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비유로 말하는 이유 장자님은 우언(寓言)을 즐기셨죠? ‘내 글에서 열에 아홉은 우언이다’하셨는데.그랬지. 그래. 내가 뭐라 했더라?내 글에는 열에 아홉이 우언이고, 열에 일곱은 중언(重言)이며, 일상적으로 쓰는 치언(巵言)으로 대세에 맞춘다.아, 좀 쉽게 말해보게. 우언이 뭐고 중언은 무엇인가. 또 치언은 무엇이고.장자님이 못 알아듣는 건 아니시겠죠?읽는 사람들 생각해서 묻는 거네. 그렇게 문자를 써서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말은 단지 ‘나 잘났소’하는 사치품에 지
#33. 길 (道) 길을 묻는 신돈에게 신(神)이 말씀하셨다.- 그걸 몰라서 묻고 있느냐?신돈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 아니, 자비로운 신께서 역정이라도 내시는 건가요?- 그렇다마다. 너 같으면 어떻겠니?신돈은 잠시 말을 잃었다. 역지사지다. 나에게 누군가 길을 묻는다면?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나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 무슨 말이든 대답하려고 애쓰겠지. 그런데 다시 길을 묻는다면? 그러면 또 다른 식으로 대답을 해주겠지. 다음날 또 다시 길을 묻는다면? 나는 고민에 빠질 것이다. 내 대답이 부족했던 것일까. 저 인간의 이해력이 부족
#32, 얼굴을 읽는 사람 정(鄭)나라에 신들린 무당이 있었다. 이름은 계함이다. 그는 관상에 도가 터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가 죽을 사람인지 살 사람인지, 복 받을 사람인지 화를 당할 사람인지, 수명의 길고 짧음까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미래에 화를 당하거나 죽을 날짜까지 귀신처럼 알아 말해주니 사람들은 그가 무서워서 보기만 해도 피해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열자(列子)는 도를 찾는 사람이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소문을 듣고 계함을 찾아가 만나보더니 족집게 같은 그의 능력에 매료되었다. 열자에게는 호자(壺子)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31, 생각이 너무 많으면 실패한다 - 글 쓰는 사람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 말해보게. - 글이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때, 그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위하여 그것에 깊이 천착하다 보면 작가에게는 그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됩니다. 스스로 식상하다는 느낌에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 이것은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큰 방해가 됩니다. 쓰다가는 지우고, 쓰다가는 덮어두고, 쓰다가는 포기하는 일이 일상이 되거든요. - 오호. 정말 큰 방해가 되겠군. 처음 영감이 떠올랐을 때, 회의가 들기
#30. 지구촌이 왜 이래? “A deadly virus is spreading from state to state and has infected 26 million Americans so far. It's the flu” (1월30일, 미국 CNN)- 이 뉴스를 보고 오싹해지네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미국 전역에 퍼져 2천6백만 명이나 감염되었다는 얘기잖아요? 중국에선 코로나19, 미국에선 독감, 일본에서는 방사능…. 대체 지구촌이 왜 이래요? - 이거 가짜뉴스 아니야? - 이런!! CNN 홈페이지에 어엿이 올
#29, 타이밍의 효용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저수지 둑에 작은 균열이 생겨 물이 새기 시작할 때 긴급히 작은 모래주머니라도 하나 채워서 막으면 더 이상 갈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게을리 방치해두었다간 균열이 점점 커지고 물 새는 구멍이 넓어져서 둑을 보수하는 데 훨씬 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조차 하지 않으면 아예 둑 전체가 허물어져 무너진 것을 치우고 둑을 다시 쌓아야 하는데, 이때에는 아무 것도 없던 곳에 새 북을 쌓는 것보다 배나 더 힘든 공사가 되고 만다. 비용과 노력면에서 게으름
#28, 찌아유 우한 (加油 武漢) - 민심이 흉흉합니다. - 왜 또? 설 잘 쉬고 나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 - 이런. 모르세요? 코로나 바이러스인지 뭔지가 퍼져서 수백 명이 죽어나가는 판에. - 아하. 그렇지. 총성 없는 전쟁이야. 전쟁도 단시간에 수백명이 죽고 만 명 넘게 쓰러지는 전쟁은 큰 전쟁이지. - 국가의 존립은 민생(먹고 사는 일)과 안보(안전한 생활)가 전부인데, 국방안보나 경제안보 못지않게 위생안보(衛生安保)가 중요함을 새삼 느끼겠어요. - 위생안보라. - 각종 전염병…, - 어디 사람을 해치는 게 전
#27, 내가 나를 모르는데… 몸이 편안하니 손발을 잊고마음이 편안하니 시비도 잊었노라이미 편안하니 편안함도 잊었고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네. 온몸은 마른 나무 같이 아무 것도 모르고마음도 꺼져버린 재처럼 아무 생각이 없어라 오늘도 내일도 몸과 마음이 모두 사라졌다. 39년을 살았고, 또 한 해가 저문다.마흔이면 불혹이라는데, 내가 과연 그리 될까. 身適忘四支 心適忘是非 旣適又忘適 不知吾是誰百體如槁木 兀然無所知方寸如死灰 寂然無所思今日復明日 身心忽兩遺行年三十九 歲暮日斜時四十心不動 吾今其庶幾(백거이, ‘은궤 隱几
#26, 불효막심한 효도 며칠 전 꿈을 꾸었어요. 15년 전에 쓰러져 뇌사상태가 된 친척 형님인데, 이제 날 좀 편히 떠나게 도와 달라 하더군요.이런?쓰러진 당시에 한 번 가보고는 그 뒤로 회생했단 말도, 죽었다는 소식도 못 듣고 지냈는데, 갑자기 꿈에 나타나니 당황스럽더군요.실제로 어떤 상태인데?알아보니 그날 이후 지금까지 식물인간 상태로 병실에 누워 있다더군요. 산소호흡기만 떼면 끝날 상황인데, 그 아들이 반대해서 못한다는군요.십 수 년 동안이나?15년요. 그 사이에 아들과 딸은 청소년기를 지나 30대의 청년이 되었죠. 아버지를
#25. 달과 손가락 “어리석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것과 같이, 문자에 집착하는 자는 나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 (불교경전 )- 그러나 그대여, 너무 더러운 손으로 달을 가리키지 말라. 부패한 손의 악취는 코만 막는 게 아니라 눈까지 어두워지게 한다. - 오오, 시(詩)입니까? 맞는 말입니다. 손이 너무 더러우면 달을 보기 전에 손에 먼저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니 달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건 달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가리킨 자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4, 신인(神人)과 지인(至人) 견오가 연숙에게 물어 이르기를 “접여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는데, 너무 황당해서 사람의 일이라곤 생각할 수도 없더군. 그가 말하기를, 막고야라는 산에 신인(神人)이 살고 있는데 피부는 눈이나 얼음처럼 하얗고 용모는 처녀와도 같이 아름답대. 그런데 곡식을 먹지 않고 바람이나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용을 부려 사해(四海) 밖까지 돌아다닌다는군. 그가 정신을 집중하면 만물을 병들지 않게 하고 해마다 곡식을 잘 익게도 한다는군. 이렇게 허황되니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
#23, 붕정만리(鵬程萬里) “북쪽 바다에 큰 물고기가 있다네. 이름을 곤(鯤)이라 하지. 얼마나 큰지 길이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어. 이 물고기는 바다 속에 있다가 가끔 새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오른다네. 그 새 이름은 붕(鵬)이라 하지. 붕이 물을 박차고 날아오를 때 수면에는 공중으로 삼천리나 솟구치는 파도가 일어난다네. 붕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 높이로 날아올라 남쪽 바다로 날아가는데, 한 번 떠났다가 돌아와 쉬는 것은 여섯 달이나 지나서지.” ( 소요유 편) - 첫머리에 놀랍고 재미있는 얘기가 있더
#21, 시작의 책 ‘빨강머리 홍당무’라는 제목의 동화가 있다. 공부 잘하는 형의 그늘에 치여 부모형제로부터 늘 구박받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는 천덕꾸러기 소년의 이야기다. 주근깨에 꼬부랑머리, 그리 사랑스러운 외모도 아닌 주근깨투성이 소년인데, 본래 못 생겨서 사랑을 못 받은 것인지 사랑을 못 받아 못 생겨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작가 쥘 르나르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활동한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동화작가 등등이다(Jules Renard, 1864~1910).그가 죽은 지 꼬박 110년이 지나갔다. 홍당무 얘기를 하려는
#19, 인간의 시간, 우주의 시간 - 해가 바뀌었습니다. - 뭐 벌써 바뀌어. 난 달력 하나도 못 구했는데? - 에이, 달력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하늘나라 계신 분이. - 하아, 그래도 기념이라는 게 있잖아. 아무리 시간이 관념이라 해도, 그 관념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즐기는 건 결코 무의미하지 않네. 사실 12월 31일이라 해서 다른 날과 다른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렇게 숫자를 부여해놓지 않았다면 밀이야. 그저 새털같이 많은 날들 중 하나지. 하지만 그 날을 한 해의 마지막 날로 정해 의미를 부여하니 지상의 수십억
#18, 오케이, 부머! 조그만 아침 뉴스 하나가 머리를 ‘때앵’ 하고 친다. 정말 종소리가 울리듯이 머리를 때린 것이다. 그 울림이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오케이 부머 (OK, Boomer)!”한 젊은이가(새파란 스물다섯 살이다) 자신보다 인생을 2배도 더 산 선배들을 향하여 이렇게 쫑크를 준 것이다. ‘알았어요, 할배!’ 이런 뉘앙스라고 매스컴은 친절하게 설명을 붙여준다. 아니, 더 나아가 ‘됐네요, 꼰대’ 정도로 해석하는 게 적당하다는 뉴스해설도 많았다. 어디서 일어난 일이냐 하면, 바다 건너 뉴질랜드 국회에서다. 스물다섯 살
#17, 영웅은 없다 진즉부터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이제야 시작해보겠다. 얼마 전 에베레스트 제1봉의 정상에 오른 남자 이야기다.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1백 년 전 영국인의 이름이다. 그는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 총독부 산하의 지질조사국인가 하는 기관의 측량 책임자였다. 지금이야 산 높이(해발고도)를 항공기나 위성에 탑재한 GPS로 측정하지만, 당시에 산 높이를 잰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기술에 속했다. 기원전 몇 세기경에 이집트의 피라미드 높이를 잰 사람도 있긴 했지만, 사막이라는 평지에 서 있는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재는
#16, 시간의 원근법 - 벌써 연말이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 그래 세월 빠르지? 하하하. 장자는 호탕하게 웃었다. - 왜 웃습니까? - 1백년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3천년을 지내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앗, 그렇군요. 세 살배기 어린애가 할아버지 앞에서 세월 타령을 한 꼴이네요. 생각해보니 가소로운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꾸벅) - 죄송하긴. 빠른 건 사실 아닌가. - 어려서 들은 얘깁니다만 그때 선생님 한 분이, (아마 50세 가까이 된 분이셨을걸요)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려서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데, 나이
#15. 세상은 도를 잃었다. 이런 말을 보았습니다. 에서요. ‘세상은 도를 잃었고, 도는 세상을 잃었다.’ 이건 무슨 말인가요.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지.그건 알겠습니다. 도를 넘은 사람들, 정도를 잊은 사람들, 예를 들면 그런 사람들을 따라 순리를 잃어버린 기후환경의 변화. 세상이 도를 벗어났죠. 그런데, 도가 세상을 잃었다니 이건 무슨 뜻입니까. 도는 본래 불변이라면서요. 어떻게 도가 세상을 잃을 수 있죠?세상이 도를 따르지 않으니 도가 세상을 잃는 것이지.아하!이런 건 어떤가. 의사는 환자를 헤아리지 않
#14. 물 흐르듯 흘러라. - 도(道)라는 것은 무엇입니까.장자에게 물었다.-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았나?- 보았지요. 무수히 보았습니다.- 물 흐르는 것이 도다.- 에이, 그것은 자연이지요. 자연이 도입니까?- 바로 맞췄다. 자연이 바로 도다. 노자가 말하지 않았느냐.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처럼 사는 것이 최고의 도리라고.- 아, 그런 말인가요? 그러면 도를 따라 산다는 건 어떤 삶을 말합니까.- 물이 흐르듯 사는 것이지.- 에이, 구체적으로 말해줘 보세요. 뜬구름 잡는 식으로 말고요.어깃장을 놓자 장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12. 부모의 삶은 어떻게 상속되는가 내가 인류의 미래를 묻자 장자는 대답을 회피했다. 미리 다 알면 사는 재미가 떨어질 거래나.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좀 오래 전 일인데,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사람은 왜 사는 거예요?’ 하고 물은 적이 있다.저 나이에 인생의 비밀을 묻다니. 사실은 그 답은 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 부모라면 아이가 묻는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어리석은 의무감 때문에 나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대답을 해주고 말았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도 여러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