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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장편소설] 김소월 전기-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_1장 스승 김억과의 만남(2)
이정  |  leejungm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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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9.19  15: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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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스승 김억과의 만남

 

2

 

안채를 가운데 두고 양 옆에 사랑채와 헛청채를 거느린 디귿(ㄷ)자 형 집의 마당 위에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대문 옆 가죽나무의 앙상한 가지 위에서 까치 서너 마리가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정식에게 기쁜 일이 닥친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큰 가방을 들고 마당 가운데에 선 정식의 앞자락 위로 늘어진 털목도리를 어머니가 추슬러 주었다.

“네 애비 경우를 봐서라도 행동거지를 각별히 조심하거라.”

정식이 작별인사를 하자 할아버지가 당부했다. 정식을 전송하러 나온 할머니와 어머니, 첫째 작은어머니 모두 제발 할아버지 말대로 해 주기를 바라는 당부의 눈빛을 보냈다. 아버지는 울타리 곁에서 수챗구멍을 들여다보면서 히쭉히쭉 웃고 있었다. 엉덩이까지 흘러내린 바지춤을 한 손으로 붙잡고서. 어머니가 틈틈이 매무새를 고쳐 줘도 이내 그 꼴이 되었다. 아버지는 오래 전 경부선 철도공사를 하는 일본인 십장에게 큰 봉변을 당했다.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사람들한테 여러 차례 그 이야기를 들었다.

정식을 낳은 지 열이레 되는 날, 아버지는 정식을 보고 싶어 구성의 처가로 향했다. 첫 아이는 처가에 가서 낳는 것이 이 지방 풍습이었다. 떡과 미역, 장닭을 말 잔등에 싣고 머슴을 앞세워 굴고개 마루턱을 넘었다. 골안개가 자욱했다. 바닷가에 선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 안개를 풀풀 날렸다. 저만큼 아래 산비탈을 깎은 곳에 적잖은 수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말로만 듣던 경의선 부설공사 현장이었다. 거기를 지나가기가 꺼림칙했다. 공사판에서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반반씩 섞여 일했는데, 일본인들의 행패가 극심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머슴은 그런 소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고삐를 당기며 앞장서 갔다. 노동자들은 대여섯 명씩 조를 이루어 곡괭이로 바위를 부수거나 들것에 돌을 담아 나르는 중이었다.

공사판을 조금 에도는 콩밭 샛길을 택했다. 골짜기에 비해서는 옅으나마 안개가 어느 정도 가려 주는 것이 다행이었다. 공사 현장을 막 벗어나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말 잔등에 실은 장닭이 날개를 퍼덕이면서 꼬꼬꼭꼬꼬댁 울었다.

“저 개자식 좀 봐.”

일본인 십장이 고개를 쳐들고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새로 닦는 철길을 조선인이 먼저 건넜다고, 재수 없게 장닭이 울었다고 성이 발끈 났나 보았다. 그 소리를 신호로 노동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앞을 가로막았다. 쉴 틈을 찾던 차에 잘 됐다는 듯 욕설을 퍼부으며 아버지와 머슴을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찼다. 어떤 자는 곡괭이 자루를 휘둘렀다. 어떤 자는 삽자루를 휘둘렀다. 하도 여러 사람이 덤벼드는 통에 아버지와 머슴은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잠깐 사이 옷이 갈가리 찢기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내 네 활개를 펴고 땅바닥에 뻗었다. 말은 놀라 펄쩍펄쩍 뛰며 달아났다. 말 잔등에서 굴러 떨어진 떡이며 과일, 미역들이 철길 위에 나뒹굴었다. 장닭은 저만큼 길섶으로 날아가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꼬꼬댁꼬댁 울었다. 와중에 노동자들이 흩어진 떡과 과일을 주워 먹었다. 아버지와 머슴은 한참 만에야 간신히 몸을 수습했다. 머슴이 산비탈 버드나무숲에 숨은 말을 찾아왔다. 가다 쉬다 반복하며 저녁참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행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철길공사에 노동자가 부족하자, 일본인 십장들은 마을을 돌며 젊은 남자들에게 부역에 나올 것을 강요했다. 남산 옥녀봉 아래 가장 큰 집인 정식의 집에도 십장 두 명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그 중 한 명이 자신을 폭행한 십장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일본인 십장 또한 아버지를 제꺽 알아보았다. 이 놈이 그 재수 없는 놈이라면서 대뜸 아버지의 멱살을 낚아채 마당에다 메어꽂았다. 제 눈 아래에 사람이 없는 양 굴었다. 그렇지 않아도 증오심이 활활 타오르던 터였던 아버지는 물푸레나무 몽둥이를 찾아들고 맞섰다. 그때 어머니가 뛰어와 아버지 앞을 가로막았다. 그 틈을 타 십장 둘이 합세하여 몽둥이를 빼앗았다. 골병을 치료 중이던 아버지는 제대로 덤비지도 못하고 붙잡혔다. 십장 둘은 아버지를 나무에 묶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징이 박힌 구둣발로 마구 찼다. 닭장 속에 들어온 늑대처럼 난폭했다. 아버지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집에는 마침 여자들만 있었다. 나서서 울며불며 말렸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 뒤 아버지의 골병은 울화까지 겹쳐 큰 병이 되었다. 우두커니 먼 하늘을 바라보며 소일했다. 어쩌다 정신이 들면 주막에 나가서 폭음을 했다. 차차 보통사람의 행동거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마을사람이면 누구나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다가와 정식의 손을 모아 쥐었다.

“이젠 배우지 않으면 상놈이 되는 세상이 되었단다. 가세가 예전만 못해도 할아버지가 너를 상급학교에 보내겠다는 뜻을 세운 것이니 할아버지 당부말씀을 명심하거라.”

정식은 할머니 뒤에 선 가족들에게도 고개를 숙여 작별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수챗구멍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정식은 대문을 나섰다. 어머니가 정식의 일용품이 든 보퉁이를 들고 뒤따랐다.

동구 밖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 다다랐다. 정식은 어머니로부터 보퉁이를 받아 들었다.

“너는 장손인데다 외아들이다.”

어머니는 그 한 마디 안에 하고 싶은 말이 다 함축되어 있다는 듯 다른 말은 보태지 않았다. 사실 정식이 오산학교에 들어가기로 한 뒤부터 이미 당부의 말을 많이 했다. 정식 밑으로 딸 인저(金仁姐)가 있지만, 아버지 정신이 예사롭지 않자 풍습대로 외아들인 정식에게 각별히 마음을 쏟았다. 그래도 자식과 처음 작별을 나누는 아쉬움과 걱정 때문에 하고 또 해도 미덥지 않을 당부의 말을 애써 참는 눈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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