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채 폭락, 英 연기금 LDI 상품 위기로 번져
치솟는 금리 채권가격 폭락, 국내 증권가 실적 우려
시급해진 채권안정펀드 조성…추가적 대책도 절실

[현대경제신문 최윤석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자이언트 스텝의 영향은 주식시장을 넘어 채권시장에까지 미치고 있다. 지난 28일 영국 리즈 트러스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시작된 글로벌 채권 위기는 현재 증권투자업계에서 불고 있는 채권투자 열풍과 하반기 실적에서 마이너스를 이끌고 있는 채권 가격 손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편집자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현지시간 14일 기자회견에서 법인세율 인상과 쿼지 콰텡 재무부 장관 경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현지시간 14일 기자회견에서 법인세율 인상과 쿼지 콰텡 재무부 장관 경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치솟는 금리·폭락하는 채권가격

지난달 23일(현지시간 기준) 영국 리즈 트러스 내각은 총 450억파운드(약 70조5,000억원) 규모 감세안을 내놨다. 감세안에선 이전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법인세 인상 계획 철회 및 소득세 기본세율 인하 등의 내용이 담겼고 영국 정부는 감세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감세안 발표 당일 영국 외환시장에서 달러·파운드 환율은 폭락해 전일 대비 3.7% 하락한 1.0849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영국 국채에 대한 국제시장의 매도도 이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5년 만기 영국 국채 금리는 0.5%포인트 올라 1991년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에 대한 여파로 지난달 28일 영국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감세안을 철회한다고 밝혔으나 영국 국채 가격 하락과 이자율 상승은 이어져 영국 연기금이 대량 투자한 LDI(부채연계투자)상품의 심각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이어졌다.

사태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총 650억 파운드(약 100조원), 하루 50억 파운드(약 8조원) 규모의 긴급 장기국채 매입 계획을 밝히고 15일 쿼지 콰텡 영국 재무부 장관의 경질과 새로 부임한 제러미 헌트 신임 장관이 감세안 철회와 증세를 발표하고서야 일단락됐다.

문제가 된 것은 영국 연기금이 대량 투자한 LDI상품이다. 영국의 연기금 운용사들은 파생상품의 일종인 LDI를 통해 영국 국채에 대해 3~4배 레버리지 투자를 해왔다. 2021년 기준 LDI에 투자된 자산은 총 1조 6,000억 파운드(약 2,5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감세안 발표가 사실상 영국의 국채 발행 증가로 해석되면서 장기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국채 가격이 급락해 일부 운용사에서 마진콜이 발생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여의도 증권가 <사진=현대경제신문>
여의도 증권가 <사진=현대경제신문>

증권가 채권손실 불가피

지난 3분기 증권업계 채권 대차거래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권사들이 금리인상에 따른 채권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당분간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예상돼 증권사의 채권 손실은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 30일 기준 채권 대차 잔액은 143조 4,708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올초 105조 1,216억원에 비해 9개월 만에 38조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

채권 대차거래는 고평가된 채권 현물을 미리 빌려서 매도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국채 선물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채권 대차거래가 증가한 것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채권 가격손실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기관 거래가 늘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올해 초 연 1.855%이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26일 기준 4.5%대를 찍은 후 10월 초 4.2% 선까지 내려왔다. 같은 기간 10년물도 연 2.325%에서 연 4.5%대까지 뛰었다가 4.1%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채권 금리 인상은 증권사 실적에도 영향을 준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2022년 2분기 증권·선물회사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채권 관련 손익은 금리 상승 여파로 1조 412억원 손실을 기록해 1분기 1조 3,651억원 손실에 이어 대규모 손실을 이어갔다.

증권업계의 대규모 채권 대차거래 증가에도 불구하고 치솟는 금리로 인한 채권 가격의 하락은 3분기 증권업계 실적 저하의 주요한 원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지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증권사들이 채권 평가손실에 대비해 헤지 전략을 세웠지만 현재처럼 단기간 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며 “PF 부문 역시 신규 대출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향후 미국 연준은 연방금리가 물가를 상회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내년 1·4분기에 연방금리가 소비자물가를 상회할지 여부를 주목해야 하고 이에 따라 미국 금리 인상은 4.75%에서 5.0% 수준에 까지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예금금리 상승으로 주식의 상대적 매력이 줄면서 거래대금이 줄었고, 채권금리 급등의 영향으로 트레이딩과 상품 손익 악화가 지속될 것"이라며 "9월 시장 변동성 확대로 기대보다 부진한 실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지시간으로 14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청사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지시간으로 14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청사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급해진 채안펀드 재가동

이 같은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 우려가 커짐에 따라 금융당국은 증권시장 안정펀드(증안펀드)에 이어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 재가동도 추진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20조원 규모의 채안펀드 재가동을 중이다. 이와 함께 내년 시행 예정이었던 외국인의 국채 투자에 대한 이자·양도소득 비과세도 17일 조기 적용하기로 했다.

추경호 기획재재정부 장관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및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 회의 동행기자단과 간담회에서 외국인 투자 유도를 위한 세제 혜택에 대해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계속되고 있어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외국인의 국채 투자 이자·양도소득 비과세 조기 시행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움직임은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올리는 두 번째 빅스텝을 단행한 가운데 미국 물가 지표가 악화되는 등 금리 상승 기조가 이어지면서 회사채 시장 투자심리가 빠르게 위축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당국은 10조원 규모의 증안펀드도 이달 중 가동 준비를 완료할 방침이다.

앞서 채안펀드는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 10조원 규모로 조성됐다. 회사채 수요를 늘려 채권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서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20조원을 최대 목표로 다시 조성됐다. 당국은 채안펀드 조성 후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지원하는 ‘캐피털 콜’ 방식으로 3조원가량을 모집해 투입했고 현재 약 1조 6,000억원이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채안펀드가 재가동되면 이 돈으로 우선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을 재개하고 부족할 경우 산업은행을 비롯한 은행, 증권사 등이 추가 출자하는 재약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신용등급 AA- 기업의 3년 만기 무보증 회사채 금리는 연 5.352%를 기록해 연초(연 2.46%) 대비 두 배나 뛴 상황이다.

이 같은 증권업계는 금융당국의 채안펀드에 시장은 안도하면서 시장 불안 심리안정에 필요한 추가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시중금리의 급격한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회사채, 기업어음의 매입 여력을 기존 6조원에서 8조원으로 확대하고, 채안펀드로 조성된 여유 재원 1조 6,000억원으로 회사채, CP 매입을 우선 재개하기로 했다"면서 "채안펀드 재가동으로 정책지원 의지 확인과 시장불안심리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시장은 빠른 안정을 위해 채안펀드 규모 확대를 원하고 있으나, 정책의 우선 순위 입장에서 먼저 단기자금 시장 안정을 위한 증권사 유동성 공급과 일반 기업 CP 매입이 우선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채안펀드를 재가동하면 최소한 지금 냉각된 투자 심리를 완화하는 지원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지금은 국채시장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시장 추세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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