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조민성 화백>
<삽화=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3장 수상한 밥집(2)

 

마침 출입문이 열렸고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들어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식당남자가 인사를 하며 다가가자 여자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치즈라면을 시켰다. 남자는 주방으로 들어갔고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우울이 짙게 밴 몸짓이었다. 나 역시 꼼짝하지 않고 여자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앉은 탁자와 여자가 앉은 탁자 사이로 음악이 출렁거렸다. 구부정하게 움츠린 여자의 등이 신경 쓰였다. 정물화 속에 뛰어든 인물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지만 온몸에서 습기를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얼음조각상 같아서 내버려 두면 형체도 없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 여자의 등이 너무 추워 보였다.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여자의 등에서 어머니의 등을 보았다. 언제나 겨울들판처럼 황폐하고 시리게만 보이던 등. 저 여자도 어머니처럼 긴 우울을 앓고 있는 걸까. 남자가 치즈라면이 담긴 그릇을 여자 앞에 놓아주며 맛있게 드시라고 했다. 여자는 숟가락 위에 면발을 올려 라면을 먹었다. 남자는 주방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고 정리를 하는 것 같았다. 아는 손님 같았지만 남자는 슬쩍 물러나 주는 것처럼 주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여자의 등을 보며 어머니의 오랜 지병을 떠올렸고 문득 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었던 생활방식들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평생 혼자만의 감옥에 갇혀 살았던 어머니. 고개를 저으며 애써 어머니 생각을 털어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이어가는 남자와 소리 없이 면발을 삼키는 여자, 그리고 나.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음악 소리와 식기 부딪치는 소리만이 식당 안을 가득 메웠다. 반도 먹지 않은 것 같은데 여자가 일어나 계산대에 현금을 놓고 조용히 사라졌다. 마치 영화 속 배경 인물이 프레임 안에 슬쩍 등장했다 사라지는 것처럼 존재감이 희박했다. 참 이상한 식당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좀 더 앉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꺼내어 계산대 쪽으로 갔다. 남자가 뒤 따라와 계산대 안으로 들어갔다.

“어땠습니까? 식사요.”

“좋았습니다.”

“한 끼 식사가 때로는 큰 위로를 주기도 하죠. 제 꿈입니다 하하.”

남자의 말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지갑을 열어 안을 살폈다. 현금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카드를 꺼내어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카드기에 카드를 집어넣었다 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남자의 등 뒤에 걸린 밥 말리의 브로마이드를 바라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남자는 밥 말리의 분위기를 풍겼다. 세상과 잘 섞이지 않으면서도 또한 잘 섞이는 묘한 분위기. 카드가 되지 않아 조금 남은 현금으로 계산을 해야 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카드를 모두 정지시킨 당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돈이 없으면 세상은 끝이라던 당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굳건히 믿는 당신. 당신의 뜻대로 나는 세상의 끝에 와 있다. 나는 몸을 돌려 세상의 끝에서 만난 식당을 쳐다보았다. 저렇게 작은 공간 안에서 지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자본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진심이 담긴 공간으로 보였다. 식당의 창문틀 전체를 타고 이어진 스킨답서스 잎사귀에 오후의 햇살이 닿아 초록의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많은 것들이 여름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스킨답서스는 일 년 내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익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의 밝은 웃음과 함께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밥 한 끼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이곳에서 밥을 먹고 나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위로받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이상하고도 수상한 밥집이다. 그 이유가 딱히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유일 텐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남자가 있는 저곳에서 밥을 먹는 동안 잃어버린 삶의 조각들을 떠올리거나, 잃어버린 그 조각들을 되찾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 생기게 하는, 뭐 그런 종류가 아닐까.

 

*

발길을 돌려 식당 건물을 끼고 옆길로 걸었다. 약간 쌀쌀했다. 햇살이 갑작스레 구름 뒤로 숨어버리자 따뜻한 공기가 사라지고 여전히 시린 봄기운이 달려들었다.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 가로수엔 어린잎이 가지마다 삐죽삐죽 몸을 밀어내고 있었다. 식당에서 한 시간 넘도록 앉아 있다 나오니 해는 오후로 넘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약간 지날 무렵이긴 하지만 주택가로 이루어진 동네는 조용하고 한산했다.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이대로 모텔로 들어가는 건 내키지 않았다. 날씨가 지나치게 맑고 환했다. 가로수마다 은행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물고기 떼처럼 몸을 떨었다. 간혹 광합성을 많이 받은 가로수들은 벌써 어른이 된 것처럼 무성하게 잎을 피워 올렸다.

걷다 보니 천변을 낀 공원이 나타났다. 비어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루시퍼의 낡은 모습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떠돌다 노인의 손에까지 어떻게 들어간 걸까. 새 기타를 사서 노인에게 교환하자고 해볼까. 그러나 막상 기타를 내 손에 넣는다고 하자. 그 다음은? 뭘 어쩌자는 거지? 그 기타를 굳이 내 것으로 만들 이유가 있을까. 굳이 확인도 되지 않은 루시퍼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루시퍼 때문에 내 인생이 비참하게 망가졌지만,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결코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그런데도 한 번만, 루시퍼를 맘껏 연주해보고 싶은 이 욕망은 대체 무슨 이유인가. 철없던 그 시절 훔친 기타 루시퍼를 시연했던 환희의 그 순간을 이제 와 떠올리는 이유는.

공원 벤치에 앉아 햇볕을 받다 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밥을 먹어서인지 기분 탓인지 통증도 많이 가라앉았다. 몸이 나른하게 풀어졌다. 바람이 서늘한 기운을 품고는 있었지만 햇살이 노릇노릇 구워진 달걀 프라이처럼 고소한 느낌이 났다. 공원 여기저기 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렸다. 소녀 취향의 물감을 여기저기 찍어놓은 것처럼 화사했다. 식탁 옆 벽과 어머니가 쓰던 방 곳곳에 걸린 코스모스 그림들은 실제보다 더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첫사랑’이라고 스티비 원더가 말했던 것처럼 내게도 어머니가 내 첫사랑이 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존재가 내게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긍정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부정적일 것도 없었다. 어머니의 무심한 듯 의무를 다한 양육방식처럼 나 역시 어머니에게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을 뿐이니까. 벤치 한 귀퉁이에 졸고 있는 햇살처럼 몸 구석구석의 신경들이 나른하게 퍼졌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를 누르는 듯한 통증만 아니라면 지극히 평화로운 풍경들이었다.

잠을 털어내듯 벌떡 일어섰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천변을 따라 걸으며 코스모스 꽃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부드럽고 싱그러운 촉감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찻길로 접어들어 왔던 길을 되짚으며 걸었다. 한참 동안 걸었는데 결국 레트로 가든 앞이었다. 기타 소리가 나지 않아 안쪽을 살펴봤지만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어둔 채 가게를 비워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곳이었다. 나는 특이한 간판 같은 복고풍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한참 들여다보자니 거울 안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먼 곳에서 불어온 바람의 기원이 담긴 마법의 거울 같았다. 이곳은 점점 부풀어 오르는 빵처럼 궁금한 것으로 가득 찬 공간처럼 여겨졌다.

안채 쪽으로 통하는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돌며 이것저것 구경하다 시간을 보냈다. 이 많은 물건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구석구석 숨은 희귀한 물건들에는 누군가의 낡은 회한들이 오롯이 새겨진 것처럼 보였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한참 동안 물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문을 열어둔 채 어딜 간 걸까. 거꾸로 도는 시계 앞에 섰다. 나는 12시 정각에 멈춰 있는 두 바늘처럼 똑바로 서 있었다. 시계의 초침은 뒤쪽을 향해 여전히 숨 가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시계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시계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둠이 몰려오자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가게 안까지 바람이 파고들었다. 언제부터 켜 있었는지 조그만 전구에서 희미한 빛이 조금씩 밝혀졌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나서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전구의 빛. 고개를 돌려 시계를 계속 들여다보았다. 초침을 따라 나 역시 반대편으로 바삐 걷고 싶었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자 어머니의 환각이 보였다. 기나긴 미로를 따라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어머니가 다가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섰다. 어머니? 어머니는 말없이 몸에 두른 숄을 벗어 내 어깨에 감싸 주었다. 시리던 어깨를 따뜻하게 감쌌다. 바로 곁에 있는 어머니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어깨를 덮은 숄의 감촉은 안개처럼 축축하면서도 보드라웠다.

“어머니가 여긴 어, 어떻게……!”

어머니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애잔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려 몸을 움직였지만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여길 어떻게 오셨지. 내가 드디어 미쳐가는 건가. 나는 큰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말없이 내 얼굴만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나는 다급하게 어머니를 부르며 쫓아가려 했지만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어머니의 모습이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나는 목이 터져라 어머니를 불렀다.

“이봐 일어나, 이 사람 이거 왜 이러나?”

나는 노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여기서 자다니 뭐 하는 짓이야?”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갈비뼈 쪽이 끊어질 듯 아파서 가슴을 웅크렸다. 시간이 꽤 늦은 건지 가게 구석구석 어둠이 꽉 들어차 있었다. 얼떨결에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렸다.

“죽는 일이 그렇게 쉬운 줄 아나. 엉뚱한 데서 어머니 찾지 말고 그만 집에 들어가지.”

“예? 어머니라뇨?”

나는 걸음을 멈추고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인은 박스를 든 채 안쪽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구부정하게 걷는 노인을 보자 마치 그곳에 쌓인 물건들과 한 묶음 같았다. 내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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