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楚 목왕의 정변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貴妾不使二后 愛孼不使危正適 귀첩불사이후 애얼불사위정적
첩이 예뻐도 왕후노릇 하게 말고, 서자가 귀여워도 적자를 흔들게 말라. <韓非子>
왕들이 말년에 첩과 서자를 편애하여 나라가 위태로워짐을 경계한 말.

초나라 성왕이 일찍이 정(鄭)나라를 위하여 송(宋) 양공을 물리쳤을 때, 돌아오는 길에 정나라에 들러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나라를 구해준 데 대한 사례이니 오죽했으랴. 거하게 술과 음식을 대접받는 데까지는 그렇다 치자. 성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정나라 군주의 딸 둘을 취하여 자기 나라로 데려갔다.

정나라의 지혜로운 대부 숙첨(叔瞻)이 언짢아하여 말했다. “성왕은 예를 알지 못하니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향연을 예를 받고 마지막에는 남녀를 분별치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가 패업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과연 성왕은 46년이나 왕위에 머물면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끝내 패권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흘렀다. 이제 후계문제를 확정해야 했다. 성왕은 일찍이 맏아들 상신(商臣)을 태자로 책봉했는데, 그 때 영윤 자상이 만류했었다. “왕께서 나이가 아직 젊으시고 거느리는 처첩 또한 많으니, 태자를 책봉하는 건 이릅니다. 태자에 봉하셨다가 뒤에 생각이 변하여 바꾸기라도 하시려면 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더구나 왕자 상신은 두 눈이 독사와 같고 음성 또한 차고 냉혹하며 성격이 잔인하니 태자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왕은 영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 태자 상신은 이미 장년이 되었다. 태자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인맥을 통하여 모든 첩보가 들어왔다. 이제 태자는 늙은 왕보다도 강력한 실세였다. 그런 상신에게 중대한 첩보가 보고되었다. 성왕이 태자를 둘째 아들로 바꾸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태자 상신은 스승인 반숭(潘崇)에게 상의했다. “왕에게 직접 여쭤볼 수도 없고, 왕의 진심을 알아낼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자 반숭이 계책을 일러주었다. “왕이 총애하시는 강미가 마침 방문하셨으니 초대하여 모욕감을 느끼게 해보십시오.” 강미는 강(江)나라로 시집간 왕의 누이동생이다. 상신이 그 말대로 강미를 연회에 초청하여 무례하게 대하자 성질 급한 강미는 벌컥 화를 내면서 욕을 퍼부었다. “이런 작자가 태자라니. 대왕께서 태자를 바꾸려고 하는 것도 괜한 일이 아니었구나.”

왕의 진심을 알아냈다. 반숭에게 말하니 반숭이 태자에게 물었다.

“이제 태자께서는 아우를 왕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상신이 대답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로 도망하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정변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상신이 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죽느냐 사느냐의 길만이 남았다.

날이 쌀쌀해지는 음력 10월이었다. 상신의 수하들이 지휘하는 궁중 경비병들이 내전을 에워쌌다. 왕은 호위병 하나 없이 장정들의 칼날 앞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요구했다. “이제 권력은 태자에게로 넘어갔습니다.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으니, 제왕답게 스스로 결단하십시오.”

그러나 너무나 급작스레 모든 것을 끝내기에는 미련이 남았다. 성왕이 말했다.

“지금 요리사가 곰발바닥을 삶기 시작했다네. 그것은 먹고 갈 수 있게 해주게.”

그러나 반란자들의 대꾸는 냉랭했다(지휘자가 반숭이었다고도 한다). “곰 발바닥은 빨리 익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시간을 끌어봤자 왕을 구원하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왕은 일찍이 상신의 태자 책봉을 만류했던 영윤 자상과 충성스런 장군 두발 등을 떠올리며 후회했다.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왕은 칼을 집는 대신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상신이 왕위에 올랐다. 그가 목왕(穆王)이다.


이야기 PLUS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라도 갓 낳은 새끼는 귀엽기 그지없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타자를 향하여 아무런 악의도 갖고 있지 않으며, 누구를 해칠 의사도, 해칠 능력도 없다. 그래서 모든 아기들은 천사라고 불린다. 이런 말도 있다. “모든 아기들은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으므로 다른 누군가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천사의 얼굴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 귀여움에 속아서, 동물들은 설사 천적의 새끼라 해도 본능적으로 애정을 느끼고 품어주곤 한다. 심지어 어미 원숭이를 잡아먹은 치타가 그 품에서 떼어낸 새끼 원숭이를 모성으로 품어주는 경우도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천사의 얼굴에 속아 어린 맹수나 야수를 품어 기르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공들여 일군 기업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드라마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난다. 현명한 사람들은 천사의 얼굴 뒤에 숨겨진 본성을 놓치지 않는다.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한비자(韓非子)는 말하기를 “첩이 귀하더라도 왕후노릇 하게 말고, 서자를 사랑하더라도 적자를 위태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貴妾不使二后 愛孼不使危正適).”고 했다. 한비자의 경고가 있은 뒤에도, 나이 들어 얻은 젊은 첩과 그 소생에게 홀려 본래의 처와 자식들을 내팽개쳤다가 스스로 배척당하고 국가에 내란을 부른 왕들은 무수히 많았다.

격장술(激將術): 적을 심리적으로 흔들어 약점을 파악하는 기술을 격장술이라 한다. 반숭은 본심을 알고 싶은 성왕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왕이 총애하는 누이를 격동시켜 스스로 중대한 기밀을 토설하도록 유도했다. 한층 노련한 격장술이었다.

왕이 총애하는 강미를 초대하여 무례하게 대하자 강미는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이런 자가 태자라니. 왕이 태자를 바꾸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태자는 이것으로 왕의 본심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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