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조민성 화백>
<삽화=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4장 쉼표(1)

 

잠결 내내 기타 긁는 소리를 들었다.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어 새벽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겨우 잠이 들었다. 결심은 자꾸 흔들렸고 또 하루를 보냈다는 자책은 깊어졌다. 꿈인지 현실인지 기타 긁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지만 극심한 자책감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주었다. 벌써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그제야 벌떡 일어나 모텔을 빠져나왔다.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런 뒤 레트로 가든 쪽으로 걸었다. 노인의 기타를 꼭 확인하고 싶었다. 노인은 또 어딜 간 건지 레트로 가든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갈비뼈의 통증이 몰려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상태로 꽤 오랜 시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제 깜빡 졸았던 시간이 연장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 문득 어둠 속에 가라앉은 낡은 물건들과 한 덩어리처럼 여겨졌다. 노인은 끝내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동네는 어둡고 조용했다.

끈질기게 노인의 기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점점 루시퍼가 맞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십칠 년 만에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 가능할까. 게다가 하필 생을 접으려는 찰나에.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거나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세상은 우연의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십 대의 그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이 기타를 훔치고, 그 과정에서 기타 주인을 죽게 한 것 역시 우연성의 작용인 것처럼. 설명으로는 불가능한 여러 순간의 우연성.

문득 그 기타가 내 죽음을 자꾸 연장시키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 탓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죽으려던 결심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마 위로 차가운 느낌이 톡톡 전해졌다. 어 갑자기 웬 비? 비가 내리니 조금은 들떠 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둡고 조용한 골목을 이리저리 돌다 새로운 골목으로 들어섰다. 20미터 정도의 앞쪽에 환한 불빛이 나타났다. 마치 깊은 숲속에 숨어 있는 화려하고 따뜻한 저택을 만난 것처럼이나 갑작스러웠다. 건물은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기역자로 꺾어진 끝부분까지 모두 통유리로 돼 있었다. 통유리 안쪽에서 발산하는 빛은 화려하고 강렬했다.

건물 위쪽에 길고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전체가 흰색 바탕이었고 오른쪽 끝부분에 명조체의 검은색 글씨가 작게 새겨져 있었다. 단순하고 깔끔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강조한 흔하지 않은 간판이었다. 건물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카페인지 서점인지 파악이 어려웠다. 분위기를 보아선 카페 같았고, 벽 전체와 공간 전체에 수많은 책이 장식되어 있는 걸 보면 서점 같기도 했다. 이토록 조용한 골목에 서점이 있을 리가. 북카페인가?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환한 빛을 뿜어내는 한 척의 배 같았다. 나는 불빛을 보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마와 얼굴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양이 점점 늘어났다.

스무 평 정도의 공간은 음악전문 서점으로 보였다. 나도 모르게 카페 앞을 기웃거렸다. 밖에서도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평전이나 해설 서적들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길을 가다 보석을 주운 기분이랄까. 주택가에 이런 전문샵이 숨어 있다니 놀라웠다. 그것도 음악전문 서적을 파는 서점이라니, 꿈이 아니고서야! 이상한 동네가 맞는 걸까. 연달아 마주치는 믿을 수 없는 이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어느새 머리를 적시고 어깨를 적셨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나는 망설이다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에 매달아 놓은 종이 딸랑, 맑은 소리를 냈다. 책을 읽고 있던 여자가 인사를 했다.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네 그럼요.”

나는 흥분하여 여러 책을 두서없이 마구 들춰보았다.

“어 비가 오나?”

여자가 혼잣말을 했다.

“예, 밖엔 지금 비 옵니다.”

“비 맞으셨네요?”

“아예, 우산도 없고, 괜찮습니다.”

여자가 티슈를 몇 장 뽑아 건넸고 얼떨결에 티슈를 받아 쥔 나는 이마와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나는 벽 쪽에 진열된 책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지미 핸드릭스! 커트 코베인 평전? 밥 딜런, 아 역시 더 도어스와 짐 모리슨……!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감탄했다. 어떤 책부터 훑어 봐야 할지 어지러웠다. 마치 신세계에 입성한 느낌이었다. 가슴에선 쉴 새 없이 드럼과 기타와 키보드가 반주를 하듯 흥분이 되었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감탄사들은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생소하게 들렸다. 록스타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문 뮤지션들의 에세이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음악 해설서와 서적들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었다. 음악과 관련된 소설이나 에세이 또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시집부터 동시대 시인들의 시집까지 골고루 비치되어 있었다. 한쪽 면은 모두 재즈에 관련된 서적과 음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책장을 돌며 책 제목들을 훑어보았다.

한 바퀴 돌다 보니 한쪽 구석에 기타가 보였다. 장식용은 아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바르르 떨렸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대는 나를 보며 여자가 말했다.

“음악을 엄청 좋아 하시나 봐요.”

“아아뇨, 그냥 오랜만이라. 그런데 저 기타는, 장식용이 아닌 거 같은데……”

“제 기타예요. 연주해 보실래요?”

“아아닙니다.”

나는 두 손을 저으며 재빨리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창문 쪽에 진열된 책을 둘러보다 건성으로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진열장 너머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굵어진 빗방울이 유리창에 와 부딪혔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골목은 검은 밤바다처럼 아득해 보였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꾸역꾸역 몰려왔고, 내가 서 있는 현재와 충돌하면서 감정이 울컥 북받쳤다. 무엇이 나를 이곳까지 내몰았을까. 마치 내가 절실하게 원했던 것들이 어떤 방향으로 강하게 잡아끄는 것 같았다.

나는 과연 죽을 수 있을까. 복수는 가능할까.

“따뜻한 차 한 잔 드릴까요?”

나는 깜짝 놀라 손등으로 재빨리 눈물을 닦았다. 주머니에 조금 밖에 남아 있지 않은 현금을 떠올렸다.

“파는 건 아니고, 어차피 저도 마시려던 참이었어요. 비 맞으셔서 감기 걸릴지 몰라요.”

여자는 옆쪽으로 난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사라진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서적들로 눈길을 돌렸다. 레트로 가든과 낮에 갔던 식당과 이곳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우연이지만 하필 세 곳 모두 음악과 관련된 곳이라니. 음악과 긴밀하게 연결된 곳으로 나도 모르게 들어서게 된 걸까. 설마, 판타지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이상한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이 동네가 이상한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 현재의 내 상황이 이상한 건지, 끝없이 이상함의 연속이었다.

커트 코베인의 평전을 들춰보며 실뭉치에서 조금씩 풀린 가느다란 생각의 끈을 막연하게 붙잡았다. 내용을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검은 바탕에 커트 코베인의 얼굴 사진으로 장식한 겉표지를 들여다보았다. 금발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의 그림자가 얼굴 전체를 어둡게 만들었다. 그의 표정은 너무도 음울해 보여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마치 권총을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누군가 그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은 것처럼 보였다. 죽기 전 표정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초연하고도 깊고 우울한 눈동자였다.

권총으로 자살하는 기분은 어떨까. 하긴 죽는 순간을 기분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건 너무 가벼운 농담일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기분이란 게 존재하긴 할까.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눈다.

3초, 2초, 1초,

타앙-!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용기. 어쩌면 가장 깔끔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 눈 깜짝할 사이 세상이 닫힐 테니 고통은 순식간이겠지. 총기를 구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커트 코베인처럼 한 방에 죽고 싶었다. 경제적으로도 당신은 나를 순응자로 만들었다. 세상엔 처음부터 내 것이란 없었다.

그의 눈동자 안으로 속수무책 빨려들었다. 검은 눈동자 한가운데 박힌 조그만 빛이 사람을 이토록 슬프고 우울하게 할 수 있다니. 그는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지만, 저 먼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보고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그는 그곳에 도달했을까.

“차 드세요,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어느 틈에 여자는 되돌아와 유리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나는 책을 한쪽에 놓고 여자가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유리잔에 담긴 투명한 액체는 노란빛을 띠었다. 찻물에 띄운 노란 꽃은 수수하면서도 단아해 보였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한 뒤 차는 마시지 않고 유리잔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제야 어디선가 조용히 떠다니는 음악이 귀에 들어왔다. 노란색 차와 어울리는 뉴에이지 음악이 잔잔하게 떠다녔다. 여자는 차를 마시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민망했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시선이 싫지는 않았다.

“위로가 될 거예요.”

“예? 뭐가요?”

여자는 미소를 띤 얼굴로 찻잔 옆에 둔 커트 코베인 평전과 찻잔을 번갈아 보았다.

“표정…… 어쩌다 보니, 이젠 그런 게 보여요.”

나는 여자의 눈을 외면하며 말했다.

“음…… 모두 불꽃처럼 사라지죠.”

“천재들은 너무 빨리 가죠?”

“난 천재도 아닌데… 가야 하는데……”

아차 싶었다. 하지만 말은 의식보다 한 발 앞서 나갔다.

“후훗 다행이죠. 시간은 늘리면 얼마든지 늘어나는 거니까요.”

‘확인하고 싶네요. 내일 아침 태양의 표정이 어떤지……’

“어서 드세요.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풀릴 거예요.”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여자와 겉도는 대화를 이어갔다. 여자가 차를 마셨고 나도 여자를 따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했고 향은 그윽했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간판이 마음에 든다고 하자 여자는 고맙다고 했다.

“간판 이름 옆에 붙인 부호는 중복 표현인데, 쉼표에 숨은 의미라도 있습니까?”

“행간과 같은 맥락이죠. 한 호흡 쉬며 여유를 갖자는 의미요.”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길을 걷다 보도블록을 뚫고 올라온 이름 모를 풀꽃처럼 소박하고 담백한 미소였다. 나는 순간 가슴 한편으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 많이 본 미소. 언젠가 똑같은 생각을 하게 했던 저 미소. 아니 어린 시절 자주 보았던 미소. 여자는 차를 마시며 아까 읽었던 책을 다시 가져와 진열대 옆 간이의자에 앉아 페이지를 펼쳤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책장으로 가 지미 핸드릭스의 자서전을 펼쳤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같은 세상은 살기 싫어

 

노래 제목이었는데 마치 내 심정을 대변하는 문장 같아 한참 동안 활자에 시선을 주었다. 노래가 들어보고 싶었다. 책장을 아무 데나 펼쳐지는 대로 글을 읽었다. 펼치는 장마다 핸드릭스가 들려주는 그의 록 인생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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