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국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 심의에서 중소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골자로 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이 통과하자 금융당국과 카드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시민단체들은 ‘제밥그릇 챙기기 바쁘다’며 카드사들의 반발을 비판하고 있다.

개정안은 빠르면 이달 중 법사위를 거쳐 늦어도 오는 3월이면 국회에서 통과가 가시화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카드사 최고경영자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17일 여신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삼성카드, 하나SK카드, 롯데카드, 현대카드, 비씨카드 등 최고경영자들이 최근 만나 수수료율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에 임원급을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TF는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까지 개선안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여신금융협회가 주도하는 수수료율 체계 개편 작업은 금융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에 용역을 맡겨 논의돼왔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우대 수수료율을 정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정무위를 통과하는 등 상황이 긴박해지자 카드사 사장단들이 직접 나서 수수료율 체계 개편 일정을 대폭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수수료율 체계 개편은 여신금융협회가 주도하고 사장단은 보고만 받다 보니 진척 속도가 느렸다. 위헌 소지가 있는 법안이 국회에서 추진되는 것을 보고 각 사에서 추진력 있는 임원급을 TF에 보강해 개편을 서두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부터 중소가맹점 범위를 연매출 2억원 미만으로 규정해 우대 수수료율 1.6~1.8%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전체 가맹점 중 71.5%인 159만 곳, 서민생활 밀접업종은 83%가 인하 혜택을 받고 있다.

업계, 공통비용 배분 문제로 원가계산 어려워

아울러 카드사 사장단은 정치권의 수수료율 개정안에는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정부가 수수료율 체계를 직접 정하는 상황이 되면 시장 질서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절박감에 배수진을 치기로 한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수수료율을 정하는 조항은 개정안에서 빠져야 한다”며 “금융 당국의 행정 지도로 충분히 할 수 있고 수수료 체계 개편은 이해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드사들은 국회 개정안이 통과되면 헌법 소원을 제기할 방침이다.

금융위가 수수료율 원가를 산출해서 최소한의 이윤만 보장하는 수준에서 중소가맹점의 수수료율을 결정한다는 방안은 얼핏 합리적인 대안으로 보이지만 금융당국과 카드업계 모두 원가 산출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정부가 매년 모든 카드사의 원가분석 후 합리적인 수수료율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수수료율 수준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카드업계 관계자 역시 “금융은 제조업이랑 달라서 원가 계산이 힘들다”며 “원가를 내도 한쪽에서는 과대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과소하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렇게 원가 산정이 힘든 것은 공통비용을 배분하는 것 때문이다. 제조업은 생산라인 자체가 구별돼 있기 때문에 제품별로 소요되는 원자재비용, 인건비 등을 쉽게 산출할 수 있지만 금융업은 그 상황이 다르다. 예금, 펀드, 보험, 카드 등을 다 판매하는 은행 창구의 카드 발급 원가를 산출한다고 할 때 창구 직원의 업무량 가운데 카드 발급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해 인건비를 나눠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 원가 분석 문제도 마찬가지다. 카드사의 비용을 일시불ㆍ할부 등 신용판매와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으로 나눠야 하는데 예를 들어 카드사가 수억원을 들여 TV광고를 한다고 할 때 이 비용을 신용판매와 현금대출로 어떻게 구분할 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조달비용, 마케팅 비용, 프로세스 비용 등 각종 공통비를 분배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설사 기준을 세운다 하더라도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은 매출액 또는 수익 기여도에 따른 공통비 배분”이라며 “하지만 두 기준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수수료 원가가 크게 달라지는데 매출액 기준으로 공통비를 배분하면 원가가 상당히 높아지고 수익 기여도를 기준으로 하면 원가가 너무 낮아진다”고 말했다.
그동안 금융업계에서 원가 산정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통비 배분 문제의 난관에 부딪쳐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편 카드사의 움직임 속에 자영업자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유권자시민행동은 이날 성명을 통해 “신용카드 차별 금지를 담은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 마땅히 통과돼야 한다”며 “금융당국과 카드업계, 금융노조가 주장하는 포퓰리즘, 헌법ㆍ시장자율 위배는 일고의 가치도 없을 뿐 아니라 대기업과 계열사만 우대해왔던 카드사들의 밥그룻 챙기기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