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제조·유통사 민사소송 3년만에 변론
제조사 전임 대표 형사재판도 8월 말 재개
사참위 권고 나오고 행정소송 진척된 영향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모임 관계자들이 지난해 3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레킷벤키저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성현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모임 관계자들이 지난해 3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레킷벤키저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성현 기자>

[현대경제신문 성현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인한 민·형사 재판이 재개됐다.

이 사태를 조사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권고안이 나오고 제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 간 행정소송도 진행된 영향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300여명이 국가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사 19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3차 변론을 다음달 25일 열 예정이다. 2019년 9월 2차 변론 이후 거의 3년여만이다.

주요 피고는 옥시레킷벤키저, 애경산업, SK케미칼, 롯데쇼핑, 홈플러스, 신세계, GS리테일, 아성다이소 등이며 소송금액은 112억원이다.

또 유해물질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해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 대한 항소심 공판도 8월 25일 열린다. 이 역시 지난 3월 이후 처음 열리는 재판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 인체 유해물질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가 유통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만든 사건을 말한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피해자만 4291명에 달하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에서 인정한 피해자는 7072명에 이른다.

손해배상 소송의 3차 변론은 사참위가 지난달 10일 활동을 종료하고 권고안을 낸 뒤 잡혔다.

사참위는 활동 종료를 하루 앞둔 지난달 9일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8건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사참위는 희생자에 대해 국가 차원의 추모사업을 실시하고 중대 재난을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위원회를 설립하라고 권고했다.

또 재난피해자 알 권리 보장과 정보·소통 개선, 부처 간 안전정보 소통 체계 구축 등 방안도 권고안에 포함했다.

아울러 가습기살균제 피해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공소시효 연장, 피해 입증책임을 기업으로 전환, 조속한 피해판정 실시, 국가 차원의 독성감시를 위한 국가중독센터 도입, 화학물질 관리 및 정보 제공 체계 구축 등이 권고안에 담겼다.

앞선 3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SK케미칼·SK디스커버리·애경산업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공정위가 사실상 승소한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이 판결은 SK케미칼과 SK디스커버리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취소소송 상고심과 애경산업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같은 취지의 행정소송이다. 대법원은 4월 17일 두 사건을 모두 공정위 승소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특히 대법원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은 당초 가습기 살균제 용기에 ‘미생물 성장 억제 성분’, ‘피톤치드 성분에 의한 상쾌한 기분과 산림욕 효과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등의 부당한 표시를 해 제품을 생산·유통해왔다”고 언급, 제조사들의 허위·과장광고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은 9월 1일 1차 변론이 예정돼 있으나 대법원이 공정위의 손을 들어준 만큼 SK케미칼과 SK디스커버리, 애경산업은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가습기 살균제 라벨에 유해 물질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잘못으로 패소하게 될 전망이다.

한편,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SK 케미칼 전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는 지난해 1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CMIT와 MIT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