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 이름을 아무리 발음해도 시인 이름 같지 않았었다.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지금다시 내 이름을 발음했지만, 여전히 시인 같은 이름은 아닌 것 같다.이름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세상에 없겠지만 아직도, 시인 같지는 않고, 여전히, 앞으로도 시인 같지 않을 것이다. 호명되었지만, 어색하기 그지없다. 불완전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서, 무엇으로 완성될지 모르겠다.그리고 나는 늘 속죄하며 살 것이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늘 속죄하며 살아갈 것이다. 살다보니 나는 많은 이들을 괴롭혔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게한 남자가 있다. 남자의 등에는 짐이 높다랗게 쌓여 있다.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위태로워 보이지만 남자는 균형을 잃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차가 다니지 않는 숲 속의 나뭇길. 남자는 그렇게 긴 시간을 묵묵히 걷는다. 팔짱을 낀 채 오직 몸과 마음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기를 소망하며, 걷고 또 걷는다. 어느덧 새의 지저귐조차 정적으로 바뀌고 거친 숨소리조차 가라앉았을 때, 이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하고야만다는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흐른다. 곧이어 땀으로 흠뻑 젖은 남자의
세계사의 아슬한 난간을 모든 인류가 함께 붙잡고 있는 상황이 과연 당대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상상보다 더 끔찍해진 현실이 섬세하고 정치한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이제까지 그 질문들을 예민한 일부의 사람들만 수용했다면 이번에는 모든 인류가 그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투고작들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변 때문에 시의 행간은 길어지고 시적 경향은 어둡고 다양해졌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목한 분은 유휘량의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와 추일범의 「영양교환」, 이선락의 「염
문청(文靑) 시절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맘때쯤이면 숫눈길을 밟듯 설레는 마음으로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 소식을 기다렸을 것이다.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25편이었다. 소식을 기다릴 응모자들의 애틋한 마음을 잘 알기에 신성하고 엄중한 마음으로 꼼꼼히 응모작품을 살펴 읽었다.예심을 거쳐 올라온 터라 대체로 작품마다 소재와 구성에서 신인다운 신선함과 탄탄한 문장력이 돋보였다. 다만 넘치는 패기를 절제하는 작가 시선이 부족하여 흠결을 보인 작품이 많아 안타까웠다. 특히 작가로 등단하는 공모전에 응모하는 작품에는 작은 흠결
휴대폰을 주우려고 몸을 숙였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운전기사는 나를 내려주자마자 곧바로 버스를 움직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아, 소리를 내며 버스 뒷바퀴가 휴대폰 위로 지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순간 따악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크게 들렸으며 한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예상대로 액정에는 무수히 많은 금이 가 있었다. 휴대폰에 묻은 흙먼지를 대충 털고 껐다 켜보았다. 우우웅 하고 부팅을 시작하나 싶었지만 화면은 밝아지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부터 불운한 일이었다. 고장 난 휴대폰을 가지고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일은 난감하기 짝이
[현대경제신문 차종혁 기자]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시 부문 당선작은 인간과 문학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충실히 고뇌하고 답한 작품들이 선정됐다.단편소설 당선작(대상) 1,000만원, 시 당선작(대상) 700만원에 달하는 국내 최고의 상금을 내걸고 개최된 이번 신춘문예는 시 부문 2,100편, 소설 부문 280편이 응모한 가운데 지난 12월 10일 성황리에 마감했다.국내 문학계를 대표하는 심사위원들의 꼼꼼한 심사를 통해 예심과 본심을 거친 세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등단을 갈망하는 신진작가들의 수많은 응모작 가운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나’라는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애 책은 머리말과 맺는말, 그리고 세 편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머리말’은 사진 석 장의 이미지를 풀어낸 감각적이고 시적이며 허무주의 분위기가 짙은 글로, 작품 전체를 향한 기대감과 요조의 신변에 관한 불길한 예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첫 번째 수기’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많은 삶을 산 요조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두 번째 수기’에서는 같은 반 친구 다케이치가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그를 곁에 두려고 애쓰는 요조를 묘사했다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세계 문명교류의 현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정수일 답사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문명담론의 실질적 발원지 유럽의 실상을 점검하는 기획으로, 근현대 세계사의 중심이자 ‘선진’문명으로 자리 잡아온 유럽문명의 허와 실을 가려낸다.특히 이번 책에서 살펴본 북유럽 4개국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는 청렴과 복지의 상징으로서 선진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들이다.한랭한 기후와 척박한 자연환경, 19~20세기 역사의 격랑 속에서 이들은 어떻게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개척했는가? 높은 사회적 신뢰와 복지 수준은 어디서 비롯하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이 책은 ‘신화’와 ‘축제’라는 열쇳말을 가지고 고대 그리스의 세계로 안내한다.저자는 두 차례의 그리스 문명 기행을 통해, 오늘의 세계를 규정해왔던 문명의 근원을 인문적 통찰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현해낸다.오늘의 세계를 이루는 근간이 서구 문명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 문명을 읽어내는 작업은 긴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그리스 본토를 비롯해 크레타, 산토리니 등의 에게해,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몰타 등을 답사하며 주요 유적지 현장에서 오늘의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저자는 입을 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치아를 통해 계층 간 이동이 힘들어진 현실을 파헤치는 한편, 이를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현장을 보여 준다.저소득층 지역이나 알래스카처럼 계층적ㆍ지역적 이유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서 진료 활동을 하는 의료인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을 생생하게 담는가 하면, 데몬테 드라이버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시민들이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과정도 비중 있게 다룬다.긴급한 의료 필요가 있는 현장을 돌보는 행동과, 그 필요 자체가 줄어들게끔 접근성을 높이고 제도를 보완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미술관에 ‘놀러 가는’ 철학자가 있다.십 대에 떡볶이집 드나들 듯, 이십 대에 술집 드나들 듯, 미술을 전혀 모른 채 미술관에서 놀던 그는 그림이야말로 철학의 가장 좋은 ‘스위치’임을 깨달았다.이 책은 미술이라는 스위치를 통해 철학이라는 집에 불을 밝혀주는 책이다. 저자 이진민이 그 집에서 하려는 것은 ‘놀이’다.어떤 그림에 철학적 해석을 정답처럼 붙이는 게 아니라 그림을 도구 삼아 이런저런 생각을 실컷 펼쳐볼 수 있는 놀이. 하나의 작품을 눈에 담는 순간 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우주가 뻗어나가기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한때 룸메이트였으나 소원해진 안나와 유리는 오랜만에 조우한다.도서관 통로를 런웨이하듯 걸어가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SNS도 온통 도서관 런웨이 사진으로 채우는 안나는 프러포즈도 도서관에서 받았을 정도로 도서관 사랑이 지극하다.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AS안심결혼보험 약관집을 발견하고 그 책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음을 알고는 유리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한다.그러던 어느 날, 안나가 활동하는 독서모임의 지인에게서 안나가 며칠째 연락 두절이라는 소식을 들은 유리는 한때 단짝이었지만 한 남자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이 책은 우리 몸속에 있는 피를 의학, 역사, 사회, 경제 등 모든 관점에서 파헤쳐 우리가 몰랐던 피의 이면과 진실을 제시한다.책은 고대의 사혈 관습에서 출발해 피에 얽힌 그릇된 신화와 믿음의 역사를 소개하고, 오늘날의 대량 헌혈 체계를 마련한 선구자들을 조명하며,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이 겪는 성 차별적 처우를 밝힌다.그런가 하면 남아프리카에 만연한 HIV 바이러스의 실태를 파헤치고, 피를 여전히 거래 상품으로 취급하는 미국의 혈장 산업을 고발하고, 혈액의 미래까지 살펴본다.이 책의 제목 ‘5리터의 피’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유복한 농장주의 외동딸인 에마 보바리는 감상적이고 예민한 면모를 지닌 인물로 시골에서의 조용한 생활을 권태로워한다.로맨틱한 연인, 영원한 사랑, 성의 안주인처럼 고급스러운 삶을 꿈꾸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에마는 어느 날 아버지의 다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온 의사 샤를 보바리를 만나 결혼한다.에마는 이제껏 읽어온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묘사된 사랑과 도취, 열정, 희열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이 결혼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맛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에마는 곧 다른 남
[현대경제신문 김영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외식업을 하는 자영업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자기 매장 메뉴로 밀키트를 만드는 솔루션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매출이 성장하고 위치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매장, 이렇게 장사가 더 잘되는 식당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매장들과는 명확한 차별점이 있다”소상공인을 위한 브랜딩과 매출 활성화 컨설팅을 통해 수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 온 김상미 엠엠컨설팅연구소 대표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외식업계 위기 탈출을 위한 해법으로 ‘밀키트 판매하는 방법’을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박물관 탐방 프로그램 강사 정은소는 월요일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이에게 뒤통수를 맞는다.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뒤 사라진 의문의 인물이 누구인지 의구심은 풀리지 않고, 애인 봉수 선배에게 이를 털어놓지만 더 심한 두통과 악몽에 시달릴 뿐이다.그러다 문득 과거 교사였던 엄마가 발령받았던 산골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만난 짝꿍 오원화를 떠올리고, 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녀로 추정되는 인물과 조우한다.서울에서 온 전학생 은소는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의 대상이던 원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이 책은 이항복이 남긴 ‘유연전’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16세기 프랑스의 마르탱 게르 사건과 흡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균분 상속에서 장자 우대 상속으로 넘어가기 직전 세태를 보여주며 이는 소설보다 극적인 실화를 통해 ‘상속’을 둘러싼 당대인의 욕망과 갈등, 관습과 제도를 응축해 소개해 준다.장남 노릇을 해야 할 ‘유유’의 가출과 귀향, 실종은 남은 가족들의 일상에 큰 파문을 던졌다.8년 만에 돌아온 유유의 진위는 명확하지 않았으며, 상속과 가계 계승을 둘러싸고 그의 부인인 백씨와 동생 유연 사이에는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이 책은 야구라는 스포츠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얽힌 세 사람이 무한경쟁 시스템 안에서 부서지며 겪는 성장의 시간을 담은 옴니버스 소설이다.이 책은 경쟁에서 실패하고도 자기만의 삶을 쟁취해나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다.그 모습을 보다 보면 조금은 부러워지기도 하는데, 소설이 그려낸 경쟁 바깥의 세계가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일부러 볼넷을 던지는 혁오, 불안 장애를 앓으며 구조조정 위기에 처하게 되는 준삼, 온갖 루머에 시달리면서도 특종만을 좇던 기현은 성과가 중시되고 성적이 매겨지는 사회