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호(號)를 이끌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몫을 하는 부서가 경제관련 부처다. 그 수장이 경제부총리이기도 하다. 그가 내리는 경제관련 판단은 말 그대로 최고의 무게가 실린 최종진단이 아닐 수 없다.그는 말했다. 우리경제현실을 두고 한 말이다."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한다.""이제는 더 이상 고도성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저물가 현상을 좋아할 때가 아니다.""청년실업문제가 무엇보다 심각하다."그가 우리나라경제정책의 최고책임자가 된지는 최근이다. 집권여당의 중진이었던 그가 정부로 자리를 옮긴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수차례의 가격 상승기와 조정기를 거치는 양상을 보이며 전국적으로 연평균 3.8%의 가격 상승세를 보였왔다.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서울, 경기,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과 5대 광역시를 포함한 비수도권 지역 주택가격 간에 시기별로 교차적인 탈동조화 과정이 진행됐다.실제로 2000년대 초중반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수도권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한 반면 비수도권 주택가격 상승폭은 상대적으로 크게 낮았다.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수도권 주택가격 조정이 본격화된 반면 비수도권 주택가
결국 대통령의 입에서 우리나라경제의 현주소를 고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가 불쌍하다’는 진단이 국정최고책임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지난해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한 3개 부동산관련 법안을 빗대서 나온 진단이다. 하지만 크게는 우리가 처한 경제현실 전체에 대한 진단이라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일찍이 대통령은 경제를 부추길 수 있는 이른바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경제관련 법안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을 두고 한 말이다.지난해 정부는 경제 활성화의 첫걸음으로 부동산경기의 점화가 긴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렇게 해서
我能死 爾能報 아능사 이능보나는 죽을 수 있고, 너는 복수할 수 있다 (춘추좌씨전 소공20년)초 평왕이 오사의 두 아들을 소환할 때 형 상이 아우에게 망명하도록 권하며 초 평왕 2년, 왕은 태자 건(建)의 비를 맞아들이기 위해 비무기를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건은 평왕이 채나라에 망명해 있던 시절 국경관리의 딸을 데리고 살며 낳은 아들이다. 태자비는 대단히 아름다웠다. 비무기가 태자비를 영접해 돌아오다가 일행보다 먼저 성으로 돌아와서는 왕에게 말했다. “진나라 여자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왕께서 그녀를 취하시고 태자에게는
◇편집국▲경제부 차장 차종혁.(이상)
컴퓨터를 여는 짧은 시간, 켜놓은 TV에서는 며칠 전 국회청문회를 거친 국무총리 후보자 채택관련 여야투표에 대한 후일담을 쏟아내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에 오르기가 '엄동설한에 발가벗고 얼음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던 언론계출신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이번에도 낙마할 것 같았던 후보자가 용케 여야의 표결을 거쳐 총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미 흉한 꼴 다 보일대로 보인 터라 신임 총리에게 거는 국민적기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마당이다. '낮은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했지만, 바닥에서
同惡相求 如市賈焉 동악상구 여시가언같은 것을 미워하고 같은 것을 소망함이 장사꾼들이 이익을 좇듯 (楚世家, 左氏傳) 초나라 사람들이 영왕을 미워하여 새 왕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결 같았음을 간계에서 군사를 잃어버린 초 영왕이 산속을 헤매다가 죽었지만, 도성인 영도는 아직 어수선했다. 자비(比)가 돌아와 새 왕이 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영왕이 죽었는지 확인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는 또 이런 혼란을 주도적으로 수습할만한 지혜나 용맹도 갖고 있지 못했다. 영왕이 살아있다 죽었다 하는 소문이 들릴 때마다 신하들과 백성들은 우왕
[현대경제신문 최보람 기자] 보험사가 ‘입원일당’ 담보 상품의 중복가입을 허용하고서는 손해를 우려해 소비자들에게 계약파기를 위한 소송을 남발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입원일당은 실손보험이나 건강보험 등에 포함되는 담보로 피보험자가 이 상품에 가입한 후 입원치료를 받을 때 보험사들이 정해놓은 일정 기간 이내에서 입원 일수 당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소비자와 시민단체는 피보험자가 장기치료를 받을 때 보험사가 향후 손해율을 우려해 일방적으로 보험 계약을 파기하는 내용의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반면 보험사들은
余殺人之子多矣 能無及此 여살인지자다의 능무급차내가 남의 자식을 많이 죽게 했으니, 이런 일을 피할 수 있겠는가 초 영왕이 전쟁터에 머물다가 자기 아들이 도성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초나라는 즉위 후 3년간 ‘울지 않는 새’가 되었다가 변신하여 중원을 지배했던 장왕의 치세 이후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제후국이 됐다. 그러나 외부에 맞설 적이 없으면 분란은 안에서부터 일어나는 법이다.장왕과 공왕 강왕이 차례로 나라를 다스린 세월이 거의 70년이었다. 강왕이 죽은 뒤 아들 겹오가 왕좌에 올랐는데, 4년 뒤에 강왕의 형제인 자위가
"일자리가 없다니요? 그거 기업현장을 전혀 모르는 소립니다. 대기업은 몰라도 중소기업 현장에는 일자리가 비어있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단 한번이라도 현장을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연초 인사차 만난 중소기업체 사장의 말이다. 마침 TV에서는 청년실업문제를 놓고 소위 전문가들끼리 굳은 얼굴로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고용문제를 진단하고 있었다."물론 대기업보다는 임금이 적은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일자리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다. 얼마든지 있어요.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우리 회사만 해도
일본계 자금의 한국 금융시장 잠식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일본계 자금이 서민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대부업계와 저축은행업계를 장악한데 이어 증권업계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바이코리아'로 국내에 펀드 열풍을 일으켰던 현대그룹 계열 현대증권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일본 종합금융그룹 오릭스가 선정됐다.오릭스가 현대증권을 인수할 경우 일본계 자금이 국내 증권사를 인수한 첫 사례가 된다.일본계 자금은 1999년 국내 대부업계에 처음 진출한 이후 국내 자본을 압도하고 있다. 2013년 말 기준 일본계 대부업체의 대부액은 4조9
우리나라만큼 이념갈등을 겪는 나라도 드물다. 길게 잡을 것도 없이 이념문제로 멀쩡한 나라마저 반쪽으로 만들어 제각기 앙앙불락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어언 70년을 살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힌 일이다.사회적 갈등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요즘 부각되는 종교적 갈등에서부터 정치적 갈등, 경제적 갈등, 계층 간의 갈등 등등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어쩌면 인간은 갈등 속에서 태어나고 갈등을 겪다가 땅속에 묻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갈등구조를 들여다보면 별것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보잘것없는 이익을 놓고 티격태격하다
先王之樂 所以節百事也 선왕들의 즐거움은 모든 일을 절제하는 데 있었다. 진(秦)나라 의사가 진(晉) 평공의 병은 여색을 절제하지 못해 생긴 것이라면서오나라 계찰이 진(晉)나라에 들렀을 때 재상 숙향에게 “장차 정권이 조한위(趙韓魏) 세 가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삼진(三晋)이라 불리는 세 가문은 뒤에 각자 제후로 독립하여 세 개의 제후국으로 나뉜다. 나라의 분열은 제후의 권력이 허약해져 초래되는 것인데, 진 평공 시기에 그 조짐은 확연해졌다.진나라는 본래 강국이었으므로 별다른 걱정거리
以公權私 有德於民 이공권사 유덕어민공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인심을 얻다 (제태공세가) 제나라 제후가 민심을 잃고 있는 반면 전(田)씨들이 민심을 얻는 이유를 설명하며 제나라의 대부 최저는 제후 이상의 권력을 누렸다. 자기 첩을 농락한 장공을 시해한 뒤에 장공의 이복동생인 저구를 옹립하여 군주로 세우니 그가 경공(景公)이다. 경공은 최저를 우상으로, 경봉을 좌상으로 삼았다. 두 사람은 자기들 손으로 군주를 바꾼 일에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모든 도성 사람들에게서 충성서약을 받았다. 대신인 안영만이 이 서약을 거부하고도 살아남았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등을 통해 대부금에 대한 적정 최고이자율 수준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법정금리상한제도는 금융소비자를 보호함으로써 건전한 경제 질서를 유지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긍정적 기능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됐다.1962년 제정된 이자제한법이 1998년 1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폐지되면서 법정금리상한도 사라졌다.이자제한법이 폐지된 이후 사금융시장이 급격히 팽창하고 고금리와 불법추심으로 인한 서민의 피해가 크게 확산됐다.이에 정부는 2002년 10월 대부업법을 제정하고 금리상한을 70% 내에서
"경제가 대통령말대로만 되었다면 우리나라 벌써 벌떡 일어났을 겁니다. 공약한 반만이라도 지켰어도 이지경은 면했을 텐데, 쯧쯧…"동네어귀 작은 밥집 아저씨는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을 보면서 혀를 차고 있었다."하긴 대통령이 공약대로 해보겠다고 해도 국민의 뜻이 아니라고 우겨대면서 끝까지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데 별수 없지 뭐.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우리나라 국회의원 같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국회가 있는 이상 뾰족한 수가 없지…."밥집아저씨의 관심은 대통령이 하는 말 가운데 오직 경제 분야
不度之人 鮮不爲患 부도지인 선불위환법도를 모르는 사람이 근심거리가 되지 않는 일은 없다 ( 소공 원년) 노 양공의 후계를 정할 때 경망스런 사람을 옹립해서는 안 된다며 대부 목숙이 공자가 열 살 무렵 노나라에서는 양공이 죽었다. 뒤이어 즉위한 태자 또한 석 달 만에 죽었으므로 서자인 주(椆)가 뒤를 이었다. 소공이다.후계를 정할 때 주의 나이는 19세였는데 언행이 경망스러워 대부들이 근심했다. “태자가 죽고 다른 적자도 없을 때는 서얼 가운데서 옹립해야 하는데, 지금 주는 너무 경박하니 적절하지 않습니다. 국상
그의 나이 올해 일흔셋.고향이 남쪽인 그는 빈농의 칠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간신히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진학을 위해서 상경을 한 것이 아니라 취업을 하기 위해서였다.부모가 일구는 농사만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맏이인 그가 벌지 않고서는 여섯 동생들은 학교는커녕 밥도 굶을 처지였다. 그래서 고향사람이 한다는 서울변두리 나무젓가락공장을 찾아 무작정 상경을 했다. 그때가 1960년대 초.어렵사리 찾아든 공장에서 그는 사환 겸 밥떼기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원자재인 나무토막이 쌓인
子之愛人 傷之而已 자지애인 상지이이사람을 아낀다는 이유로 (분수에 넘치는 일을 맡겨) 상처를 입히다 정나라 재상 자피가 젊은 수하에게 고을을 맡기려 하자 대부 자산이 만류하며 정(鄭)나라의 대부 자산(子産)은, 그의 생시에 오나라의 연릉계자 계찰이 찾아와 존경을 표했고 후일 공자(孔子)가 수차례나 칭송한 당대의 현자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유력한 현자라 해도 모국인 정나라가 워낙 약소했기 때문에, 군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울어가는 나라를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일 밖에 달리 없었다. 일찍이 계찰은 노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