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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사건 그 후] 쌍용그룹 비상과 몰락거물 정치인 김성곤 설립, 재계 5~6위권 대기업으로 성장
김석원 등장과 함께 중흥기 맞아, 자동차 과욕에 그룹 해체
김영 기자  |  divazero@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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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03  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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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쌍용건설

[현대경제신문 김영 기자] 의류제조업체 세아상역의 모회사 글로벌세아가 쌍용건설 인수를 추진 중이다. 쌍용차 인수전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조만간 KG그룹과 쌍방울 중 한 곳이 쌍용차의 새 주인이 될 전망이다. 그룹 해체 후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버텨온 이들 두 기업이 다시금 비상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과거 삼성·현대 등과 함께 한 시대를 대표했던 쌍용그룹의 흥망성쇠 사(史)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자

김성곤, 쌍용양회 창업

쌍용그룹 창업주는 정치인으로도 잘 알려진 고(故) 김성곤 회장이다.

대구 달서구 출신으로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김성곤 회장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해방 직후인 1948년에는 고려화재해상보험(현 흥국화재)과 금성방직을 설립했고 이후 동양통신을 창간하고 연합신문을 인수하는 등 언론사업도 펼쳤다. 후학양성에 대한 관심이 컸던ㅇ 그는 1959년 국민대학도 인수했다.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던 김성곤 회장이 처음 쌍용이란 이름을 쓰게 된 건 1962년 쌍용양회(현 쌍용 C&E)를 설립하면서부터다. 회사 이름에 쌍용이 들어간 배경과 관련해선 쌍용양회 영월공장이 영월군 쌍용리에 있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국내 첫 레미콘 사업을 진행했던 쌍용양횐은 건설붐과 함께 급성장했고 이후 김성곤 회장은 산하 회사를 그룹으로 묶고 사명 또한 쌍용으로 하나둘 변경했다.

쌍용그룹 성장과 관련해선 김성곤 회장의 정치 이력 또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정경유착이 비일비재하던 시절 김성곤 회장이 여당의 유력 정치인으로서 정·재계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김성곤 회장의 정계 활약상을 살펴보면 1958년 당시 여당인 자유당 소속으로 민의원에 당선된 김성곤 회장은 당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4.19 혁명으로 잠시 정계를 떠나야 했으나 5.16 군사쿠데타와 함께 돌아왔다.

김성곤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이자 박 전 대통령이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알려진 박상희 씨와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사이였고 이에 박정희 정권이 등장하자 그 또한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핵심 정치인으로 활약할 수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을 맡아 정계와 재계 사이 가교역할을 수행하며 정·재계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화당 대표 4인방 중 한 명으로 활약하던 김성곤 회장의 위세는 1971년 발생한 10.2 항명 파동 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와 일부 여당 의원들이 청와대와 상의 없이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국회에서 가결 시켰고 그로 인해 박 전 대통령 눈 밖에 나게 된 것으로 이후 김성곤 회장은 강제 정계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정계에서 물러난 김성곤 회장은 그에 따른 스트레스 탓인지 폭음을 일삼았고 건강이 빠르게 악화, 1976년 별세했다.

   
▲ 김석원 쌍용그룹 2대 회장

김석원 시대, 짧은 중흥기 후 몰락

김성곤 회장 뒤는 장남인 김석원 회장이 이었다.

만 29세 젊은 나이에 그룹 회장직에 오른 김석원 회장은 여러 신수종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룹 사세를 빠르게 넓혀 나갔다.

김석원 회장은 쌍용중공업(현 STX)과 쌍용종합건설을 설립했고 석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효성증권(현 신한금융투자)과 동아자동차 인수에도 성공했다. 이 중 동아자동차는 삼성과 경쟁 끝에 힘겹게 얻어낸 결과물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알짜 사업체가 늘며 쌍용그룹 외형 또한 급성장했다. 1997년 IMF 직전에는 그룹 총 매출이 25조원에 달했으며, 재계 서열 또한 현대·삼성·대우·LG에 이어 SK와 5~6위를 오갔다.

쌍용그룹 중흥을 이끈이가 김석원 회장이었으나 몰락 또한 그의 손에서 이뤄졌다.

외환위기 시절 문을 닫은 국내 대기업들이 다 그랬듯이 쌍용 또한 문어발식 경영에 더해 과도한 부채로 위기를 자초했다.

특히 김석원 회장이 그 무엇보다 심열을 기우려 육성했던 자동차 사업의 지속적인 부진이 그룹 붕괴를 초래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중·소형차가 주를 이루고 있었음에도 쌍용차는 대형 SUV와 세단에 집중했고 이는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다. 판매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에도 김석원 회장은 신차 생산을 위한 투자를 감행했고 결국 그룹 전체가 부실의 늪에 빠졌다.

결국 김석원 회장은 그룹 해체 직전에야 삼성과 대우 등에 쌍용차 매각을 타진했으나 외환위기 위기 속 마땅한 인수처는 등장하지 않았고 그렇게 쌍용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쌍용그룹의 모태가 된 쌍용양회(현 쌍용 C&E)

쌍용그룹이 해체된지 20여년이 지났으나 현재도 재계에선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쌍용차와 쌍용건설 외에도 GS글로벌(옛 쌍용)과 S오일(쌍용오일) 등 여러 과거 쌍용그룹 계열사들이 각자 분야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과거 쌍용그룹 몰락이 회사 자체의 문제보다 경영진의 판단 미스 때문이란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한편 김성곤 창업주의 차남이자 김석원 회장의 동생으로 1995년 형이 정계 진출할 당시 잠시 그룹 총수를 맡기도 했던 김석준 회장의 경우 그룹 해체 이후로도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여전히 쌍용건설 대표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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