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정치권이 고강도 긴축안에 합의함에 따라 재정위기에선 잠시 숨통이 트였다. 급한불은 껐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9일(현지시간) 그리스에 2차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장 클로드 융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모임) 의장은 이날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그룹 긴급회의가 끝난 뒤 “여러 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며 “그러나 아직 정리되지 않은 사안들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앞서 루카스 파파데모스 그리스 총리는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그리스 정치권이 2차 구제금융 지원 조건에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융커 의장은 그리스 2차 구제금융 지원을 위한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융커의장은 유로존 비상회의가 열리는 오는 15일까지 ▲올해 3억2천500만 유로의 지출 삭감 계획 제시 ▲긴축 조치 및 경제개혁에 대한 의회비준(12일) ▲4월 총선 이후에도 긴축 및 경제개혁 조치를 이행한다는 그리스 과도정부 지도자들의 약속 등 3대 조건을 그리스가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 세 개지 요소는 우리가 구제금융 지원 결정을 내기리 전에 해결되야 한다”며 “다시말해 ‘이행’없는 ‘지출’은 없다”고 못박았다.

트로이카 실사단(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은 그리스 정부가 지난 2010년 5월 1차 구제금융 지원 때 합의한 내용을 노동계 등 내부의 반발 때문에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며 그리스 정치권이 고통이 따르는 구조개혁과 긴축재정 프로그램을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리스는 1300억 유로의 2차 구제금융을 받지 못할 경우 다음달 20일 만기가 돌아오는 145억 유로 규모의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국가부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구제금융 받아도 문제는 ‘산더미’

그리스 정치권의 2차 구제금융을 받기위한 조건을 수용하는 것은 그리스 회생을 위한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2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그리스 정치권내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더라도 그리스 정부가 민간채권단과의 국채손실분담(PSI) 협상을 진행중인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의 손실 분담 여부도 명확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주변국들의 반발도 우려된다. 독일 의회의 그리스에 대한 지원규모, 민간 채권단과의 국채교환 협상 조건, 그리스의 긴축이행 합의 내용 등에 관한 찬반 투표 결과가 주목된다.

합의 이후 그리스 경제전망이 나빠지면서 합의가 이행되더라도 목표한 그리스 정부의 채무상환능력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그리스가 가까스로 3월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도 빚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60%에 달하고 경기가 장기침체에 빠져 있어 즉각적인 재정 개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디폴트 위기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프랭크 길 S&P 애널리스트는 “민간채권단의 국채 70% 손실탕감만으로는 재정적자를 줄이기에 충분치 않다”며 “그리스 국채교환 이후 일시적으로 국가신용등급을 ‘선택적 디폴트’로 강등하고 이후 바로 조정하겠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ECB 향방에 이목 집중

상황이 이렇게 진행됨에 따라 유럽중앙은행(ECB)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장에서 위기 해결을 위한 돈줄이자 그리스 등 유로존 국채를 많이 들고 있는 ECB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U 집행위도 ECB가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으나 독일 등은 ECB 개입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ECB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110억 유로의 그리스 국채에 대한 손실 탕감 여부를 아직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8일(현지시간) 그리스 지원에 민간 채권단 뿐만 아니라 ECB도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앞서 WSJ는 ECB 소식통 등을 인용, 그리스 국채를 대거 보유한 ECB도 보유 중인 그리스 국채에 대한 손실분담에 참여하라는 요구를 결국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유럽 상황이 악화되면서 ECB가 보유한 주변국의 국채 가치가 하락하거나 채무조정과 구제금융이 다른 위기국으로 확산될 경우 ECB의 재정건전성 역시 훼손될 게 뻔한 상황이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어 ECB의 결정에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리스 노동계 총파업 단행

한편 그리스 노동계 민간부문을 대표하는 노동조합단체인 노동자총연맹(GSEE)은 긴축안에 반발하며 10일과 11일 양일간 파업에 들어갔다. 앞서 GSEE와 공공부문을 대표하는 노조단체인 공공노조연맹(ADEDY)은 지난 7일 24시간 동시 총파업을 단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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