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배제고보 시절과 도일

 

1

1922년

경성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왕십리 밤거리를 정식은 배찬경과 함께 거닐었다. 김억에게 시작 노트를 가져다주고 하숙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배찬경을 만났다. 배찬경의 하숙은 서소문 부근이었다. 다리는 다 나았다고 했지만, 아직도 심하게 절었다. 아마 평생 그렇게 걸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외모 탓에 정식은 배찬경을 얼른 알아보았다.

김억은 경성에 올라와 지지난해(1920년) 여름부터 1년 남짓 ‘폐허(廢墟)’ 동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번역에 몰두하여 지난해에는 󰡔오뇌(懊惱)의 무도(舞蹈)󰡕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번역시집을 출간했다.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자네, 붓끝이 단단히 여물었네. 자연에 대한 자네 특유의 감성에 관념이 융합된 시가 감미로운 소리처럼 흘러나오더군.”

시작 노트를 살펴보던 김억은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정식보다 한 해 일찍 경성으로 온 배찬경은 계획대로 이미 배제고보에 편입해서 다니는 중이었다. 정식은 다행히 우수한 성적으로 배제고보 5학년에 편입해 배찬경과 다시 동급생이 되었다.

“네 하숙은 서소문 부근인데, 어찌 여기까지 왔지?”

배찬경은 웃기만 했다. 둘러댈 말이 궁할 때 보이는 버릇이었다. 그러더니 말머리를 돌리려고 뜬금없이 종로나 서소문 일대의 술집을 품평하기 시작했다.

“그 집에서는 춘옥이가 제일 예뻐. 마음까지 어찌 그리 고운지…….”

“…….”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시궁창에 빠진 발도 웃으면서 닦아 준다니까.”

“입으로 발가락을 빨아주는 기생도 있다더라.”

정식이 비꼬았다. 배찬경은 경성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자못 신기한가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서울사람이었다는 듯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깨를 으쓱거렸다. 시내 안내자 노릇까지 자청했다. 하지만 정식이 기대하는 문학계에 대한 동정은 하나도 몰랐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은밀히 내통할 터였지만, 그쪽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물어도 모르는 척할 뿐 아니라 한갓 술과 여자나 탐닉하는 청맹과니 노릇을 자처했다. 3.1만세운동 이후 일제의 감시가 훨씬 더 삼엄해졌다. 자기 동무들과 비밀스런 논의를 하러 일부러 이곳 왕십리에 왔을까? 자기의 일이 위험하면 할수록 조직의 비밀을 지키고 정식을 보호하려는 의도 또한 강하게 작용했겠지? 정식은 점차 나이가 들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사람처럼 배찬경과 괴리가 생기는 것이 서운했다.

정식이 술집 품평에 별 반응이 없자, 둘은 동행이 가능한 길까지 대화 없이 걸었다. 포플러나무 이파리에 내려앉았던 빗물이 후둑후둑 길로 떨어지는 소리만이 누군가 서러워 흐느끼는 소리처럼 고요를 깨뜨렸다. 불현듯 외롭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경성 거리는 사람이 많아 복잡했고,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이 시야를 가려 갑갑했다. 밤이 되면 붉고 푸른 전등들 밑에서 떠드는 소리로 소란했다. 낯선 것으로 가득 찬 경성이 되레 적적했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오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의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 ‘왕십리’ 전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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