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휘량

스케치

-기린의 생태계

 

 

유휘량

 

우린 목이긴 걸

 

기린이라 불러

 

하필 넌 목이 길구나.

 

누가 널 그리고 있는 걸 아니?

 

그림자를 졸여 만든 잉크로

 

괜찮아.

너는

 

그리는 동시에

사라지는 감각이 좋았다.

 

따듯한 색은 대체로 몸에 좋지 않았던 그때

 

핏줄엔 면역이 없어서, 핏줄에 묶인 몸이 싫다고

목에 핏줄 세우며

 

새가 새를 잡아먹는 건 이상하다. 완벽한 새장을 만들기 위하여 가시밭에 두 손을 넣어두고 돌아왔다. 그 두 손은 그림자놀이를 통해 새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럼에도 기린이 새를 입에 물고 불타는 머리를 흔드는 걸 보면 이상하다. 나무에 열리는 아가미는 싫어하면서 하루에 새 하나씩 꼬박꼬박 먹는 건 이상하다.

 

몸을 벗고 남겨진 자신을 봐.

 

복도 같이 긴 목에서 빠져 나온

 

 

새를 먹는 게 아니었구나. 기린은, 몸집에서 그냥 목이 길뿐이었다. 그래도 입에 새를 넣고 빼는 것은 이상하다. 새가 거기에 거주하는 것도 이상하다. 기린들은 둥글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뭉쳐 있구나. 자기들끼리 새들을 주고받으면서…. 기린은 왜 목이 길지. 새들은 기린을 빠져나가면서 어떤 그림자를 버리고 가지. 기린은 소리 내지 않고 새를 보여준다. 새가 물고 온 아가미는 받아준다. 기린 속의 웅덩이가 너무 깊어서 목이 긴 걸까. 있지.

 

나, 사실 네가 쟤를 잡아먹는 걸 봤어.

 

유독 목이 긴 새였잖아. 걔는 한 번도 나온 적 없었어. 거기서 죽으면 누가 묻어줘? 가끔 새가 새를 물고 기린 밖으로 나가는 걸 보았어. 어쨌든 걔는 고독사는 아니길 바라지만. 기린 속의 새들은 둥지를 뒤집어 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린다는데, 속이 뒤집어 지는 느낌은 어떤건지. 나는 몰라. 나는 목이 짧고 기린은 아닌데,

 

가끔,

가끔 말이야.

 

씹어 먹고 싶지 않니, 새들 말이야. 입가에 머무르면 달콤한 금속성의 눈 맛이 나잖아. 입안 한가득 새들을 내보내지 않고 와득 씹고 싶을 때. 있지 않니. 웅덩이가 말라가도 아가미들은 나무에서 계속 열릴 거고. 묶인 핏줄을 하나 하나 풀다보면, 새들의 둥지는 뭐로 만들까.

 

문 열어.

 

금속성의 눈이 내리잖아.

세상은 자꾸 굳은 물감 같잖아.

 

새알이 든 둥지를

머리 위에 올리면

액체의 금속이 흘러

 

자,

 

이제 기린이라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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