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보이는 산 능선 비탈진 곳에엄마는 엄마를 묻고 사는 곳을 떠나지 못했다재개발로 아침에 잠시 다녀가는 햇빛처럼모두가 떠나갈 때도 붙박이처럼 꼼짝 않고그 자리를 버텨왔다그 산 능선 바로 밑에 남편을 묻고그 쪽으로 앉은 엄마의 어깨에비스듬한 산비탈이 생기고 난 후엄마도 그 산이 되었다같은 모습으로 앉아 멀리 보이는그 산을 바라보며엄마얘기를 할 때 가장 빛났던엄마의 눈이 행했던 숲을 더듬는다생의 한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엄마는 무너졌다가 일어섰고그 봉우리에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을 때도피하지 않더니 영원히 그 곳에 잠들었다어느덧
감자밭에서 왜 양을 세니하지만 난 감자들이 갓 태어난 양 같아 못 견디겠는 걸땅속에서 뒤룩뒤룩 살을 찌운 몸뚱이 양수를 터뜨리고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멍한 눈들감자를 양이라 우기면 지글지글 침은 고이지만 조금 참을 만해지는 걸양들은 눈을 뜨자마자 창고로 옮겨지고 엄마는 가축들을 세심히 돌보지어느 날 엄마는 양의 가죽을 벗겨 칙칙폭폭 거무틱한 화덕에 불을 지피네화차엔 맵고 그을린 울음들 세차게 뿜어져 나오지동생은 양의 염통에 소금을 뿌려 대지만 감자엔 포크와 설탕이 필요하고온종일 일을 나갔다 감자 앞에 앉은 식구들가슴에 뜨거운 달
민주의 방(房)들 모든 인간이 차지하는 최초의 방, 어머니.늦은 밤, 재실집 문간방에서 민주의 어머니는 동생을 출산한다. 고통을 어머니에게 떠넘긴 아기의 울음소리가 밤을 가른다. 귀신과 박쥐가 주인인 재실집에서 민주는 동생 진주와 함께 방치되어 자라다 일곱 살 되던 해, 산골 오지마을 능바우로 향한다.능바우로 이사 온 민주네 가족은 마당 넓은 집의 ‘창꼬방’ 한 칸을 빌어 살아간다. 민주는 언니를 따라 산길을 걷고 또 걸어 학교에 다닌다. 가족이 깃든 방 한 칸은 좁지만 능바우 대자연은 광활하다. 민주는 학교에서 글자를 배
[현대경제신문 차종혁 기자]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대상 당선작은 소설 미학이 돋보이는 구성으로 삶을 조명한 작품인 「민주의 방(房)들」(한열음, 본명 김희정)이 선정됐다. 시 부문 대상에는 동화적이면서 서사 구조를 바탕에 깔고 있는 완성도 높은 「감자밭에서 왜 양을 세니」(이사과, 본명 이진호)가, 우수상에는 짜임새 있는 서정시로 숨결이 매우 정겨운 작품인 「산 능선」(박마리아)이 뽑혔다. 장편소설 대상 1,000만원, 우수상 200만원, 시 대상 500만원, 우수상 1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개최된 2024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단군 이래 한국인의 선조는 한반도의 극단적인 기후와 척박한 생산력 아래에서 있는 힘껏 생존을 모색했다. 먼저 척박한 한반도에서 한국인들은 뭐든 먹어야 했다.아무거나 먹다 세균에 감염되어 죽지 않으려고 감염에 효능이 있는 걸 따로 먹기도 했다.마늘과 쑥이다. 단군신화의 ‘마늘과 쑥’은 어떻게든 살겠다는 한국인의 의지를 상징한다.한반도에서는 개인들이 살아남기도, 또 국가로서 살아남기도 힘들었다. 어쨌든 살아남아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한국인만의 여러 특질이 만들어졌다.이 책은 그 과정을 세 명의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정의롭고 청렴한 행보로 명망을 쌓아가는 변호사 이태하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돈과 관련된 송사가 날아든다.돈 앞에선 그 진하던 핏줄도 희미해지는가. 아버지가 어머니 몫으로 남긴 유산마저 빼앗으려 소송을 건 딸,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버지의 금고를 습격한 형제들의 난타전, 유산 상속이 걱정돼 홀로된 아버지의 만혼을 저지하려는 자식들.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의 존엄마저 박탈해 버리는 것이 또한 돈이다.생명마저 위협하는 무서운 중독, 바로 ‘돈 중독’이다.갑작스럽게 애인과 헤어진 여자의 속사정과, 로또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헌정사상 최초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6년 촛불혁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로서 대통령 탄핵에 성공하고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제67대 법무부장관으로 발탁되어 검찰개혁의 선두에 섰던 추미애가 작정하고 아픈 검찰개혁에 관한 소설을 썼다.절정으로 치닫는 국민의 분노와 시대의 소명을 광장의 촛불로 밝혀낸 주인공으로 재탄생했다.이 책은 대한민국을 흔든 검찰 관련 사건들이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등장하는
2024년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공모전 마감이 임박했습니다. 등단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신진작가들은 서둘러 응모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응모마감은 2023년 12월 8일(금)이며 마감일의 우체국 소인이 찍힌 우편 접수만 인정합니다. 현대경제신문은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1,000만원, 시 부문 당선작 500만원 등의 상금을 걸고 2024년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당선작은 2024년 1월 8일 현대경제신문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 응모 부문 ] ■ 장편소설(1) 매수 : 200자 원고지 1,000매 내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7장 The end The end-그건 가슴 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비가 내렸다. 은행잎이 공중으로 휘돌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바닥에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빗방울 소리는 서서히 굵어져 빠른 비트의 음악처럼 들렸다. 나는 루시퍼를 꺼내어 연주했다. 여자가 두고 간 팜플렛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여자의 기획 아이디어는 언제나 빛을 냈다. 구보아저씨 이야기가 핫하게 퍼진 지금 추모공연 기획을 내놓다니. 어제부터 공연을 시작했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추모공연을 하게 되면 구보아저씨가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6장 오디션 레트로 가든에 도착하자마자 구보아저씨는 재빨리 차에서 뛰어내렸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사람 맞아? 나는 크게 물었다. 용주가 없다는 걸 믿지 않는 눈치였다. 말리에게 전화를 걸어 용주가 D시에서 언제 오냐고 물었다. 용주랑 같이 있는데 뭔소리냐고 했다. 예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말리에게 용주와 당장 레트로 가든으로 오라고 했다. 드디어 용주가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 온 거다. 용주가 안겨준 엄청난 충격의 여파가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구보아저씨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왔다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5장 만남 병실에서 만난 구보아저씨는 너무도 멀쩡해서 마치 딴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건강상태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말리는 죽었다 깨어난 사람이라도 대하듯 호들갑을 떨었고 구보아저씨는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온 표정으로 우리를 대했다. “넌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전쟁터라도 다녀온 거냐?”“어휴 살 만 한가봅니다, 농담까지 하시고. 그런데 아저씨, 범인 얼굴 보셨죠? 얼굴 보면 아시겠어요?” 여자는 당황한 듯 나를 툭 건드렸고 말리는 형 아까 화장실 급하다며? 하고 말을 돌렸다. 그러나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쪽의 도시 부차. 미하일은 생일을 맞아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러시아군에 의해 칼에 찔려 의식을 잃고, 아내와 딸은 끔찍한 일을 당한 후 목숨을 잃는다.미하일은 러시아군이 시체를 파묻어놓은 구덩이들을 돌아다니며 아내와 딸의 시신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마저도 실패하자 그는 어느 날 마을에서 자취를 감춰버린다.러시아의 핵 공격에 대비해 만들어진 극비 오퍼레이션 ‘네버어게인’.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이 작전 팀의 일원인 스토니는 러시아인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2017년 독일어로 출간되었던 이 책은 음악 저널리스트 마르틴 마이어와의 대화와 안드라스 쉬프가 그간 여러 지면에 발표한 에세이로 구성됐다. 대화 전반부는 음악 전반에 대한 쉬프의 깊이 있는 생각들로 채워져 있다.그가 생각하는 좋은 레퍼토리, 더 나은 연주 연습에 대한 견해, 곡에 적절한 악기로 연주하는 것의 중요성, 실내악에 대한 애정, 젊은 음악가를 교육하는 일, 동시대 음악과 청중, 그리고 비평가에 대한 생각 등 쉬프의 음악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그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수레바퀴 이후’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 머리 위에 수레바퀴 모양의 원판이 떠오르면서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세상을 그려나간다. 저자가 설정한 세계관은 이러하다.만질 수도 없고 과학으로도 검증할 수 없는 원판, 즉 ‘수레바퀴’는 인간의 정수리에서 50센티가량 떠올라 있으며,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개개인의 청색 영역 비율은 어느 나라에서든 평균적으로 65퍼센트 전후고, 주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사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이 책의 이야기는 저자가 온갖 생물의 이름과 질서를 연구하는 학문인 분류학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마주하게 된 뜻밖의 사실, 그로 인해 느낀 커다란 충격에서 시작된다.어릴 적 집 뒤편의 숲속에서 수없이 다채로운 동식물과 어울리며 느꼈던 ‘직관적 감각’과, 인생의 가치관 그 자체였던 ‘엄밀한 과학’의 세계가 치열하게 옥신각신하는 현장이 생생하게 펼쳐진다.역사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초를 잡고 스웨덴의 ‘위대한 신관’ 칼 린나이우스가 기틀을 다진 ‘분류학’이 마침내 찰스 다윈의 뜨거운 진화론을 통과하면서 일진일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이 책에서는 ‘올드 머니(Old Money)’를 가장 중요한 트렌드로 주목한다. ‘올드 머니’는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부, 혹은 그런 부를 소유한 부자를 일컫는다.신흥 부자(벼락부자, 졸부)인 ‘뉴 머니(New Money)’와 달리 이들은 겉으로 돈 많음을 자랑하는 대신 ‘조용한 럭셔리’와 ‘스텔스 웰스’를 추구하고, 상속받은 재산을 토대로 여러 대에 걸쳐 예술에 투자하고, 문화 자산을 쌓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기부와 자선에 적극 나서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전통과 헤리티지(유산)를 지녔다.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우리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19 펜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갔고, 앞으로도 어떤 감염병이 우리를 위협할지 모른다.의학과 과학이 발달해 인류의 수명은 늘었지만, 그럴수록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백세 장수 시대에, 건강관리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해졌다.이 책은 장수시대 한국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관리 비법을 담았다. 몸의 건강을 위한 운동법과 식생활에 대한 정보들을 모았고,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마음 건강법과 건강관리에 유익한 생활습관에 대한 조언들도 모았다.일어나자마자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이 책은 우리의 미래에 필수적인 인간생물학의 최근 돌파구를 탐구한다.여러 최첨단 연구 분야가 중요하지만, 저자는 특히 영향력이 큰 6개 영역, 즉 개별 세포·배아·인체의 기관과 시스템·뇌·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인체내 미생물 생태계)·유전체 등을 다룬다.이 주제 중 일부는 이미 접했다. 여기서는 최근 우리의 이해와 능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새로운 세부 사항이 어떻게 밝혀졌는지 보여준다.각 최첨단 연구 분야에서 이뤄진 새로운 발견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또는 어떻게 변화시킬지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불교철학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쓰여진 이 책은 중요한 불교경전과 논서를 바탕으로 불교의 철학 전통과 불교사상의 기본 교리를 흥미롭고 분석적으로 소개한다.저자는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그야말로 철학적 방식, 즉 비판적, 분석적, 논증적으로 파헤쳐 보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불교철학의 핵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철학하는 방법도 가르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철학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꽤나 흥미롭고 독특한 지적 탐험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불교를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이 책은 칠십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자기 땅에서 폭력적으로 몰아낸 대재앙, 팔레스타인인들은 ‘나크바’라는 이름으로 애도하지만 이스라엘인들은 독립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경축하는 바로 그 전쟁 일 년 후인 1949년 여름에 시작한다.그해 여름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소녀 하나를 생포해 강간한 뒤 살해해 사막에 매장한다.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망각 속에 묻힌 ‘사소한 일’에 대해 알게 된 한 라말라 거주 팔레스타인 여성이 그 사건에 사로잡힌다.사건은 정확히 그녀가 태어난 날로부터 이십오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