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은 사고로 앞발 하나를 잃은 어린 고양이였습니다. 한여름 수유동의 4.19 민주묘지 광장 근처에서 구조됐습니다. 발견 당시 앞발은 뭉개져 있고 위생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메밀을 식구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보살폈습니다. ‘메밀’은 그 아이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 투표로 정한 이름입니다. 메밀은 같이 사는 여러 고양이 중 가장 많이 먹고 가장 열심히 뛰며 누구보다 건강하게 지냈습니다.
두 달 뒤, 메밀이 죽었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추석 연휴였습니다. 아주 잠깐 눈을 뗀 사이 사료 포대를 뜯고 놀다가 올 한 가닥이 풀려나왔고 그게 점점 길어져 메밀의 배에 감겼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죽은 고양이를 맨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저는 메밀이 가장 건강했을 때와 죽었을 때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화장하러 다녀온 날만을 썼습니다.
메밀을 떠올리면 미안한 일들을 꼭 먼저 말하고 싶어집니다.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신 분에게 죄송합니다. 좀 더 다정하고 기쁘게 받을 걸,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에게 미안합니다. 제가 좀 더 성실하고 부자였다면 보다 맛있고 건강한 걸 사주고 지치도록 놀아주고 좋은 병원에도 데려갈 수 있었을 텐데, 어제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뱉었던 험한 말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잊지 않고 매일 생각합니다. 모두 정말 미안했습니다.
나랑 지내는 게 늘 불안했던 숑. 당신이 화를 낼 때만 나는 겨우 자랐습니다. 오래 괴롭혀서 미안합니다. 아침 일찍 대문 앞을 청소하는 풍경을 남겨주어서 고맙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만 전화하는 저를 매번 받아주시는 혜원 선생님, 영광 선생님, 목형에게도 감사합니다. 배운 건 다 잊었고 어느 한구석을 닮는 것도 실패했지만, 표정이나 목소리를 떠올리기만 해도 하루가 더 살아집니다.
그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집과 밥을 고를 수 있는 생활은 대부분 고개엔마을과 성북 친구들 덕에 얻은 것입니다. 특히 시늉만 하는 제 시를 진짜라고 계속 믿어준 미냉. 사실 저는 이걸 핑계로 자주 놀거나 잠을 잤습니다. 좀 더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아파도 무너지지 않는 이랑과 아플 줄 모르는 상만, 경청가 잉지, 반짝이는 상언니. <못배운것들>, 고주망태 소영. 당신들이 모두 나의 안전망입니다.
부모님에겐 아직 전하지 못했습니다.
잘못은 꼭 먼지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꾸 쌓이니까,
21년 12월 24일 추일범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