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배제고보 시절과 도일

 

4

 

개벽사(開闢社) 편집실 밖 호두나무를 감고 올라간 담쟁이 잎들이 불만스런 몸짓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참새 대여섯 마리가 하얀 배를 드러내며 포르르 날았다. 정식은 방금 나빈이 한 말을 머릿속에서 곱새기고 있었다.

“왜 자네 시를 남이 고친단 말인가. 자넨 당당한 시인일세. 그뿐인가 휘황한 장래가 약속된 시인 아닌가.”

나빈만이 아니었다. 개벽사 주간 이돈화(李敦化)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식이 직접 가져온 시와 김억이 고친 시를 견주어 보고 불만이 드러나도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식은 경성 문단을 꿰고 있는 나빈을 따라 개벽사에 첫걸음을 뗐다. 세상사람들이 자신을 시인으로 호칭하도록 만든 산파 역할을 한 잡지사였다. 그동안 시 원고를 김억에게 보냈다. 김억이 잡지사나 신문사에 보내 발표를 도와주었다. 그러다 보니 김억이 정식과 상의 없이 마음대로 시구를 고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고쳐서 더 나빠졌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었다. 정식은 내색하지 못했다. 김억 또한 정식에게 고친 것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직도 제자에게 가르칠 게 많다는 뜻이 아니겠나. 교육과 애정의 발로로 기꺼이 노고를 보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네.”

김억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식은 대답했다.

“허허.”

나빈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돈화도 정식의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렇담 자네 시를 민요시로 분류하는 것도 제자에 대한 애정의 발로인가? 월탄은 ‘소월 시의 정조(情調)는 바로 우리 민족의 감정이며 우리 민족의 낭만’이라면서 민족시라고 호칭하지 않던가. 그런데 김억 선생이 민요시로 단정하니까 다들 비판 없이 받아들여 소월은 민요시를 쓴다고 비평하는 것 아닌가?”

나빈은 정식에게 문학가의 자존심을 일깨워주려고 작정한 것처럼 따지고 들었다. 정식은 나빈의 말을 넘치는 문학적 열의로 받아들이면서도 마음 한편의 허전한 구석을 콕 집어 주는 공감을 느꼈다. 정식은 시의 서정성을 우리 민족 고유의 한 많고 정에 겨운 정서에서 취하려고 애를 썼다. 그것을 쉬운 토속어를 사용하여 단조롭고 경쾌한 운율로 다듬었다. 그런 시작 태도를 김억이 말한 바대로 민족의 얼을 지키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또 김억은 정형률을 중요시하라고 했다. 견디고 견딘 끝에 남은 언어를 음률로 조화시켜야 그 본성이 곱게 나타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래서 민요의 본질인 구비나 낭송에 쉽게 가 닿을 4, 4조의 율조뿐 아니라 서구의 로버트 번즈나 예이츠의 시처럼 7, 5조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민요시라니. 정식은 내심 자신과 김억 사이에 굵은 금 하나가 그어진 느낌을 품고 있었다.

“민요시로 내 시를 분류하는 데에도 스승의 깊은 뜻이 개입해 있다고 보네. 요즘 일제의 감시가 얼마나 심한가. 드러내놓고 저 사람이 민족시를 쓴다고 말하는 게 부담스런 시국이 되어 가고 있네. 그런 시인이라면 차차 요시찰인물로 변하지 않겠는가. 나는 민요시라는 말에서 역시 김억 선생님의 따뜻한 애정을 보네. 민요시든 민족시든 판단은 독자들 몫으로 맡겨 놓으면 그만이네.”

정식은 불신감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나름 그렇게 변명하고 보니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시를 탄압하면 머잖아 민요시도 탄압할 걸세. 허허.”

나빈이 말문이 막히는지 다시 허탈한 웃음을 입꼬리에 달았다.

“김억 선생의 행태야 어떻든 웅숭깊게 선생의 흠결을 감싸는 제자를 둔 김억 선생이 부럽네.”

이돈화가 두 손으로 정식의 손을 움켜잡았다.

“소월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었으면 자기를 빛나게 하려고 스승을 감싸는 사람으로 오해할 뻔했네.”

나빈 또한 정식의 손을 움켜잡은 이돈화의 손 위에 자신의 두 손을 얹었다.

 

5

 

식탁의 한 면을 붙여놓은 벽에 난 유리창에서 빗물이 줄줄 흘렀다. 종일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김억이 자주 들른다는 세검정 우래옥에서 정식은 김억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자주 술자리를 갖다 보니 처음의 난감함이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 많이 가셨다.

“대상의 부재는 상실감과 함께 그리움을 자극하네. 그러나 상실감과 그리움에 너무 오래 천착하면 그것이 정신을 무참히 갉아먹네. 병든 인간이 되면 시혼 또한 병드네. 종내는 시혼이 시인을 떠난다네.”

김억은 취기를 이기려고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정식의 시적 대상을 오순을 중심에 놓고 해석하며 지나친 걱정에 잠겨 있음이 분명했다.

“시 소재가 고작 한 여성에 국한해서도 안 된다니까.”

정식의 시가 좋다지만, 고작 오순이라는 한 여자에게 아직까지 집작하니까, 민족시로 분류할 수 없다는 의도를 숨긴 말일까? 정식은 이 말이 맞지도 틀리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순을 마음 안에서 떠나보낼 수는 없지만, 모든 시가 오순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오순에 대한 사랑이 끼친 영향 때문인지 어떤 소재를 쓰더라도 시의 기저에 상실감과 그리움이 깃들었다. 오순 대신 민족과 나라, 저항을 은유하기도 했고, 그저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풍광을 노래하기도 했다. 그래도 주제는 마찬가지였다. 김억이 마음을 써 주는 것은 언제나 고마웠다. 하지만 김억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자신을 몰아갈 마음은 없었다. 김억 너머 오니원의 세계는 무엇일까?

정식은 며칠 전 나빈으로부터 김억에 대해서 한 마디 들었다. 나빈이 문학가들이 모인 어느 자리에서 김억에게 정식의 시를 고치는 문제에 대해서 항의조로 따졌다고 했다.

“내가 동서양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쓰고 싶었던 시를 그 녀석이 써 오고 있었던 거라네. 금모래도, 님도, 진달래도, 갈잎도, 이별도 다 그 녀석 것이 되었어. 앞으로 그 녀석이 더 성장하면 내가 쓸 시는 하나도 없게 될 거야. 어느 날 그런 깨달음이 문득 나를 덮쳤어. 부처를 죽이는 새 부처의 탄생을 예감하고 있댔다니까. 흐흐흐.”

김억이 정식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일부러 시를 나쁘게 고쳤다는 고백은 결코 아니었다. 시를 고쳐 주어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고쳤지만, 그것이 김억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는 고백이리라.

불빛이 빗줄기가 흐르는 유리창을 제대로 뚫고 나오지 못하고 아롱거렸다.

“선생님, 투명한 빛물이라도 빛을 투과시키지 못하는군요. 삶의 소소한 잘못들이 진심을 가리듯 말입니다. 진심을 가리는 일이 반복되면 종국에는 거짓의 누더기를 걸친 속인으로 전락할 뿐이지요.”

“그래서 여인에 집착하겠다?”

김억이 정식의 말을 자신의 충고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알아듣고 슬쩍 눈을 치켜떴다.

“시는 쓰는 이가 자신의 진심을 꼭 붙잡고 그것을 노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김억이 정식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듯, 술 취한 사람이 혹시라도 실수를 보태면 지금까지 한 말을 빛바래게 하는 누를 범할까 우려한다는 듯 대꾸 없이 다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6

“일본으로 가겠다고?”

할아버지가 집안 형편을 알고나 하는 소리냐는 듯 정식을 쏘아보았다. 정식은 고집스럽게 사랑방의 할아버지 맞은 편 자리를 지켰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말한 것보다 더 강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중이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논리와 설득보다는 갓놈 시절처럼 고집을 피우는 방식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어느새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은 적도 없지만, 그나마 그것이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컸다.

정식은 오는 3월(1923년) 배제고보 졸업을 앞두었다. 입학한 지 1년 만이었다. 배찬경은 이번에도 정식보다 앞서서 도쿄 유학을 결정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봐야 호랑이를 잡지.”

배찬경은 정식을 찾아와 유학의 변을 밝혔다.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줄 알았더니.”

정식은 슬그머니 질투가 일었다.

“복수하기 위해서는 분노를 감추고 힘을 길러야지.”

정식은 이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장손인 자신에게 달렸음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다. 가세가 기울어서 유학을 보낼 수 없다지만, 정식이 판단하기에는 유학이 가세를 일으킬 희망이었다. 지금은 신학문을 배워야 행세를 하는 시절로 변하고 있었다. 가세는 배제고보에 유학을 보낼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할아버지는 금광 개발에 신심을 잃었다. 금맥이 얼핏얼핏 비쳤다가는 없어지곤 한다고 했다. 귀신 곡할 노릇이라고 자탄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투자금이나마 건질지 의심스럽게 되었다. 아버지는 병세가 호전되는 듯하더니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으로 되돌아왔다. 정식은 집안에서 누누이 운위되던 장손의 책무를 비로소 문밖에 당도한 일로 가슴에 품었다. 그 책무가 어느덧 생각 밖으로 내팽개쳐도 생각 안으로 돌아오고 마는 사명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사랑방을 나갔다. 정식은 믿었던 것들이 허망하게 사라진 자리처럼 쓸쓸한 방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돈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떨쳐내려고 모질음을 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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