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시선으로 본 경제 이야기

유휘량 작가
유휘량 작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서부 개척을 통한 땅의 발견은 세계사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후에 지구의 모든 곳을 정복한 인류는 우주까지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쉬운지, 인류는 결국 과학 기술로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땅을 ‘만들고’야 말았다. 메타버스는 잘 알다 시피 3차원의 가상 세계로, 그 안에서 사회,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가상공간을 뜻한다.

문제는 메타버스의 시장 가치는 기존의 과학 기술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타버스의 실질적 가치는 사람들이 메타버스 공간 속에 들어와 ‘시장’을 형성해야만 그 경제적 가치가 발생한다. 결국 메타버스는 사람이 없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황야가 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메타버스의 독특한 경제적 위치는 과학 기술이 교환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학 기술이 만든 공간 속에 인간이 활동해야만 경제적 가치가 발생한다는 독특한 구조에 있다. 따라서 메타버스의 과학 기술 자체만으로는 경제적 가치는 제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메타버스의 특징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과학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고 하더라도 메타버스는 우리가 기존의 3D 게임이나 심지어 체스의 원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간은 늘 추상적 공간을 생각했으며 그것을 물(物)화시키려는 욕망이 있다. 다시 말해 이 특징은 우리는 메타버스가 현실의 공간과 다르다고 믿는 것뿐이지 그 기본적 토대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로, 인간의 ‘육체성’의 문제다. 아무리 메타버스가 발달하더라도 메타버스는 우리의 육체성에 국한 받는다. 우리가 게임을 하루 종일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육체는 생체적 활동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우리 육체의 생체활동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메타버스가 아무리 현실적인 공간이 되더라도 우리는 육체의 한계로 인해 현실의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덧붙여 하나의 의견을 더 해보고자 한다. 메타버스 기술이 발전하여 생체적 기능까지 해결해준다면 우리는 이중의 공간이 생기는 샘인데, 문제는 이 이중의 공간(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는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의 에너지를 늘 필요로 하기에 누군가는 그 현실 세계에 결착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메타버스는 또 다른 현실 이중세계가 될 수 없다.

셋째로 두 번째와 관련이 깊은데, ‘디바이스’의 문제다. 메타버스에 사람들이 빠져들려면 엄청난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사회·문화 활동을 반드시 메타버스에서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을 매혹하여 메타버스 공간에 머물게 하려면 현실적 감각들이 필요한데, 현재의 기술로는 인간의 감각들을 디바이스가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메타버스의 공간에 머무르는 사례가 있다면 그 메타버스에서 활동이 현실에서 어떤 가치, 자본으로 변환될 수 있을 때는 예외다. 게임을 해서 아이템을 팔 수 있는 시장 활동이 현실과 결부되어 있을 때만 메타버스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넷째로는 개인의 다중화이다. 현실과 메타버스의 큰 차이는 바로 이제 하나의 개인, 하나의 단독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한 사람마다 하나의 개체, 캐릭터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여러 캐릭터들을 만들 것이며 그만큼 여러 캐릭터들이 메타버스에 존재할 것이다. 이제 인간은 하나의 영혼이 아닌 다수의 영혼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어떻게 보면 경제적 활동을 하는 주체가 많아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물리적 한계는 반드시 존재하며 결국 가상 세계의 뒤편, 즉 현실 세계에 캐릭터를 운영하는 ‘하나의 인간’에게 자본 활동의 가치가 달려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봤을 때 메타버스의 경제적 가치는 과학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활동’에 있는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땅에 인간이 없으면 경제적 가치는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결국 인간의 활동이 이뤄지느냐 이뤄지지 않느냐에 따라 메타버스의 시장 가치는 높아질 수도 낮아 질 수도 있다.

과학 기술과 경제는 분명 상보적인 관계에 있는 것은 맞지만, 메타버스의 독특한 위상은 인간 활동을 위한 물적 토대라는 점에서 인간 없이는 무의미한 기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철학자 지젝이 자본에 대한 의미 발생이 인간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믿고 행위할 때 발생한다고 언급한 점은 메타버스에서도 적용된다. 따라서 아직 메타버스의 미래가치에 대해 쉬이 판단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유휘량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 석사 졸업, 현대문학 현대소설 전공 박사수료

지금까지 시를 꾸준히 써왔고,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부마항쟁기념재단, 숲과나눔재단,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책임자로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으며, 통일인문학단, 통일부, 국방부, 국가인권위원회, 한국정신문화재단 등에서 논문으로 여러 차례 수상을 하였다. KCI에 논문을 다수 게재하였으며, 공저로 <몸의 미래 미래의 몸>이 있다. 현재 한겨레교육에서 문학, 정신분석, 철학 등 문예창작에 필요한 이론들을 강의하고 있으며 2022년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에 시부문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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