽지 너랑 같이 죽겠냐 새꺄.)

사내는 내 허리를 붙잡고 의자 아래로 끌어 내리려 했고 나는 필사적으로 버텼다. 사내가 겨우 넥타이를 빼자마자 둘 다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언제 어디를 찔린 건지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미쳤어? 남의 인생 망치는 것도 범죄야 새꺄!”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휴대전화를 켜고 번호를 눌렀다.

바닥으로 구르면서 갈비뼈가 쪼개지듯 통증이 왔다. 나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웠다. 사내가 전화를 걸다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운데 입에서는 왜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오는지. 화면 밖에서 본다면 눈물 날 정도로 희극적인 장면 아닌가. 드디어 괴물의 본성을 드러내고야 만 것에 우쭐한 기분이 들었고, 죽음을 시도했지만 죽지 못한 것에 화가 났고, 그러면서도 기타가 떠올라서 어이가 없었고, 짧은 순간에 이토록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습고 슬퍼서 자꾸 웃음이 튀어나왔다.

사내는 손님이 자살시도를 했다며 빨리 와달라고 신고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사내를 밀치고 재빨리 방에서 뛰쳐나왔다. 복도를 가로질러 계단을 뛰어내렸다. 사내가 뒤쫓아 오며 소리를 질렀다. 머릿속에서 용주가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의 한 부분이 이어졌다. 쇠구슬처럼 굴러다니던 수많은 눈동자들이 떠오르자 목덜미에 소름이 올라왔다. 사내가 계속 소리를 지르며 뒤를 쫓아왔다. 마치 거울에 갇힌 눈동자들이 사내에게 들러붙어 뒤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난간을 짚고 계단을 두 개씩 건너뛰어 1층에 도착하자마자 출입문을 밀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나를 망쳤어! 이게 다 망할 그 기타 루시퍼 때문이라고!”

나는 뛰면서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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