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나태주(시인)

나태주(시인)
나태주(시인)

친절하게도 신문사에서 직접 전달해준 응모작 전부를 읽었다. 그야말로 산더미 응모. 어떻게 저걸 다 읽나? 처음엔 그랬는데 하룻저녁 읽고 하룻저녁 고민하고 나서 심사평을 쓰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산문 투의 문장들이 많았고 사실이나 생각을 생경하고도 장황하게 늘어놓은 글들이 많았다. 오히려 시적인 문장을 제대로 갖춘 작품을 찾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시의 소재인 감정의 형상화다. 감정이란 모양도 소리도 촉각도 향기도 없는 투명하고도 무정형인 그 무엇이다. 그것을 어떻게 언어로 형상화해서 읽는 이에게 잘 전달하느냐가 시의 관건인데 애당초 거기서부터 발걸음이 빗나가 있었던 것이다.

하기는 시라는 장르가 지극히 주관적인 문장이라서 누가 심사를 보았느냐에 따라 근본부터 달라질 수 있겠다. 말하자면 나태주가 심사를 맡음으로 이미 읽지 않은 작품 더미 가운데에서 선정될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작품이 세 작품이다.

서호식 씨의 「간이역에 사는 사람들」 외 4편. 정운균 씨의 「레시피」 외 4편. 박마리아 씨의 「비릿한 엄마 냄새」 외 4편.

첫 번째 작품 「간이역에 사는 사람들」 외 4편을 낸 서호석 작가는 시적인 공력이 만만치 않은 분으로 전편의 수준이 고르고 독립적으로 완성되어 있어 신뢰가 갔다. 시적 대상을 직시하면서 짐짓 흥분이나 격앙이 아닌 차분한 대응으로 맞서는 유연성에 대해서도 호감이 갔다.

두 번째 작품 정운균 씨의 「레시피」 외 4편은 매우 신선하고도 젊은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었다. 얼핏 보면 문장이 덜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작가의 특성이라 하겠다. 문장이 툭, 끊어지는 그 부분에서 반전이 일어나고 감정의 선이 바짝 긴장한다.

세 번째 작품 박마리아 씨의 「비릿한 엄마 냄새」 외 4편은 시적 대상을 다루는 솜씨가 섬세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살가운 정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어투 또한 정갈하고 맑아서 시를 읽는 사람 마음을 자연의 한복판이나 인생의 현장으로 데리고 가 준다.

하지만 세 번째 작품은 몇 가지 사소한 흠결이 있어 아쉽게도 이번 당선작에서 제외됐다.

응모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두루 좋은 글을 많이 읽었음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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